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희망과 사랑이 필요한 때
  • 소종섭 편집장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2.08.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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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무언가를 갈구한다면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지는 이래서 중요합니다. 의지는 상황을 뛰어넘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1967년 충남 청양의 구봉광산 지하 1백25m에 매몰되었다가 16일 만에 구출된 광부 김창선씨,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17일간 물 한 방울 먹지 않고도 살아남았던 박승현양 등은 이와 관련한 극단적인 사례들입니다.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에 두 달 넘게 매몰되었다가 구조된 33명의 광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들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 되어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절감케 하는 희망의 상징이 되어 환희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함께 감동하고 함께 생존을 기도하며 어느새 한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절망만큼 희망을 보고 아픔만큼 기쁨을 느끼며 삶의 소중함을 반추합니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를 응시하며 보이지 않는 빛을 찾는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들이나 험난한 등정 과정을 거쳐 히말라야 정상에 오른 산악인, 극지 탐험에 성공한 탐험가들의 이야기에 감동받고 경탄을 보내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늘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내가 왜 희망을 가져야 하느냐고 항변하며 사회에 불만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수도권 일대에서는 참으로 가슴 아픈 사건들이 잇따랐습니다. 이른바 ‘묻지 마 범죄’입니다. 대낮 호텔 부근에서 전 직장 동료들을 칼로 찌르고 도망치다 아무 상관없는 행인들에게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 사건, 지하철역에서 공업용 칼을 휘둘러 8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사건….

공통점은 이들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가 ‘세상이 싫다. 될 대로 되어라’라는 자포자기 심리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입니다. 실직 상태에서, 일거리가 없어서 술을 먹다가, 우발적으로 범행에 나섰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불만을 느끼는 이들입니다. 범행을 저지르는 뚜렷한 이유도, 대상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묻지 마’입니다. 이들에게 세상은 나와는 다른 이들이 사는, 내가 적응할 수 없는 긴 암흑 같은 터널이었을 것입니다. 낳은 부모마저도 이들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묻지 마’ 사건이 계속되자 특별 대책회의를 하는 등 대처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일단 경찰력을 민생 치안 위주로 재편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여야는 “묻지 마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네 탓이다”라며 책임 전가에 바쁩니다. 청산해야 할 꼴불견 행태입니다.

제도를 정비하고 치안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기본은 ‘마음’입니다. 함께하려는 마음,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마음, 우리는 같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사회에 꽃피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 하면 저 어둠 속에서 칼을 갈고 있는 이들이 ‘희망’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분노의 시대, 좌절과 갈등의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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