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밀고 당기기’ 본격 시작됐다
  • 박승준│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 승인 2012.08.1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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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방중 성과로 2개 경제구 통한 협력 박차…북-러 간 협력과 북-미 간 접촉도 곧 이어질 듯

지난 8월14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 Xinhua 통신

“조선의 실권(實權) 인물의 방중(訪中)인가, 아니면 김정은 최초 방중의 마중물인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 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 Global Times)>는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 방문을 시작한 지 이틀 뒤인 지난 8월15일 이와 같은 제목을 달아서 보도했다. 한국 언론들과 북한 노동신문, BBC,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종합해서 장성택의 방중을 전하면서, 장성택의 신분에 관한 <환구시보>의 판단을 압축해서 정리한 제목을 단 것이다. 장성택이 김일성의 사위, 김정일의 매제, 김정은의 고모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당 행정부장 등 요직과 지위를 갖고 있는 ‘2호 인물’로서, 김일성·김정일과 마찬가지로 많은 수행원을 이끌고 공개 방문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장성택의 이번 방중은 중국의 경험을 학습해서, 붕괴 직전의 북한 경제를 구하기 위한 것이며, 앞으로 북한이 장기적인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불가결하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는 BBC의 판단을 돋보이게 소개했다.

경제 무역 협력의 새로운 방식이어서 주목

중국 인민일보는 장성택이 베이징에 도착한 다음 날인 8월14일 천젠(陳健) 상무부 부부장의 기고문을 실어 장성택 방중의 성격을 인민일보의 주 독자층인 중국공산당 간부들에게 설명하려 했다. 천젠의 기고문 제목은 ‘중·조(中·朝) 협력 심화로, 아름답고 새로운 한 편의 장을 공동으로 써나간다’는 것이었다. 기고문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은 지난해 6월 황금평-위화도 경제구와 나진·선봉(나선) 경제무역구 등 이른바 2개의 경제구를 공동 관리하는 의식을 진행했다. 1년 남짓 동안 협력은 적극적으로 추진되었고, 쌍방은 2개의 경제구를 완성하기 위한 입법을 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등 기초 공작을 해왔다. 이와 함께 지린(吉林) 성 권하(圈河)에서 북한 나진항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준공했고, 나진항으로 중국 화물을 운송하는 작업에 시동을 걸었으며, 고효율의 농업 시범 구역에서 실제로 생산물도 수확했고, 지린 성 주민들이 차를 몰고 북한 관광에 나서는 코스를 개발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황금평 경제구 관련 계획도 착실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같은 2개의 경제구 협력 방식은 중국과 북한 간 경제 무역 협력의 방식이며, 쌍방의 경제 무역 협력에 새로운 진전과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천젠은 설명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8월13일 베이징에 도착한 장성택은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 부장과 만나 2개의 경제구를 공동 관리할 위원회 설립에 합의했다. 북한의 식량을 확보하게 해줄 농업 협력과 나선 지구에 대한 중국의 송전(送電)과 정보 산업과 복장 가공업을 포함한 구체적인 산업 협력에도 합의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이번 장성택 방문에 앞서서 지난 3월에 황금평-위화도 경제구 법률도 통과시켜놓았다.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취재진은 지난 2월 나진·선봉 지역을 방문 취재해서 ‘조선의 작은 선전(深玔)’이라는 제목으로 나선 지역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도 소개했다. 비파도 해변에 지어진 별장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기도 하고, 중국 사람들이 차를 렌트해서 나선 지역을 관광하는 코스와 프로그램도 상세히 전했다. 중국 화폐인 인민폐로 직접 쇼핑을 할 수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고, 나선 지역의 전기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2백20볼트이며, 숙소에는 중국어를 하는 북한 종업원이 배치되어 있고, 호텔 내에서는 중국 어느 지역으로든 1분에 17위안(약 3천5백원)을 내면 국제전화도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장성택의 방중을 전하는 중국 관영 매체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중국이 지금 김정은 체제의 북한에 대해 희망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북한이 정치적으로는 고유의 체제를 유지하되, 경제적으로는 중국식의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는 것을 바라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2010년 7월에 발표한 ‘경제 개발 10년 전략과 계획’을 중국 관영 매체들이 집중 소개하면서, 북한이 기존의 합영투자지도국을 확대 개편해서 합영투자위원회를 설치한 점, 자원개발지도국을 자원개발성(省)으로 승격시킨 점, 단독으로 경제개발총국을 발족시킨 점 등을 높이 평가한다고 소개한 것 등에서 이와 같은 중국측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북한 나진·선봉 지역에서 자전거를 끌고가는 여성들(왼쪽 ⓒ AP 연합). 오른쪽은 지난 6월 황금평 개발 지역에서 위문 공연을 하는 북한의 인민군 군악대원들(ⓒ AP 연합).

과거처럼 ‘혈맹’ 강조하는 외교는 하지 않을 듯

중국 관영 매체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장성택의 이번 방중을 통해 2개 경제구를 중심으로 한 북한과 중국 간의 협력이 지난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앞으로 본격화되기를 희망하는 것이 중국의 의도인 것으로 판단된다. 장성택은 김정일 통치 시절,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김정일의 한 걸음 뒤에서 메모지를 들고 다니며 김정일과 중국 지도자들의 언급을 세심하게 메모하는 모습이 중국 TV를 통해 관측되었다. 장성택의 이번 방문은 중국으로서는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를 무리 없이 연결시켜줄 유일한 인물로서 장성택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상징적 최고 지도자로, 장성택을 실무 담당인 제2인자로 하는 북한이 중국에만 의존하는 ‘대중 일변도’의 외교를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 김일성의 가르침이었다고 김정일이 생전에 자주 언급해왔고, 또 미국과 직접 교섭을 해야 한다는 것도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학습을 시켰다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김정은과 장성택의 북한이 이번 2개의 경제구를 중심으로 한 북·중 간의 협력 프로그램과는 또 다른 북·러 간 협력 방식, 북·미 간 접촉 프로그램을 가동시킬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장성택 부위원장의 방중이 북·중 간의 확고한 ‘혈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북한과 중국의 밀고 당기기 전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이 중국과의 협력을 위해 러시아와 미국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점에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또 중국 관영 매체들의 장성택 방중 보도 내용이 주로 실무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점을 보면, 장성택 부위원장은 이번 방중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을 준비하는 임무도 수행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20대의 어린 지도자 김정은의 대중 외교술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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