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교통지옥’ 고속도로, 물리학이 뚫는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7.2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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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팀, 운전자 특성·합류부 정체 등 체증 요인 찾아내…한 차선에 시간당 1천8백대 이하 통과해야 ‘원활’

ⓒ 연합뉴스

휴가철이다.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에 즐겁지만 꽉 막힌 고속도로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비단 휴가철만이 아니다. 운전하다 보면 꽉 막혀 거북이걸음으로 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정체가 풀리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도대체 저 구간이 왜 정체였지’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답은 찾을 길이 없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연구팀은 교통 체증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을 개발해 정체의 근본 원인을 밝혔다.

실제의 교통 흐름을 실제와 가장 가깝게 구현한 ‘교통 모델’ 개발

교통 체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당연히 첫째 이유는 자동차가 많고 도로가 좁기 때문이다. 지름이 커서 단면적이 넓은 파이프에는 작은 파이프보다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물이 지나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차선이 많은 넓은 도로에서는 더 많은 차가 다닐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차선 위를 달릴 수 있는 차량의 수는 정해져 있다.

교통공학자들에 따르면 한 차선에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수는 시간당 1천8백대이다. 자동차가 2초에 1대꼴로 지나가는 속도이다. 최소 이 정도는 되어야 운전자가 앞차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자동차가 그 이상으로 많아지면 그 도로는 막히고 사고 위험도 높아진다. 하지만 똑같은 넓이의 도로에 똑같은 수의 자동차가 있더라도 모든 곳에서 똑같이 길이 막히는 것은 아니다. 잘 들여다보면 길이 막히는 원인이 따로 있다.

“빨리 달리던 자동차들이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느릿느릿 구르게 되는 것은 왜일까?”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1990년대부터 교통량 속에서 자연적 체증을 이끌어내는 인자들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수없이 연구해왔다. 하지만 흡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연구팀이 물리학적 법칙을 적용해 운전 도중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또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흐름에서도 희한하게 차들이 몰려다니는 현상이 나타나는 실제의 교통 흐름을 구현한 ‘교통 모델’을 개발해 국제 물리학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 모델은 2004년 김두철 교수팀이 처음 발표했는데, 연구를 거듭한 끝에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어 현재 교통 체증 현상뿐 아니라 여러 시간 뒤의 교통 흐름까지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운전자의 특성도 교통 체증을 심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도로에 차가 많더라도 앞과 뒤에 있는 차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운전하기만 하면 느리지만 꾸준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 상태를 ‘동기 흐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움직이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 자동차는 마치 파도가 치듯이 일렁거리며 움직인다. 대다수 운전자가 어느 순간 속도를 확 냈다가 다시 확 줄이며 불규칙하게 운전하기 때문이다.

돌발적인 상황으로 앞차의 한 운전자가 급정거를 할 경우 그 결과는 전후좌우의 차에 영향을 준다.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자동차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니다. 브레이크를 밟는 시점은 앞차에서 점점 뒤로 진행한다. 교통량이 적으면 그 효과가 곧 없어지겠지만 교통량이 많은 경우에는 작은 정체 구역을 형성하고, 이러한 정체 구역은 점점 뒤로 전파되어 그 결과 동기 흐름이 깨지면서 차가 막히게 된다. 이런 요소들을 통계물리학으로 계산해 전체 교통의 흐름을 예측한다.

수 시간 후의 교통 흐름 예측하는 모델이어서 큰 경제적 효과도 기대

연구팀은 교통 모델을 통해 신호등이나 교차로도 없는 고속도로가 막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로 들어오는 합류부에서 발생하는 정체가 뒤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잘 흐르던 고속도로에 갑자기 자동차가 들어오면 뒤따라오던 자동차가 순간적으로 속도를 늦추게 된다. 예를 들어 시속 100㎞로 달리던 도로에 자동차가 계속 끼어들어 시속 40㎞로 줄어든 경우, 당장은 합류부 근처만 속도가 줄어든다. 그러나 뒤따라오던 차량이 연쇄적으로 속도를 줄이면서 순식간에 전체 도로의 속도가 시속 40㎞로 떨어지게 된다.

서행 차량이 추월 차선에 들어서도 그 뒤를 쫓던 고속 차량의 속도가 뚝 떨어진다. 감속의 파도는 곧 뒤로 물결쳐 간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한 대의 차량’ 때문에 많은 차량이 꼬리를 물고 기어가게 된다.

이렇게 차가 막히면 어떤 손해가 생길까? 그만큼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하면 도로 위에서 버리는 시간은 그대로 돈이다. 연료비도 만만치 않다. 길이 막혀 서 있더라도 연료는 계속 소비된다. 한국교통연구원에서는 이 모든 비용을 합쳐 연구 보고서를 냈다. 우리나라에서 교통 혼잡으로 발생하는 손해는 무려 24조원! 이 돈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에 해당한다. 차가 막히는 것이, 잠깐 참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통 체증은 환경에도 적이다. 배기가스량을 늘리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기계공학과 앤드류 킨 교수는 길이 막혀 차가 움직였다 멈췄다를 반복할 때 배기가스량이 어떻게 변할지를 실험으로 알아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서 자동차를 몰 때 나오는 배기가스량을 측정한 결과, 내리막길을 갈 때보다 가속 페달을 자주 밟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 일산화탄소(CO)와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이 최고 두 배까지 증가했다. 막힌 도로를 달릴 때 운전자는 가속 페달을 자주 밟게 마련이다.

휴가철이나 연휴, 명절만 되면 되풀이되는 우리나라의 교통 체증. 그럴 때마다 방송국에서는 실시간으로 교통 정보를 알리는 ‘교통 특집’ 방송을 하느라 시끌벅적하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정체 구간이고,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린다는 정보를 계속 알려준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얼마 걸렸다는 교통 정보는, 어떤 차가 출발 지점에서 도착지에 도착하기까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속초까지 10시간 걸려 고향에 도착했다는 정보는, 10시간 전에 출발한 차를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다. 이러한 10시간 전의 도로 상황은 지금 막 고향을 떠나려는 운전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필요한 것은 지금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까지 도착하려면 몇 시간 걸린다는 수 시간 후의 도로 상황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이제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여러 시간 후의 교통 흐름을 예측하는 새로운 모델이 그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델을 이용한 예측 시스템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복잡한 교통 흐름의 개선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다. 그 효과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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