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옆에서 고개드는 ‘新朴’들
  • 조진범│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2.08.2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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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유승민 등 개혁파들이 박근혜 후보의 변화 견인할지 주목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8월21일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박(新朴)’이든, ‘구박(舊朴)’이든, 어쨌든 결국 중요한 것은 후보 본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방위적이다. 이른바 ‘종박(從朴)’으로 불릴 정도로 박후보를 무조건적으로 따랐던 경선 캠프 참여 인사들조차 “박후보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묘하다. 박후보는 이번 새누리당 경선에서 84%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후보에게 “바꿔라”라고 주문하는 새누리당이다. 모양상으로만 보면 영 어색하다. 또 박후보는 여전히 대권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박후보의 변화를 촉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경선은 애당초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경선=박근혜 추대식’이라는 등식을 당연시했다. 뻔한 결과에 감동할 국민은 없다. 41.2%에 그친 경선 투표율이 증명한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을 포함해 역대에 가장 낮다. 유권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수도권 투표율은 그나마 전국 평균도 밑돈다. 서울 40.5%, 인천 35.8%, 경기 35.1%였다. 수도권 유권자들의 무관심이 반영된 결과이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경선 선거인단은 아무래도 새누리당의 지지층이라고 볼 수 있는데, 투표율이 너무 낮다. 특히 수도권 투표율이 낮아 마음에 걸린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22일 발표된 40대 표심에 대한 여론조사는 박후보측에서 볼 때 충격적이다. 동아일보의 40대 여론조사 결과, 양자 대결에서 박후보는 41.0%로 ‘장외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53.1%)에 크게 밀렸다.

표의 확장성 키우기 위해서는 변신 불가피

박근혜 후보의 고정 지지도는 견고하지만 확장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제기되었다. 2040세대는 박후보에게 취약층으로 꼽혀왔다. 경선을 거치면서도 2040세대가 박후보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얘기는 없었다. ‘박근혜 위기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후보는 대선 후보로 확정된 다음 파격 행보를 펼치고 있다. 악연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자신을 ‘칠푼이’라고 불렀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만났고,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도 예방했다. 전통적인 지지층뿐 아니라 친노 진영과 DJ측까지 외연을 확장하려는 의지라는 분석이 나왔다.

2040세대에게 적극 다가가려는 시도도 보였다. 지난 8월2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대학 등록금 부담을 반드시 반으로 낮추겠다”라고 말했다. 박후보는 일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40대는 우리나라의 허리인 만큼 그들의 고민을 풀기 위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을 반드시 하겠다”라고 밝혔다.

박후보의 파격 행보가 어느 선까지 계속 이어질지, 또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발휘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역사 인식 전환과 불통 이미지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5·16과 유신 문제는 여전히 박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박후보는 아직 역사 인식을 바꿀 생각이 없는 듯하다. 논란을 피해가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민주당의 대대적인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한 시점이다. 당장 민주당은 8월27일부터 ‘유신, 그 고통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연다.

안철수 원장과의 비교도 박후보로서는 부담이다. 안원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구명해달라는 탄원서에 동참한 사실이 알려지자 “인정에 치우칠 것이 아니었다”라고 사과했다. 안원장이 젊은 층에게 호감을 받는 데는 바로 이런 쿨한 태도가 작용하고 있다. 반대로 5·16과 관련된 박후보의 자기 중심적 역사관은 젊은 층에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이다. 정치평론가인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박후보가 국가 지도자가 되려면 아버지의 시대를 객관화시키는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 것이 쿨한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전략통으로 통하는 친박계의 한 인사는 “손님의 실수를 기다리는 격이다. 박후보가 잘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야권이 헛발질을 해야만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라고 밝혔다.

“최근 파격 행보 뒤에 ‘신박’ 있었다”

이런 탓에 “박후보가 바뀌어야 한다”라는 목소리는 높아만 간다. 경선 직후 특히 ‘신박’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박은 박후보의 측근 그룹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인사들이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유승민 의원이 대표적이다. 친박계에서 개혁적인 성향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사들이다. 재벌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이혜훈 최고위원도 신박에 속한다. 비대위에 참여했던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과 이상돈 정치발전위원도 신박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친박’ 인사들을 ‘구박’으로 몰며 “현재 박후보를 둘러싼 인사 중에서도 솎아내야 할 인물이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공천 헌금’ 파문을 계기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김무성 전 의원 등의 ‘복박(復朴)’ 움직임이 일자 이상돈 위원은 “김 전 의원이 상징하는 보수 연합, 보·혁 대립 구도는 박후보와 대치된다”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경선 직후 박후보가 보인 파격 행보 역시 신박의 존재감 때문에 나온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가 바꾸네가 아니라 박근혜가 바뀌네”라는 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위기를 박후보도 눈치채고 있다는 뜻이다. 당장 선대위 인선이 주목된다. 측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선 캠프 인선 방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민 대통합을 선언한 만큼 비박(非朴)을 끌어안는 탕평 인사와 개혁 성향의 친박계 인사, 중도를 넘어 진보 진영까지 흡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앞다퉈 나오고 있다. 박후보도 최근 대선 캠프 구성과 관련해 “이번에 후보가 된 만큼 당 차원의 선대위를 꾸릴 때는 당의 아주 좋은 능력 있는 분들과 외연도 중요하기 때문에 당에서 모든 당협위원장, 그 외 밖에 계신 좋은 분들도 영입해 많은 분들이 동참해 함께 갈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신박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국민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인사들도 과감하게 선대위에 영입해야 한다. 보수냐, 진보냐의 이분법적인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정적까지 안는 포용력도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박후보의 진정성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람만 모은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박후보가 국민 대통합의 이미지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선대위가 꾸려지고 중론이 모아지면 이를 박후보가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진정성이 확보된다”라고 말했다. 전에 없이 강한 톤이다. 신박을 포함한 개혁 성향 인사들의 강한 요구를 박후보가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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