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의 ‘파격’ 승부수, ‘제2 황영기’ 악몽 될까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금융부 기자 ()
  • 승인 2012.07.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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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2.5% 고금리 적용한 자유 입출식 예금 내놓아 화제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 ·1945년 경남 합천 출생 ·경남고, 서울대 법대 졸업 ·제8회 행정고시 합격, 재무부·재정경제원 ·관세청장, 통상산업부·재정경제원 차관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2005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2007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 경제1분과위 간사 ·2008년 기획재정부장관 ·2009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2011년 3월 산은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
“한번 선진국하고 비교해보세요. 우리나라 은행들이 수시 입출금식 예금에다 제로에 가까운 금리를 주고 있는데 이것이 맞는 것입니까? 우리는 고객들에게 정직한 금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67)이 최근 신상품인 ‘KDB드림 어카운트’를 출시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그는 “산은이 시작한 고금리 예금이 우리나라에서는 혁신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혁신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산은이 후발 주자여도 국내에서 혁신을 주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회장의 ‘실험’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국책 은행으로서 파격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시한 점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시장 교란을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고금리 수신 자금, ‘부메랑’ 될 수도 있어

일각에서는 산은이 고금리 수신 자금을 감당하지 못해 급속히 부실화할 경우 수년째 부실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은행의 뒤를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정부를 대주주로 두고 있는 우리은행은 과거 황영기 행장 시절 자산을 공격적으로 늘렸었다.

금융계에서 시끄러운 산은의 고금리 상품은 무엇일까. 강회장이 소개한 KDB드림 어카운트는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에 연 2.5% 금리를 적용하는 상품이다. 고객이 산업은행 지점을 직접 방문해 가입해야 한다. 산은의 온라인 전용 상품인 ‘KDB다이렉트/하이어카운트’(연 3.5% 금리)와 달리 온라인 환경에 친숙하지 않은 중·노년층이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일반 시중 은행들은 대부분 수시 입출금식 예금에 0.1% 정도의 ‘쥐꼬리’ 금리만 적용한다. 하루 만에 빠져나갈 수도 있는 돈이라는 이유에서다. 산은처럼 거래 기간이나 금액 등 부대 조건 없이 2.5% 금리를 주는 것은 매우 파격적이다. 산은은 KDB드림 정기예금에도 시중 은행보다 높은 연 4.05%(1년짜리 기준)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산은은 지난해 9월 고금리 다이렉트 예금을 출시해 이미 2조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았다. 금세 3조원도 돌파할 기세이다. 이처럼 금리를 공격적으로 높이는 이유는 수신 확대를 위해서다. 전국 영업점이 50~60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은행과 비슷한 금리를 가지고는 경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대형 은행의 점포는 전국에 걸쳐 1천개를 상회한다.

시중 은행들은 비상이 걸렸다. 대표적으로 서울 강남권 자금이 썰물처럼 산은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한 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 직원은 “금리 차이가 0.3~0.5%포인트만 나도 수십~수백억 원이 쉽게 오가는데 산은의 금리는 도저히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다. 산은 때문에 영업하기가 어렵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은행의 고위 임원은 “산은의 금리는 역마진을 각오한 덤핑 수준이다. 강회장이 막가파식 금리 정책으로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산은의 고금리 전략을 반기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양소원씨(49)는 “국책 은행답게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금리를 제시하는 것 같다. 아예 주거래 은행을 산업은행으로 바꾸는 것도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강회장의 주도로 확대한 고금리 수신 자금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으기는 쉽지만, 이 돈을 굴릴 만한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수년 내 부메랑이 되어 산은의 재무 구조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강회장은 이번에 받은 수신 자금을 중소 상공인이나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저리 대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개인 고객들이 맡긴 돈을 다시 서민들을 위해 활용해서 마진을 남기지 않겠다는 취지이다.

신용보증재단이 소기업·소상공인·청년창업자 등을 추천받아 보증을 제공하면 산은이 개인당 5천만원 안팎의 자금을 싼 이자로 대출해주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산은의 서민 대출 금리는 시중 은행보다 훨씬 낮은 연 5%대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금리로 끌어모은 자금을 더 높은 금리를 붙여 대출해주는 것이 아니라, 저리 서민 대출에 쓰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정상적인 예대 마진이 3%포인트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오히려 역마진이 생길 수 있는 구조이다. 더구나 서민 대출의 경우 만기 때 원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기 일쑤이다. 심할 경우 연체율이 10%를 넘을 수도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새희망홀씨대출이나 햇살론 등 서민 전용 대출 상품의 연체율이 단기간에 5~6%까지 치솟은 경험을 감안해야 한다. 산은이 검토하는 서민 대출 역시 비슷한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책 은행인 산은이 부실화하면 최악의 경우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과의 공통점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1952년 경북 영덕 출생 ·서울고, 서울대 상대 졸업 ·1975년 삼성물산 입사,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삼성전자·삼성생명 자금팀 및 전략기획실 ·1998년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1999년 삼성투자신탁운용 사장 ·2001년 삼성증권 사장 ·2004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2008년 KB금융지주 회장 ·2010년 1월 차병원그룹 부회장 겸 차바이오앤디오스텍 회장
금융권에서는 고금리 수신 전략으로 시중 은행들과 정면 대결을 벌이고 있는 강회장에게서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60)의 실루엣을 보는 이가 적지 않다. 비(非)은행 출신의 금융지주 회장으로서, 파격적인 경영 전략을 도입해 판을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다.

강회장과 황 전 회장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영남 출생에 서울대 출신으로, 이명박(MB) 정부 탄생 때 깊숙이 관여했다. 2007년 MB의 대선 캠프에 몸담았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올랐다. 두 회장은 “국내에서도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메가뱅크가 나와야 한다”라며 우리금융지주 인수를 추진했다 좌절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강회장은 관료 엘리트 출신이다.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재무부, 재정경제원, 기획재정부 등에서 경제 정책의 틀을 짜는 역할을 했다. 기재부장관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자신을 낮춰’ 산은그룹 회장을 맡았다. 강한 추진력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황 전 회장은 삼성그룹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스스로 몸값을 끌어올린 경우이다. 1975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는데, 이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과 삼성전자·삼성생명 전략기획실 등 요직에서 일했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삼성투자신탁운용 및 삼성증권에서 사장을 맡기도 했다.

2004년 증권사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에 취임했다. 그 뒤 경쟁 그룹인 KB금융 회장으로 선임되었다가 1년여 만에 그만두었다. 2010년부터 차병원그룹 총괄부회장 겸 차바이오앤디오스텍 회장으로 일해왔다. 도전적인 성격이어서 ‘검투사’로 불린다. 최근 차병원그룹을 떠나겠다고 밝힌 황회장은 “앞으로 1~2년간 많은 분들을 만나 금융 정책을 새롭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싶다. 사모 펀드로 가는 것도 생각 중이다”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차기 정부에서 일정 역할을 맡기 위해 또다시 대선 캠프에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승승장구한 황 전 회장이지만, 일부 오점을 남겼다. 그가 우리은행장으로 재임할 당시 우리은행이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에 거액을 투자해 큰 손실을 입은 것이다. 이 문제로 황 전 회장은 2009년 금융감독원에서 중징계를 받았고, 그해 9월 KB금융 회장직을 떠나야 했다. 정부와 벌인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무리하게 자산을 확대해 우리은행 부실을 심화시켰다”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금융계 관계자는 “강회장이 고금리로 끌어온 자금을 서민 대출에 내주다 산은 부실을 앞당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강회장의 경영적 판단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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