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당첨, 그 독 묻은 행운
  • 이규대 기자·윤명진 인턴기자 ()
  • 승인 2012.08.0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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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 일확천금을 통해 인생 역전을 꿈꾸었던 로또복권 당첨자들의 이후 인생이 모두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들어 로또 1등 당첨자들 가운데 전과자가 되거나 자살까지 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행복한 인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던 당첨금이 오히려 스스로를 해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화목했던 가정까지 파탄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로또 비극’의 실상을 들여다보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2년 12월, 이 땅에 ‘로또 광풍’이 불었다. 로또는 등장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기존의 복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당첨 금액으로 대중들을 유혹했기 때문이다. 여섯 개의 숫자로 벌이는 확률 게임에 전국이 들썩거렸다. 당시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수습하며 양극화 사회로 빠르게 재편되어 나가던 시기였다. 사회적 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층 간 사다리가 빠르게 줄어들던 때, 로또는 ‘인생 역전’을 표방하며 서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결국 로또를 향한 열망은, 심화되는 양극화 사회 속에서 신분 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황금 사다리’에 대한 열망과 다름없었다. 이런 로또 광풍은 지난 2004년 구입 가격을 2천원에서 1천원으로 조정해야 될 정도로 식을 줄을 몰랐다. 그래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어가는 상황에서, 로또 당첨이 서민들에게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은 이들이 매주 꾸준히 배출되었다.

하지만 로또 당첨이 반드시 사회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러는 사다리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진 자리에는, 삶을 절망으로 이끄는 수렁이 있었다. 희박한 확률을 뚫고 행운을 거머쥔 이들의 삶이 도리어 불행해지는 ‘로또의 비극’이 그것이다. 최근에도 로또 당첨이 불행의 씨앗이 된 사례가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 7월23일 오후, 광주광역시의 한 목욕탕에서 김 아무개씨(43)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김씨의 시신은 문이 잠긴 탈의실 안에 있었다. 목욕탕을 찾은 다른 손님이 탈의실 문이 열리지 않자 주인에게 문의했고, 이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 주인이 김씨를 발견했다. 천장 배관에 노끈으로 목을 맨 김씨는 발견 당시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조사에 나선 경찰은 김씨가 타살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원한 관계 등 타살의 동기가 될 만한 요인도 없었다. 무엇보다 문이 잠긴 밀실에서 발견된 점을 고려해, 김씨가 스스로 세상을 버린 것으로 결론 내렸다. 김씨가 사망하기 전까지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점도 근거가 되었다. 특히 김씨가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가 당첨금을 모두 잃은 인물이라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잇단 사업 실패로 예전보다도 가난해져

지난 8월2일 오후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로또의 명당에서 사람들이 로또복권을 사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김씨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초,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었다. 당첨금은 23억원. 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은 18억원이었다. 김씨는 과거 구직과 실직 상태를 오가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복권에 당첨된 시기에는 식당을 운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자신이 얻은 행운을 주위에 가급적 알리지 않으려 했다. 김씨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아버지와 남동생, 아내만이 알고 있었다. 그 밖에 어떤 친지나 지인도 몰랐다. 18억원이라는 횡재를 건실한 ‘인생 역전’의 기회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씨는 본연의 선량한 성품을 잃지 않았고 방탕한 소비벽과도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김씨는 당첨금을 바탕으로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씨의 꿈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시도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사기를 당해 돈을 잃기도 했다. 수중에 있던 당첨금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다급해진 김씨는 주식 투자에도 손을 댔다. 하지만 수익은 얻지 못했다. 미국발 금융 위기라는 악재와 맞물려 도리어 손실만 입었다. 결국 18억원의 돈을 모두 잃고 오히려 5천만원 상당의 빚까지 졌다. 인생 역전을 꿈꾸던 김씨의 삶이 도리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최근 수년간 직업도 갖지 못한 김씨는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관계자는 “가족들에게 필요한 생계비를 마련하지 못한 자책감이 죽음을 택한 원인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결국 김씨는 사람이 드문 한낮의 목욕탕에서 세상을 버렸다. 유서조차 없는 쓸쓸한 죽음이었다.

