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제재, ‘믿는 도끼’에 찍혔다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8.1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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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은행이 이란 자금 불법 세탁한 사실 드러나…미국, ‘이란 정부와의 공모’로 규정

영국 런던에 있는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 ⓒ EPA연합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20년째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금융 거래를 제약하는 경제 제재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유엔을 통해 네 차례나 경제 제재를 했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이란이 핵을 포기하기는커녕 핵을 보유하는 쪽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란에 대해 다섯 번째 제재를 시도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의 비협조로 실패했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맹비난했다. 두 나라는 핵 확산을 막으려는 국제 사회의 공조를 배신한 혐의를 몽땅 뒤집어썼다. 그러나 8월6일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공조 의무를 배신한 진짜 범인은 내부에 있었다. 1백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스탠다드 차타드(S&C) 은행이었다.

미국 뉴욕 주 금융감독국은 차타드 은행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이란 자금 2천5백억 달러를 불법으로 세탁해주었다고 밝혔다. 밴자민 로스키 감독국장은 차타드 때문에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노출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타드가 이 혐의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변을 하지 못할 경우 뉴욕 주에서의 차타드의 영업권을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감독국은 성명에서 차타드 은행을 ‘깡패 기관’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측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파격적 표현이다. 이 성명은 심지어 차타드측이 미국의 답변 요구에 대해 “한심한 미국인들아, 너희들이 뭔데 우리더러 거래를 하라 마라 하느냐”라는 식으로 조폭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까지 공개했다. 영국은 미국에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다. 그런 우방국 은행 간에 이 정도의 험한 말이 오갔다는 것은 상호 관계가 거의 파국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FBI 수사 중…8월 하순 청문회 개최 예정

이란 테헤란의 한 은행 앞에 설치된 현금입출금기를 이용하는 이란인들. ⓒ Xinhua
차타드는 그동안 이란 은행과 기업을 상대로 6만건의 금융 거래를 하면서 수백만 달러의 수수료를 챙겼다. 이 거래는 대(對)이란 제재 결의안에 따라 불법으로 분류된 것이기 때문에 차타드는 우방을 배신하고 불법 거래를 통해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된다. 차타드는 이에 대해 불법 거래 사실을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미국 당국의 조사 결과를 검토 중이라고만 말했다. 차타드는 검토 작업이 언제 끝날 것인지, 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정부 관리는 AP통신에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형사 입건 여부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FBI는 이 문제에 대해 공식 논평을 하기를 거부했다.

미국은 차타드의 행위를 이란 정부와의 ‘공모’라고 규정했다. 미국은 차타드 때문에 이란의 무기 거래, 마약 밀매, 정권의 부패 등 유엔 제재안이 정한 일체의 이란 관련 행위를 추적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 차타드는 문제의 거래를 하면서 일부 문서를 조작했다. 차타드 본사는 2006년 10월 이란과의 금융 거래가 나중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그룹에 치명적인 위해를 줄 것임을 경고한 사실도 수사 결과 밝혀졌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거래가 불법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거래가 사실로 밝혀지면 뉴욕 주의 돈세탁금지법을 위반한 죄가 구성된다. 또한 차타드는 불법 거래 사실을 은폐하고 미국의 관련 기관에 대한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공무 집행을 방해한 혐의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외국 은행은 이란과 거래할 경우 그 내용을 미국의 금융 감독 기관에 즉시 보고해야 한다. 수상한 거래가 계속되자 미국 재무부는 2008년 차타드와 이란의 거래를 차단했다. 이 거래가 이란에 핵 개발 자금을 제공하거나, 하마스나 헤즈볼라 같은 테러 조직에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차타드는 미국 재무부의 차단 조치 이후에도 이란과 검은 거래를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타드는 세계 70개 지점에서 하루 1천9백억 달러를 거래한다.

이 사건은 전통과 신뢰를 생명으로 삼는 차타드 은행이 저질렀다는 점에서 국제 금융계에 충격을 준다. 뉴욕 금융감독국은 차타드의 뉴욕 지점이 불법 금융 거래의 ‘최전방’ 역할을 함으로써 지구상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했다고 개탄했다. 미국 금융 당국은 8월 하순 이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한다. 청문회에서는 불법 거래를 한 배경과, 그것이 불법임을 알고도 중단하지 않은 경위를 규명한다. FBI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차타드 뉴욕 지점은 ‘프로젝트 가젤르’라는 암호를 사용해 직원들에게 이란과의 거래 사실을 은폐·조작하는 매뉴얼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숙지시킨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준다.

차타드 본사가 알고도 묵인한 정황도 밝혀져

차타드의 비행 사건은 미국이 테러리즘, 대량학살무기, 마약 밀거래와 관련된 자금이 불량 국가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터졌다.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차타드는 이란 외에도 유엔의 제재를 발고 있는 미얀마, 리비아, 수단과도 유사한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차타드 본사의 경영진은 뉴욕 지점의 거래에 문제가 있다는 하부 직원의 보고도 묵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6월 미국 법무부와 뉴욕 검찰은 쿠바 및 이란과 불법 금융 거래를 하다가 적발된 ING 은행과 6억1천9백만 달러의 분쟁 조정안에 합의한 바 있다. 문제의 거래가 불법이라고 결론 날 경우 차타드에는 상당한 벌금이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차타드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에서의 영업이익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이란은 이란 중앙 은행을 포함해 네 개의 자국 은행을 통해 핵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왔으나 이 은행들과의 금융 거래는 2008년에 전면 중단되었다. 이들 네 개 은행은 모두 차타드의 고객사들이다. 이란이 관련된 불법 은행 거래의 역사는 클린턴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금융 제재를 처음 실시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 차타드의 감사국은 각 지점에 미국 재무부가 하달하는 규제 지시를 묵살하도록 지시했다. 처음부터 공조에 협력할 의사가 없었다는 증좌이다. 미국의 법과 규정을 우롱한 차타드의 행위는 2001년부터 자행되기 시작했다.

차타드는 2003년 미국 금융 당국으로부터 수상한 거래가 있다는 통보를 받고 제3의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거래 내역을 감사하도록 하는 협정을 미국 연방준비은행(FRB)과 체결했다. 이 합의에 따라 차타드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거래 내역을 제3자에게 맡겨 감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감사 위탁을 받은 들로이트 앤 투치 은행마저 차타드와 공모해 불법 거래를 은폐하는 데 가담했다. 들로이트는 이런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에는 홍콩에 있는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테러 조직과 연관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은행에 멕시코 마약 조직의 검은돈을 지급한 사건이 있었다. 이 돈은 나중에 이란 쪽으로 유입되었다.

이란이나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미국은 금융 거래를 제약하는 정책을 펴왔고 이는 효과를 보았다. 그런데 일련의 사건에서 보듯이 금융 제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처럼 중차대한 국제 공조가 허점을 드러냄에 따라, 그것도 가장 믿었던 우방국의 은행이 개입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미국은 막심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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