‘개가수’. 속어가 아니다. 개그맨과 가수를 붙여 부르는 신조어이다. 최근 들어 이 속어 같은 신조어가 대중문화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개그맨 유세윤과 뮤지가 결성한 UV, KBS <개그콘서트>의 신보라·박성광·정태호로 구성된 용감한 녀석들, MBC <무한도전>의 ‘미친 존재감’ 정형돈과 가수 데프콘이 만든 형돈이와 대준이가 그들이다.
사실 개그맨이 가수 활동을 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고 서영춘 선생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부른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다~’로 시작하는 <서울구경>이라는 노래를 알 것이다. 이 노래는 당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마치 유행어처럼 번져나가며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유머일번지>와 <쇼 비디오자키> 같은 콩트 코미디 시대의 개그맨들 가운데도 음반을 내고 활동한 이들이 적지 않다. 최양락, 김미화, 김보화, 심형래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서세원, 이휘재, 이홍렬, 컬투…. 개그맨은 예나 지금이나 기회가 닿으면 음반을 내려 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가수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개그맨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크리스마스 같은 시즌에 맞춰 발표하곤 했던 캐럴 음반은 꽤 짭짤한 판매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또, 행사가 주 수입원인 그들에게 개그 이외에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주가를 높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부수입 차원 아니라 본격적인 활동 나서기도
하지만 이처럼 과거 개그맨이 했었던 부수입 정도의 가수 활동과 최근 이른바 ‘개가수’라 불리는 이들의 활동은 확연히 다르다. 2010년부터 꾸준히 싱글 앨범을 낸 UV는 <쿨하지 못해 미안해> <이태원 프리덤> <집행유애> 같은 히트곡을 냈는데, 그 완성도는 기성 가수 그 이상이었다. 형돈이와 대준이가 발표한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는 이른바 갱스터랩을 표방하며 완성도 높은 직설적인 가사와 랩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것은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에 이어 <I 돈 care>를 낸 ‘용감한 녀석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신보라는 드라마 <유령>의 OST에 참가해 싱글 <그리워 운다>를 발표할 정도로 가창력을 평가받고 있다. 즉, 개가수의 활동은 그저 부수입적인 차원이 아니라 훨씬 본격적인 활동에 가까우며 그 완성도도 기성 가수만큼 높다.
개가수에 대한 주목도는 음원 차트에서 확인된다. 용감한 녀석들이 낸 일련의 곡은 음원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형돈이와 대준이가 발표한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는 발매 즉시 빌보드 K팝 핫100 차트에서 빅뱅의 <몬스터>, 원더걸스의 <like this>에 이어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신인 가수라면 언감생심 바라보지도 못할 차트 순위에 단번에 들어가는 개가수의 선전에 기존 음반기획사나 신인 가수들은 허탈감마저 느끼고 있다. 심지어 기획사들은 이들의 가요계 진출을 (가요계 물을 흐리는) ‘외래종’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가수가 전성시대를 이룬 것은 시대적인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음반 시장에서 음원 시장으로 바뀜으로써 생겨난 생산과 유통 방식의 변화와 음악에 대한 대중의 달라진 인식이 만나면서 생겨난 새로운 수요라는 얘기이다.
개가수의 음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용감한 형제들은 <개그콘서트>의 코너를 통해 알려진 후 음원을 발표한 경우인데, 무엇보다 메시지가 중심을 이룬다. 신보라라는 가창력을 만나면서 비로소 완성되었지만, 이들의 노래는 남녀 관계에서의 불평등한 풍경을 적나라하고 공감 가는 가사로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이처럼 강한 메시지성은 형돈이와 대준이나 UV도 마찬가지다. 기존 노래 가사가 가진 통속성이나 상투성을 뒤집는 지점에서 이들의 노래가 가진 폭발력이 생겨난다.