지난 7월27일, 인천남동경찰서는 최 아무개씨(42)를 상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최씨는 사흘 전인 24일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집으로 불러 폭행하는 한편, 불로 달군 흉기를 휘두르는 등 가혹 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의 인생이 무너진 배경에도 로또가 있었다. 최씨는 지난해 10월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 당첨금이 19억원, 실수령액은 13억원이었다. 이후 최씨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그런데 최씨는 두둑한 당첨금만 믿고 결혼 뒤에 방탕한 생활을 했다. 과음을 일삼았고, 로또를 구매하는 데도 많은 돈을 썼다고 전해진다. 경찰에 따르면 13억원의 돈 중 현재 최씨의 수중에 남은 것은 5천만원뿐이라고 한다. 견디지 못한 아내는 별거에 들어가는 한편 이혼을 요구했다. 최씨는 “합의 이혼을 해줄 테니 오라”라고 아내를 불러낸 뒤 폭력을 행사하다 경찰에 잡혔다. 로또 당첨금은 방탕한 생활로 금세 탕진했고, 끝내는 결혼 생활마저 망가뜨리며 범죄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로또에 당첨된 이가 불행해지는 사례는 지난 10년 사이에 자주 발생했다. 지난 2005년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어 약 14억원을 받은 황 아무개씨는 도박과 유흥에 젖어 8개월 만에 가진 돈 대부분을 써버렸다. 속칭 ‘포커’ 게임에 중독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황씨의 말로는 비참했다. 빈털터리 신세가 된 황씨는 도박 자금과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절도를 일삼다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경험·노하우 없이 큰돈 다루다 ‘낭패’

2008년 9월29일,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어 받은 14억원을 모두 탕진한 뒤 도둑질을 하다 붙잡힌 황 아무개씨가 경남 진해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04년, 대전광역시에서는 건실하게 살아오던 한 가정이 풍비박산된 일도 벌어졌다. 여유롭지 않은 형편임에도 가정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부부가 있었다. 부부의 삶은 2003년 3월 로또 1등에 당첨되며 전환점을 맞았다. 당첨금은 무려 1백32억여 원이었다. 하지만 성실하던 남편은 갑작스럽게 부를 얻자 변하기 시작했다. 술과 도박에 빠지는 한편 내연녀와 불륜까지 저질렀다. 결국 합의 이혼한 부부는 법정에서 재산 다툼까지 벌이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모두 로또 당첨이라는 행운이 불행으로 둔갑한 사례들이다.

이런 사례들이 최근까지 이어지면서 로또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복권에 당첨된 이는 불행해지기 쉽다’라는 통념을 방증하는 사례로 보는 시각마저 나온다. 하지만 이런 통념을 입증할 통계나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복권 당첨자에 대해 유의미한 수준의 표본을 확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행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서는 당첨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런 탓에 현재로서는 복권 당첨이 당사자에게 어떤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큰지 판단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복권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지난 제477회 로또 1등 당첨자인 ㄱ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한 방송에 출연해 “사채업자들에게 빌린 것을 포함해 빚이 총 1억원이 넘었다. 로또에 당첨되자마자 빚을 모두 갚았다. 6억원어치의 근사한 단독주택을 구매하고, 노후 대책을 위해 연금에 투자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 개인 신상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던 박삼수씨는 “로또 당첨으로 인해 가족들과 더 행복해졌다. 당첨금으로 받은 돈(11억원 상당)은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적절히 사용했고, 남은 돈은 노모를 위한 자금으로 저축해놓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로또로 인해 삶이 불행해진 여러 사례를 검토해볼 때,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이 불행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삶의 패턴이 완전히 뒤바뀐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는다. 도박재활센터에서 일하며 수많은 ‘일확천금 경험자’를 만났던 전문 상담가 안상일씨는 “큰돈을 얻고 나서 생기는 생활 패턴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불행해지기 쉽다”라고 말한다(43쪽 인터뷰 기사 참조). 갑자기 큰돈을 만지게 되면서 찾아오는 유혹을 억제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갑자기 큰돈을 얻게 되면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돈으로 인해 가족 및 지인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광주의 목욕탕에서 목숨을 끊은 김씨의 사례는 경우가 다소 다르다. 김씨는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지 않았음에도 경제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평소 큰돈을 다루어본 적이 없었던 탓에,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많은 돈을 다루어본 적 없는 사람은 그에 대한 가치관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한다. 건설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행운이 오히려 화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염종래 한국가정경제연구소장은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게 되면 주변에서 ‘무슨 사업을 하면 좋을 것 같다’라는 등 갖가지 제안이 속출한다. 그럴수록 신중해야 한다. 자신이 소망하고 꿈꾸던 일이라면 과감히 도전할 필요도 있겠지만,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에 즉흥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분명한 것은 로또 당첨 자체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운은 하늘이 주되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좀 더 중요한 진실이 있다. 로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돈은 단지 기회를 열어줄 뿐, 실제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순간의 성취에 젖어들어 자신을 잃거나, 이른바 ‘고위험 사회’에서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순간 당첨자들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토록 열망하던 ‘황금 사다리’가 순식간에 허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최근 로또를 둘러싸고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냉정한 자본주의의 법칙을 일깨워주고 있다. 자신이 손에 쥔 부를 현명하게 운영할 능력이 없는 이에게는 엄청난 행운조차 불행으로 뒤바뀌게 만들고 만다는 씁쓸한 진실이다.


