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키워 한국 경제도 살찌울까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7.1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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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싼값에 나온 우량 기업 인수·합병해 몸집 불리는 경영 스타일로 주목

지난 6월7일 서울 잠실롯데호텔에서 열린 국제관광시장(KITM 2012) 행사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지난 6월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은 전 계열사에 비상 경영을 지시했다. 과거에 다른 기업이 죽는소리를 할 때도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던 신회장이 두 차례나 위기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롯데는 국내외의 인수·합병(M&A)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런 불확실한 시대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다”라고 말했다.

인수·합병으로 롯데의 몸집을 불려온 신회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하이마트 인수전에 뛰어든 시점에서 롯데가 발을 빼려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2주일 후 신회장은 하이마트를 품에 안았다. 삼성의 디지털플라자처럼 롯데도 디지털파크라는 가전매장을 가지고 있다. 점포 수나 가격 경쟁에서 늘 뒤처졌던 롯데는 3백14개 하이마트 매장을 확보함으로써 전자제품 판매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롯데 관계자는 “위기 경영이라도 인수·합병은 그대로 진행해왔다. 일본 가전매장이 잘되는 만큼 롯데의 전자제품 판매 사업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0년 동안 10조원 투자로 35건 인수·합병

이것이 신회장의 대표적인 경영 스타일이다. 경영이 좋지 않아 허덕이는 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몸집을 불려두면 경기가 좋을 때 다른 경쟁사보다 큰 추진력을 낼 수 있다. 지난해 회장 자리에 오른 그는 당시 임원회의에서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싼값에 매물로 나온 우량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2008년 금융 위기 때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해외 우량 기업을 좋은 가격에 인수한 경험이 있다”라며 인수·합병을 강조한 바 있다.

신회장은 경영 일선에 나선 2000년 이후부터 인수·합병에 공을 들였다. 현재 롯데그룹의 계열사는 79개이다. 이 중에 35개를 지난 10년 동안 인수했다. 이 기간에 기업을 사들이는 데에 10조원을 쏟아부었다. 지난 5년 동안 인수·합병 건수로는 롯데그룹이 재계 1위이다. 2009년 50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롯데그룹 매출은 지난해 약 73조원으로 늘어났다.

신회장의 인수·합병 방식은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과 다르다.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 1967년부터 수십 년 동안 서서히 롯데의 몸집을 불려왔다면, 아들 신동빈 회장은 그 속도가 빠르다. 투자 계획을 세울 때 여러 가지 변수에 맞춘 차선책도 세운다. 아무리 군침이 도는 매물이라도 다른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 등을 꼼꼼하게 따져 타당한 금액을 제시하기로 유명하다. 상당히 공을 들였던 2007년 하이마트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실지언정 끝내 무리하지 않았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냉철함은 신회장이 금융계에서 쌓은 내공이다. 그는 1982년부터 7년 동안 노무라증권 런던 지점에서 근무하면서 돈의 위력과 위험을 모두 경험했다. 지난해 일본 경제 주간지 <니케이비즈니스>도 신회장이 국제적 금융 감각을 발휘한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했다고 표현했다. 신회장도 “내가 노무라증권에서 근무하던 1980년대 중반은 영국에서 ‘빅뱅’으로 알려진 구조 개혁을 단행하던 시기이다. 선진 기업들의 재무 관리와 국제 금융 시스템을 피부로 접할 수 있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신회장은 인수·합병에 투자하는 돈을 부채로 충당하지 않았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오래전 은행 거래로 큰 어려움을 겪은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신회장은 평소에는 은행 돈을 쓰지 않는다. 기업을 상장해 자금을 마련하고, 꼭 필요할 때만 자금을 차입하는 편이다. 계열사 대부분의 부채 비율이 낮고, 차입 의존도도 10%대에 그칠 정도로 재무 구조가 우량한 이유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격호 회장은 기업을 상장하지 않았지만 신동빈 회장은 2006년 롯데쇼핑을 상장했다. 이번에 인수한 하이마트도 상장사이다. 증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자금 흐름과 신용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고용 창출 못하는 부동산 그룹” 지적받기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 시사저널 최준필
이와 같은 치밀한 인수·합병은 롯데 성장의 밑거름이다. 그러나 자산 순위 재계 5위 재벌그룹에 걸맞은 사업을 펴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기보다는 기존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은 고용 창출 면에서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불황에 빠진 경제에 도움을 주려면 대규모 투자나 대형 인수·합병이 필요하다. 그러나 롯데그룹이 지난 10년 동안 인수한 35개의 기업 중에서 1조원 이상을 투자한 국내 기업은 GS백화점과 마트, 하이마트뿐이다. 나머지는 평균 2천8백억원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한마디로 자잘한 기업만 사들인 셈이다.

인수한 35개 기업 중에 15개는 유통 관련 기업이다. 롯데그룹의 매출에서 4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유통 사업의 비중이 크다. 그렇다 보니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다. 롯데그룹의 79개 계열사 중에 내수 기업은 70개 이상이다. 롯데그룹에서 호남석유화학과 KP케미칼 등이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20% 남짓이다. 삼성, LG, 현대차가 외국 시장에서 선전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인수한 기업을 버리지 않는 점은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껌을 팔아 성장한 기업이어서 그런지 놀고, 먹고, 입는 소비 사업으로 돈을 버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국내 경제에 도움이 되는 대형 인수·합병이나 신규 투자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그룹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듣는다. 롯데그룹이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는 13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중구 소공동은 롯데타운이다. 기존 호텔과 백화점 외에도 2002년 미도파백화점을 사들여 세운 영플라자와 2005년 지은 명품관 에비뉴엘이 큰 구역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와 잠실에도 롯데제과, 롯데홈쇼핑, 롯데백화점, 롯데월드 등이 포진하고 있다. 서울의 요지를 차지한 데 이어 최근에는 프리미엄 아울렛과 롯데몰을 경기도 파주와 김포에 지으면서 수도권 전반으로 입지를 확대하는 흐름이다.

신회장은 2014년 매출 100조원을 돌파하고, 2018년 2백조원을 돌파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앞으로 6년 동안 현재의 매출을 세 배가량 성장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내 경제에 순기능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박종열 HMC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롯데그룹의 백화점, 마트, 홈쇼핑 등이 소비자에게 편의를 제공한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롯데는 한국 경제의 발전과 관련해 대기업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기여를 하지 못했다.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고용을 창출한 것이 아니라 기존 기업을 인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하이마트 인수로 롯데그룹은 외국 시장 진출이 가능해졌다. 롯데그룹이 한국 가전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인도나 인도네시아에 진출한다면 국내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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