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달리는 <추적자>, ‘같기도 공화국’을 묻다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2.07.1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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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겨냥해 ‘사회’ 문제에 천착한 드라마로 화제 모아 / 극적 완성도도 높아 인기 끌며 올해 최고작 오를 전망

SBS 의 김상중·손현주 (왼쪽부터) ⓒ SBS 제공
드라마 <추적자>는 우리 공화국을 묻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은 과연 명실상부한 공화국인가? 혹시 공화국의 껍데기만 뒤집어 쓴 ‘같기도’ 공화국은 아닌가?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까지 공화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작품에서 최고의 권력자는 경제 권력을 틀어쥔 재벌이다. 하지만 그조차 자기 딸이 낸 교통사고의 증거가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자기 아들을 위한 편법 승계의 비밀을 지키려 고심한다. 재벌 다음 순위 권력자는 이제 곧 정치권력을 틀어쥐게 될 지지율 1위의 대통령 후보이다. 그도 자신의 범법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일단 사실 관계가 알려지면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이 공화국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공화국에는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 없다.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사람들, 그런 시민의 공동체가 바로 공화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권력자든, 정치권력자든 법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권력자들은 공직자나 유력 인사를 틀어쥐고서 법을 농락한다. 주인공인 말단 형사와 ‘양아치’로 이루어진 민중 추적자가 이들의 잘못을 단죄하려 하지만, 언제나 유유히 빠져나간다.

법을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법을 농락하는 ‘그들’의 존재. 이것은 한국이 공화국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같기도’ 공화국임을 통렬히 고발한다. 그것이 <추적자>의 미덕이고, 지금 네티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캐릭터는 비슷해도 박진감에서는 따라올 작품 없어

따지고 보면 이런 설정의 드라마는 많았다. 정치인과 재벌의 부패를 다룬 드라마들 말이다. 예컨대 <도망자>는 기본 구도가 거의 비슷했다. <추적자>가 특별한 것은 그런 드라마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극적 완성도에 있다.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소재가 얼마나 있으며, 새로운 이야기는 또 얼마나 있겠나? 모든 것은 이미 나왔던 것들의 변주이다. 그래서 극적 완성도가 중요해진다.

그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추적자>는 최고이다. 물론 처음에는 불안한 면도 있었다. 상투적인 소재에 적당히 질척거리는 휴머니즘을 섞어 만든 범작 같았다. 하지만 중반에 접어들 무렵부터 작품에 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경제권력자와 정치권력자 사이의 파워게임을 탁월하게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박진감은 본 적이 없었다. 한없이 비정하고 한없이 고독한 권력자들의 투쟁. 그동안 드라마에서 막연히 그려졌던 그런 도식적인 재벌 회장이나 정치인하고는 달랐다. 캐릭터의 성격은 비슷했지만 형상화의 정도에서 기존의 한계를 넘어섰다. 특히

<추적자>의 대통령 후보는 <하얀 거탑>의 장준혁에 비견될 정도로 잘 형상화된 악인이다. 시청자는 그에게 공감하면서 동시에 미워해야 하는 심리적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작품에 대한 찬탄으로 이어진다.

<추적자>의 완성도는 13회, 14회차에서 극에 달했다. 이 작품은 지속적으로 영화 <대부>를 의식하는 듯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었는데, 13회에서는 정말로 <대부>에 필적하는 전율을 안겨주었다. 대통령 후보 부부가 시장에서 서민 유세를 할 때 이들 집단의 범죄 행각이 교차 편집된 장면에서였다.

이런 완성도를 통해 <추적자>는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에서 최고작에 등극할 기세이다. 현재로서는 경쟁작이 <유령>밖에 없다. 중반까지는 <유령>이 이룬 성취가 더 높아 보였지만 최근 들어 <추적자>의 박진감이 단연 돋보인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는 ‘사회’의 시대였다. 대중문화 트렌드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올봄부터 기류가 변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멜로나 1990년대 복고, 아날로그, ‘힐링’에 빠지기 시작했다. 사회 풍자를 하던 개그맨은 말장난을 하고, 극장에서는 <건축학개론>의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더니 곧 ‘19금’ 열풍이 불고, 서점가에서는 스님이 쓴 에세이가 팔렸다.

선거일 향해 점점 긴장감 고조되는 구조

SBS 월화 드라마 ⓒ SBS 제공
정작 대선이 있는 해에 이래도 되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추적자>가 터졌다. 이 작품은 온전히 대선을 겨냥한 것이었다. 작품의 구조가 대통령 선거일을 향해 점점 고조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같기도’ 공화국의 문제를 대선 투표율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이다. 투표율이 낮으면, 또 시장에서 음식을 먹으며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정치인에게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다시 봉 노릇이나 하는 바보 유권자가 될 것이냐고 말이다.

여기에 시청자와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이 뜨거운 호응은 대중문화판에 다시 ‘사회’를 호출하게 할 수 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힐링’이나 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풍경이었다. <추적자>가 그 이상한 풍경을 내리쳤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라고 국민에게 외친다. <추적자>의 외침은 과연 통할 것인가? 

<추적자>는 젊은 스타를 기용하지 않은 미니시리즈 드라마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런데 망하지도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스타가 없다고 해서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어느새 동시간대 1위 고지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스타가 없어도 드라마는 죽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써서 한류 스타를 내세우지 않아도 작품이 사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연기 장인인 중견 배우의 존재감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미니시리즈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문제는 작품의 내용이고 완성도이다. 좋은 내용을 잘 만들기만 한다면, 시청자는 외면하지 않는다. 아무리 스타가 나와도 완성도가 떨어지면 절대로 작품이 성공할 수 없다. 스타에만 기대는 자세는 나중에 좋은 내용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퇴화시킬 것이다. 스타에게 집중되는 출연료는 중견 배우의 입지를 압박하는데, 이것도 우리 드라마를 퇴화시킬 요인이다. 이런 우려가 제기되는 시대에 <추적자>는 작품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증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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