“일확천금 때문에 생기는 생활의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중독예방치유센터 전문 상담원 안상일씨 인터뷰


일확천금을 손에 쥐었다가 놓쳐버린 사람의 심리는 어떠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중독예방치유센터 관계자로부터 조언을 구했다. 중독예방치유센터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복권을 비롯한 사행성 사업에 손을 댔다가 인생이 무너진 이들의 재활을 돕는 곳이다. 이곳에서 전문 상담원으로 일하는 안상일씨는 “큰 액수의 당첨금을 수령했다가 잃으면, 마치 도박에서 큰돈을 얻고 잃을 때와 비슷한 심리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복권의 중독성은 강한 편인가?

경마·경영·카지노·스포츠토토 등 다른 사행성 사업과 비교하면 그리 강하지 않다. 복권은 결과를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배팅을 하고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점이 (도박으로서의) 쾌감을 반감시킨다. 문제는 단 한 번이라도 복권에 당첨되는 경험을 갖게 될 때이다. (다시 큰돈에 당첨되는 것은) 엄청나게 적은 확률임에도, 자기는 또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자기 수준에서 감당이 안 되는데도 돈을 빌려서 복권을 사게 되고, 그로 인해 엄청난 채무에 사로잡히거나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고도 불행해지는 사례는 왜 발생할까?

갑자기 일확천금을 얻게 되면 생활 패턴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근로 의욕이 상실되거나, 소비의 충동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계획을 가지고 나눠서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없던 돈이 생기니 쓰고 싶다는 인간의 심리가 우선 작동하기 쉽다. 기부를 하라거나 돈을 빌리려 달라붙는 사람들을 접하며 스트레스도 받는다. 이런 요인들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불행해지기 쉽다.

복권 당첨금을 탕진하고 나면 심리적으로 어떤 상태가 되나?

공허함을 느낀다. 돈이 계속 줄어들면서, 당첨 직후 가졌던 ‘졸부’의 느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돈이 쑥쑥 빠져나가는 느낌 때문에 인생에 공허함을 느끼기 쉽다. 개인이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는 것은 우울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삶에서 느끼는 공허함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들에게 닥칠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으로는 무엇이 있나?

당장 생활이 급변하는 것부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사회적으로 (뒤바뀐 처지를) 인정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루아침에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면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지 않겠나.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려고 무리한 도전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또다시 일확천금을 노리고 복권이나 기타의 사행성 사업에 중독되어갈 우려도 크다. 사회적 관계 면에서도 위험하다. 주변에서 “저 사람 돈 흥청망청 쓰더니 결국 저렇게 되었다”라는 시선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가 돈을 탕진하는 일이 당사자의 성격에도 영향을 주나?

개인의 성격은 성인이 된 이후로는 굳어져 변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정서적으로는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도박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서가 예민해져 정서적으로 ‘천당’과 ‘지옥’ 사이를 널뛰기한다. 분노도 많아진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하다 보니 원인을 국가에 돌리는 등 공격적인 성향이 자주 나타난다. 또, 자존감이 낮아져 화도 잘 참지 못하고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많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주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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