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인구의 거점 시장에 ‘기회의 문’ 열리다
  • 양곤·김세원│편집위원 ()
  • 승인 2012.07.23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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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 부는 아시아의 마지막 미개척지 미얀마 현지 취재

미얀마 바간에 있는 불교 사원들. ⓒ AP 연합

지난 7월4일 인천을 출발해 12시간 만에 도착한 양곤은 한국의 1960년대 지방 도시를 연상케 했다. 사람을 가득 태운 채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시내버스, 곳곳이 파여나간 도로, 깨진 유리창으로 스콜(열대성 소나기)이 그대로 들이쳐 좌석에 물이 가득한 택시, 정전 탓에 수시로 멈추는 건물 엘리베이터, 길가에 각종 좌판을 가득 늘어놓고 음식이며 물건을 파는 아낙들….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맥도날드나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슈퍼마켓은 찾아볼 수 없다. 스타벅스, 커피빈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말할 것도 없다.

미얀마 최대의 불교 사원인 양곤 도심의 ‘쉐다곤 파고다’는 황금 도시라는 이름 그대로 73캐럿의 다이아몬드와 8천여 개의 보석, 54t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99m 높이의 불탑이다. 인구 5천7백만명 중 90%가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답게 아침마다 자주색 가사를 입은 스님들의 탁발 행렬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음식과 차, 돈을 스님에게 보시하며, 미얀마 국민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한 번은 불교 사원에 들어가 스님들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한 영어학원과 교통 체증을 일으킬 정도의 자동차 행렬, 어디를 가나 눈에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지난해 4월 ‘민주화의 봄’ 이후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이다.

한류 덕분에 한국은 ‘가까운 나라’로 인식돼

미얀마 사람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인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한류 덕분이다. 미얀마 사람 대부분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 등 4~5마디의 한국말을 알고 있다. 미얀마 한류의 원조인 <가을동화> 이후에도 <대장금> <이순신> <주몽> <대조영> 등의 역사 드라마가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3개 TV 방송사 중 두 방송사가 프라임 타임인 저녁 7~8시에 한국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다.

김해룡 주미얀마 대사는 “2001년 10월 한류의 시발점이었던 <가을동화>가 방영될 당시, 주인공 ‘은서(송혜교 분)’가 마지막 회에서 죽자 사무실마다 여직원들이 모여 그들의 가족이 죽었을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는 얘기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오는 10월 영화제, K-pop 경연대회, 한류 스타 초청 공연 등 ‘한국 주간’ 행사를 통해 대대적인 한국 열풍을 일으킬 계획이다”라고 귀띔했다. 일행이 묵었던 차이나타운의 저렴한 호텔 종업원들도 우리 일행이 한국인인 것을 알고는 마주칠 때마다 ‘준서(<가을동화> 남자 주인공)’ ‘은서’(<가을동화> 여주인공)를 거론하며 미소를 지었다. 최근에 방영된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영향으로 ‘구준표’ ‘이민호’는 미얀마의 젊은 여성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쉐다곤 파고다로 가기 위해 탑승했던 택시의 기사는 유창한 한국말로 “1년 동안 한국의 가구 공장에서 일해 번 돈으로 이 택시를 샀다. 돌아와 보니 물가가 너무 올라 먹고살기 힘들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2년 만에 양곤의 주요 아파트 월세가 네 배 이상 뛰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 추정치는 지난해 미화 7백88달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07년 28.6%, 2011년에는 11.8%나 되었다. 미얀마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초임은 미화로 월 100달러, 공무원인 의사의 월급은 2백 달러, 10년차 은행원의 월급은 2백80달러이다. 그런데 승용차 1대 값이 무려 3억원, 양곤의 부자 동네인 골든밸리 지역의 땅 1평(3.3㎡) 값은 자그마치 2천만원이다. 

