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교체도 멋대로 농구협회의 자충수
  • 기영노│스포츠평론가 ()
  • 승인 2012.07.2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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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농구 / ‘앙카라 대참사’ 겪으며 본선 진출 좌절

지난 6월26일 런던올림픽 여자 농구 예선 한국 대 모잠비크 경기에서 드리블하는 최윤아 선수. ⓒ REUTERS
한국은 축구·농구·배구 등 3대 구기 종목 가운데, 남자 축구와 여자 배구만이 런던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남자 농구와 남자 배구는 세계 랭킹이 20위권 밖에 있기 때문에 어쩌면 올림픽 티켓을 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여자 농구는 세계 랭킹이 9위에 올라 있었고, 지난 6월 말 터키 앙카라에서 벌어진 2012 런던올림픽 세계 예선에 출전한 12개팀 가운데, 5개팀이나 본선에 오르기 때문에 올림픽 본선 진출 가능성을 8할 이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첫 경기에서 모잠비크에게 이겼지만, 우리보다 세계 랭킹이 낮은 크로아티아에 패했고, 8강전에서 프랑스에게 무너졌다. 5~8위전으로 밀려나 일본과의 5, 6위 진출전에서 이기면 마지막 올림픽 본선행 티켓이 걸린 5위 다툼을 해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일본과의 5, 6위 진출전에서 그동안 안으로 곪아왔었던 한국 여자 농구의 치부가 모두 드러났다. 한국은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일본팀에게 정신력·체력·투지 면에서 모두 뒤지며 1쿼터를 4-29라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스코어 차이로 뒤졌다. 이같은 양상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어 결국 51-79, 28점 차의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면 여자 농구의 ‘앙카라 대참사’는 왜 일어난 것일까?

한국과 일본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에서도 항상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다른 나라에게는 패하더라도 반드시 상대국만은 잡아야 한다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다. 당시 여자 농구는 신세계 팀의 해체와 김원길 여자 프로농구연맹(WKBL) 총재의 사퇴로 위기를 맞았었는데, ‘앙카라 대참사’까지 일어나서 줄초상을 당한 분위기이다.

런던올림픽 예선은 관례대로라면 2011~12시즌 여자 프로농구 통합 챔피언 신한은행의 임달식 감독이 지휘를 맡아야 한다. 2009년부터 3년간 여자 대표팀을 이끌었던 임달식 감독은 대표팀에 대한 열악한 지원과 한정된 준비 기간에도 꾸준한 성적을 올려왔었고, 오랜 숙제이던 세대교체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농구협회는 챔피언 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다는 원칙을 스스로 깨버리고 지난 시즌 4위에 그친 이호근 삼성생명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이번에 ‘앙카라 대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하의건·진성호 부회장과 전미라 기술위원장 등 감독 선임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임달식 감독을 외면한 것이다.

그러나 감독만 바뀌었을 뿐, 대표팀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프로 리그에서의 장기 레이스에 지친 선수들은 이미 제대로 훈련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협회는 기본적으로 선수의 몸 상태 하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훈련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던 하은주를 무리하게 명단에 올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은주는 터키 앙카라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대표 선수에 대한 배려도 없었고, 상대 팀 정보 분석도 제대로 안 해

대표로 뽑힌 선수들에게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했고, 상대국에 대한 전력 탐색이나 정보 분석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국제 대회 때마다 반복되는 심판 판정이나 일정상의 불리함에 대해서도 불평만 할 뿐, 한국 농구의 입장을 대변해줄 창구도 없었다. 농구인이 안에서 밥그릇 싸움에만 열을 올릴 동안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 농구를 위해 행정력을 발휘할 외교력을 갖춘 사람도 없었다.

여자 농구는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 2000년 시드니올림픽 4위 그리고 4대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이번 ‘앙카라 대참사’로 당분간 암흑기를 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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