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검사’ 안대희 변신의 종착점은?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9.0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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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깜짝 발탁’ 비하인드 스토리

안대희 위원장이 8월29일 여의도 당사에서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법조인’ 안대희가 ‘정치인’으로 ‘돌변’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지난 2003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여야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국민 검사’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차떼기 정당’으로 전락시킨 주역이었던 그가 지난 8월27일, 새누리당 당사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새누리당의 선대위 산하 기구인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치쇄신특위가 내가 쌓아온 경력과 능력을 모두 바쳐 기여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제의를 수락했다”라고 말했다. 안위원장은 새누리당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7월 말 박후보로부터 처음 제안을 받았고, 8월24일 두 번째 만남 이후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민주당 등 야권과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및 법조계 일각에서 그의 ‘새누리당행’을 놓고 비난과 아쉬움이 함께 표출되었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우리 쪽에서 먼저 영입했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2009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로 임명되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른바 ‘잘나갔던 스타 검사’였다. 공직자 재산 신고 때마다 ‘최하위권’에 맴돌면서 청렴성과 도덕성이 도드라졌다. 현 정부 들어서도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감사원장 자리가 빌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는 기자와 여러 차례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명박 정부와는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을 시사해왔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물러난 후인 지난 2010년 9월17일, 후임 총리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였다.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누가 (차기 총리로 유력하다는) 그런 말을 퍼뜨렸는지 모르겠다. 괜히 내 이름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어 내가 (후임 총리설을) 흘린 것처럼 되어버렸다. (대법관) 임기가 2년이나 남았다. 어디든 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 정권과 맞는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라며 웃었다.

“포스트 박근혜 염두에 둔 행보” 관측도

그는 대법원장을 그만둔 직후인 7월13일 기자에게 “이젠 자유인이 되었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8월 말 미국 스탠포드 팰로우십에 참여하기 위해 출국해서 6개월 동안 체류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임명된 8월27일 오후,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기자 미안하게 됐어.(웃음) (미국행) 비행기 표도 오늘 아침에서야 취소하게 되었어”라고 말했다. 위원장직 수락 여부와 미국 체류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했던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8월29일 열린 위원회 첫 회의에서 그는 “박근혜 후보의 측근이나 친인척뿐만 아니라 당의 검은돈을 요구하는 유혹을 차단하겠다”라고 말했다. ‘불법 정치자금 수사’로 국민들의 신망을 두텁게 받았던 그가 ‘또’ ‘불법 정치자금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안위원장은 “내가 하는 일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큰 틀을 잡고 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직접적인 정치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해본다”라고 말했다. 올해 57세로, 정치권에서는 비교적 앞날이 창창한 ‘정치 초년병’ 안대희. 그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서 정치 시험대에 올랐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포스트 박근혜’를 염두에 둔 정치 행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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