또, 개가수에게 노래 이전에 캐릭터가 있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으로서 가지고 있던 캐릭터가 노래와 맞물리기 때문에 노래가 전하는 스토리를 좀 더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먼저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UV는 ‘UV신드롬’이라는 페이크 다큐를 통해, 용감한 형제들은 <개그콘서트>를 통해, 또 형돈이와 대준이는
<무한도전>을 통해 알려졌다. 프로그램 안에서 만들어진 스토리성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음원 속에서 이들의 노래가 주목받는 힘이기도 하다.
신적인 영역에 있던 음악을 일상의 영역으로 내려오게 하는 데 한몫
물론 개가수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것은 그들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대중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개가수는 그 위치가 개그맨에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음원이 더 주목받을 수 있다. 그만큼 기대감이 낮기 때문에 기대감을 훌쩍 넘겨버리는 그들의 음악이 더 놀랍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개가수가 정작 가수로서의 활동을 전면적으로 시작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가수라는 엄밀한 잣대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개가수는 그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고수할 때 최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개가수의 등장은 이제 대중이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음반 시절의 음악이 특정 아티스트만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신화적 성격을 가진다면, 음원 시절로 넘어오면서 이런 아우라는 상당 부분 희석되어버렸다. 이제 누구나 음악을 만들고 발표할 수 있는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니 개그맨이나 배우, 일반인이 음원을 발표한다고 해서 그다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시대이다. 개가수 전성시대는 신적인 영역에 있던(신격화되던) 음악이 이제는 일상의 영역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징후로 보인다.
UV는 이러한 복고적인 음악 세계와 더불어 <UV 신드롬>이라는 페이크 다큐를 통해 만들어낸 독특한 캐릭터가 이들만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이 페이크 다큐에서 한국전쟁 당시 전쟁에 지친 병사의 영혼을 어루만져주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군중들이 불렀던 노래 <지펜투텐탁(훗날 <집행유애>라는 곡으로 불린)>을 부른 장본인, 또 1985년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마이클 잭슨을 위시한 50명의 가수들이 <We are the world>를 부를 때 코러스를 했던 인물, 또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파이널을 장식했던 세계 모든 가수의 우상이자 신화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이 캐릭터는 그대로 무대 위 실제 공간으로 튀어나와 대중을 열광시킨다. 이런 UV만의 무대는 록페스티벌에서도 통한다. 지난해 열린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서 UV의 무대에는 수용 인원을 넘어선 2만3천여 명이 운집해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형돈이와 대준이는 현재 <엠 카운트 다운> <유&아이> 같은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코믹한 노랫말이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친근함을 주면서도 음악적으로 갱스타 랩의 묘미를 살려내고 있어 각종 힙합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캐리비안 베이 썸머웨이브 페스티벌’에서는 루다크리스, 타이오 크루즈, 엠플로, 타이거 JK, 윤미래 같은 최고의 DJ와 힙합 뮤지션과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코너에서 했던 노래를 잘 다듬고 세련되게 편곡한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는 남녀 관계에서의 불평등한 풍경을 적나라하고 공감 가는 가사로 표현함으로써 그 코믹한 메시지가 갖는 힘을 극대화시켰다. 후속곡으로 나온 <I 돈 Care>는 <개콘>의 서수민 PD가 피처링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발표 즉시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휩쓸기도 했다.
본래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이 행사 1순위이지만 여기에 노래까지 장착한 용감한 녀석들은 말 그대로 ‘행사의 왕’이다. 대학 축제 시즌에는 거의 아이돌급 대우를 받기도 했고, 각종 스포츠 행사와 가수의 쇼케이스 무대에서까지 이들을 찾는다고 한다. 심지어 해외 교민 행사에도 초청되는 이들은 최근 식목일 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들의 포즈를 따라 했다고 얘기해 그 인기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은 이 프로젝트가 <무한도전>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장기 결방으로 인해 <무한도전>에 갈증을 느끼는 팬들이라면 처진 달팽이의 등장이 형돈이와 대준이의 등장만큼 반가울 수밖에 없다. <무한도전> 바깥에서 보는 처진 달팽이와 형돈이와 대준이의 대결 또한 볼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