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을 흔드는 ‘비밀 입양’의 함정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7.1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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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미혼모들, 흔적 안 남기려 인터넷 통해 몰래 실행 / ‘입양 브로커’가 ‘아기 매매’ 주도…자칫 범죄 희생양 될 수도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사는 이미향씨(가명·25)를 만난 것은 인터넷에서였다. 포털 사이트에서 ‘비밀 입양’을 검색했더니 이씨가 남긴 글이 검색되었다. ‘미혼인데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은 후 입양을 보냈다. 그때는 아이 가진 것을 숨기기에만 급급했고, 인터넷을 통해 만난 양부모에게 비밀 입양을 시켰다. 지금 돌이켜보니 너무 죄책감이 들고,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어 우울증에 시달린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소식을 알고 싶은데 비밀 입양 경험이 있는 분과 상담을 원한다’라며 메일 주소가 남겨져 있었다. 기자는 신분을 밝히고 ‘어떤 사연인지 듣고 싶다’라고 메일을 보냈다. 이씨는 한참을 망설였는지 하루가 지나고서야 답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이씨의 ‘비밀 입양’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씨는 지난 2010년에 한 지방 대학을 졸업하고 한 중견 기업의 서울 본사에 취업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비슷한 또래의 남성들과 합석을 했다. 그리고 파트너와 하룻밤을 보냈고, 임신을 했다. 아이 아버지와는 연락처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결국 ‘임신’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이씨의 몫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아 기를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인터넷에 ‘아이 입양을 원하시는 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고, 한 입양 브로커와 연결이 되었다.

브로커는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라며 ‘철저한 비밀 보장’을 약속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이씨는 회사에 병가를 냈고, 산부인과에 입원해 여자 아이를 낳았다. 나중에야 아이의 양엄마가 될 사람도 동시에 입원했다는 것을 알았다. 병실만 달랐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브로커의 중재 아래 아이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위로금 명목으로 2백만원을 받았다.

그렇게 이씨가 낳은 아이는 비밀리에 입양되었다. 사진 한 장 남길 새도 없었다. 그 후 이씨는 아이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브로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는 해지된 상태였다. 이씨는 “그때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를 지울 시기도 놓쳤고, 배는 조금씩 불러오는데 다른 사람이 알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아이를 빨리 입양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라며 때늦은 후회를 했다. ‘하룻밤의 사랑’은 이렇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씨의 사례는 인터넷을 통해 성행하고 있는 ‘비밀 입양’의 전형이다. 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다. 16세의 중학생은 ‘임신 10개월차인데, 아기를 키울 능력이 없다’라며 입양할 양부모를 찾고 있었다. 또 다른 여성은 ‘다음 주 월요일이 딸아이 출산 예정이다. 사정상 키울 수가 없어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입양할까 생각한다. 번호나 댓글을 남기면 연락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입양 기관에 보내야겠지만, 기록이 남지 않고 데려가기를 원하는 분이 있을까 해서’라며 비밀 입양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비밀 입양’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임신과 출산의 흔적을 없애려는 미혼모와 미혼부 또는 그 부모들에 의해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왔다. 친부모는 임신을 숨기기 위해, 양부모는 불임을 숨기기 위해 ‘비밀 입양’을 선호한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경우, 또는 경제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경우에는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아이의 존재를 지우기에만 급급하다. 그렇다 보니 흔적이 남지 않는 손쉬운 입양 방법을 택한다. 인터넷을 통한 비밀 입양이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것은 조산원 등에서 이루어지던 것이 ‘인터넷’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비밀 입양’의 풍속도는 오프라인과 사뭇 다르다. 성 개방 풍조가 확산되면서 ‘비밀 입양’은 ‘묻지 마 입양’ 형태가 되고 있다. 양부모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아이를 넘겨주면 끝이다. 인터넷을 통한 비밀 입양에는 중개자들이 있다. 일명 ‘입양 브로커’들이다. 이들은 친부모와 양부모의 심리를 십분 이용해 중간에서 돈을 챙기고 있다. 거머리와 같은 존재이다.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아기 매매’를 주도하는 것도 이들이다.

양부모에 대한 정보도 전혀 알지 못해

입양 브로커들은 더 나아가 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낚시질을 한다. 입양을 원하거나 입양을 할 것처럼 글을 남긴 후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양부모에게 거액의 사례금을 받고 친부모에게는 일정액의 위로금을 준다. 금액은 대략 2백~3백만원 정도로 파악된다. 나머지는 자신들이 챙긴다.

아예 처음부터 돈의 액수를 놓고 친부모와 양부모 간의 거래를 제안하기도 한다. 어떤 친부모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한다. 아기의 출산 예정일과 부모와 아이의 혈액형 등 개인 신상을 공개하는 일까지 있다. 이렇게 ‘입양’과 ‘매매’는 손등과 손바닥 차이이다. 물론 인터넷을 통한 ‘비밀 입양’은 불법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비밀 입양’ ‘묻지 마 입양’은 더욱 늘어나고, 입양 브로커들의 수법도 교묘하게 진화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인터넷을 통한 ‘비밀 입양’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비밀 입양’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때문에 아이가 커서 친부모를 찾는 길이 완전히 막힌다. 양부모에 대한 정보도 알지 못한다. 친부모와 양부모는 연락처 등과 같은 정보도 교환하지 않는다.

아이가 양부모에게 건네지면 그 다음부터는 아이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 이럴 경우 아이가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도 알 수가 없다. 출생 신고가 안 된 상태로 살해되거나 방치되어 죽게 되어도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장기 적출용’ 등의 명목으로 비밀 입양이 악용될 소지도 충분하다. 양부모가 아이를 기르다가 장애가 생기거나, 심각한 병에 걸리면 유기할 수도 있다.

황은숙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회장은 “아이를 음성적으로 입양한다면 아이가 어떤 가정에서 양육을 받는지 성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음성적으로 아이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아이를 키울 여건이 안 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 양육 의사가 있다기보다는 앵벌이 등의 범죄에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대표는 “입양은 전문 기관을 통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이다. 입양도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고,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는 곳에 보내야 한다.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아이가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마지막 배려이다. 인터넷에서 몰래 입양을 보내는 것은 아이를 사지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히 걱정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비밀 입양’을 보내려는 사람 중 상당수는 미혼모이다. 이미향씨 사례처럼 미혼 여성이나, 나이 어린 학생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아이를 갖게 되면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인터넷을 매개체로 이용한다. 이런 배경에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편견이 깔려 있다.

황은숙 회장은 “미혼모라 해도 출산 때까지 도와주거나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이 있다. 당장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때는 입양센터 등에 연락해서 도움받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미혼모 자신도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비밀 입양’이 사회적인 편견에서 나오는 만큼 이번 기회에 사회적인 인식이 전환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비밀 입양’은 그 특성상 어느 정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파악되기 어렵다. 다만 공개 입양과 비밀 입양의 비율은 3 대 7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세태와 성 풍속도를 감안하면 인터넷을 통한 비밀 입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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