인프라는 취약…노동력·자원·시장은 좋아

박철호 양곤 무역관장은 “한국 기업의 미얀마 진출 환경은 전력, 통신 및 도로 인프라 취약이라는 3불(不)과 양질의 노동력, 세계적인 광물 자원, 6천만명 규모의 내수 시장 등 3호(好)로 요약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미얀마 진출이 유망한 분야로는 매장량이 풍부한 철·구리·니켈 등 광물 자원 개발, 프랜차이즈 및 유통 산업, 봉제·신발·가방·전자 조립 등 노동 집약적 제조업, 옥수수·야자나무·자트로파 등 바이오 에너지 작물 재배 등을 손꼽았다. 실제로 양곤은 전력 부족이 심각해 건물마다 자가 발전기를 설치해놓고 있으며, SK와 LG텔레콤은 아예 국제 로밍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 속도도 한국의 56k 모뎀 수준이고 그나마 정부 통제로 구글 메일만 열렸다.

하지만 지난해 민주화와 개방 노선으로 돌아선 이후 미얀마는 국제 사회에서 ‘잠재력이 큰 아시아의 마지막 미개척지이자 기회의 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반도의 세 배에 이르는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 지리적으로는 동북아-동남아-인도를 잇는 30억 인구의 거점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 양곤·김세원 제공
“왜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그리냐구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미련이 남고 후회와 번민도 생겨나죠.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는 뒤돌아보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지요. 대작을 주로 그리는 이유는 공간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지요.”

미얀마의 국민 작가로 칭송받는 민 왜 웅(52·사진 왼쪽)은 걸어가는 승려의 뒷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인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7월6일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양곤의 대표적인 부촌인 골든밸리에 있는 민 왜 웅이 다른 10명의 작가와 함께 설립한 뉴트래저 아트 갤러리를 찾았다. 민 왜 웅과 양곤 대학 미대 강사로 있는 모뉴의 주선으로 한국-미얀마 현대미술 교류 워크숍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미얀마 전통예술 및 공예가 협회 초청으로, 서준호 스페이스 오뉴월 대표와 송성진·장수종 작가 등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양곤을 찾았다. 4층 건물에 자체 발전기를 갖추고 실내 수영장에 널따란 정원까지 갖추고 있는 민 왜 웅의 갤러리는 며칠 동안 지켜보았던 양곤 서민들의 삶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4층에 있는 널따란 아틀리에에서는 특이하게도 27세 나이에 마약 과용으로 사망한 미국의 록가수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물을 확대해 사진처럼 정교하게 캔버스에 옮기는 그의 작업에서는 그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영국의 수채화 화가 앤드류 와이어트나 미국의 꽃그림 작가 조지아 오키프, 모네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1982년 버마 국립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난 30년 동안 미얀마는 물론 싱가포르, 홍콩, 런던, 취리히, 파리, 시카고, 뉴욕 등에서 1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한국수채화협회 초청으로 서울 한전갤러리에서 동남아 작가들과 함께 그룹전을 갖기도 했다. 승려들의 모습을 담은 그의 작품은 홍콩, 런던, 파리에서 미화 2만 달러에 팔리고 있다. 그는 11~13세기 불교사원의 벽화에 기원을 둔 미얀마 전통미술의 기법과 미감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데 충실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골든밸리에 있는 또 다른 갤러리 겸 스튜디오 KZL 아트를 운영하고 있는 젊은 작가 킨 조 랏(32)은 사회적으로 만연한 가난을 직시해 캔버스에 담아내려 애쓰고 있다. 그는 어두운 푸른색 바탕에 군중들의 뒷모습을 담아낸 <군중>, 학교에 가는 대신 돈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을 포착한 <길거리 아이들> 연작을 통해 미얀마의 현실을 고발한다. 아웅산 장군의 얼굴을 새긴 스탬프를 수없이 찍은 바탕 위에 아웅산 수치 여사의 초상을 그린 작품에서는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도 느껴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팜비치,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10여 차례 개인전과 그룹전을 연 킨 조 랏은 젊은 나이임에도 미얀마 내에서 작품 값이 가장 비싼 블루칩 작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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