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군’ 틈새로 뚫고 나온 아프가니스탄 반군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9.25 13: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토 공군 기지 공격…자살 폭탄 테러도 잇따라

지난 9월18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인근에서 벌어진 자살 폭탄 테러 현장에서 한 프랑스 병사가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 AP 연합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심상치 않다. 수도 카불과 나토 공군기지가 반군의 공격을 받는가 하면 정부군이 미군과 영국군을 죽이는 전례 없는 사건이 연발하고 있다. 일요일인 9월16일 미군 네 명이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미군 공군기는 지방에서 땔감을 구하러 거리에 나온 아프가니스탄 여성 네 명을 죽였다. 남부의 나토군 기지는 탈레반의 기습을 받아 1억5천만 달러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 금전상 손실로는 최근 11년 이내에 최대의 피해이다.

화요일인 9월18일 카불 공항 부근에서는 자살 특공대가 공항 근로자들을 가득 태운 미니 밴과 충돌해 14명이 죽었다. 파키스탄에 본부를 둔 반군 단체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조롱한 동영상에 대한 보복으로 이번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사망자 가운데 아홉 명은 외국인이었다. 공격은 카불 공항으로 가는 도로 위에서 일어났다. 공격을 자행했다고 주장하는 해즈비 이슬라미(이슬람당) 반군 단체는 탈레반에 연루된 지하드 그룹으로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당시 미국의 지원으로 소련군에 저항하던 반군 게릴라들이다. 미국의 국제 화물 운송회사 DHL 소유인 자살 차량은 18세의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운전했다. 

정부군이 나토군 죽인 ‘내부자 공격’도 발생

공격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비웃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려진 직후에 감행되었다. 카불에서 자살 특공대 공격이 일어난 것은 이달 들어 두 번째이다. 이 공격은 정부군이 미군과 영국군을 공격하는 ‘내부자 공격(inside attack)’ 양상을 띠고 있어 충격을 준다. 내부자 공격은 전쟁 발발 11주년을 맞아 처음 나타난 현상으로 철군 일정을 교란하기 위한 탈레반의 선제적 전술로 보인다. 사건이 일어난 도로는 초등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으나 다행히 학생들은 다치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극렬해진 일련의 사건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불길한 조짐들이다. 특히 서로 협조해야 할 정부군과 나토군이 서로를 죽이는 내부자 공격이 발생하자 관련 당사자들은 질린 표정이다. 이 와중에서 민간인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막강한 서방 군사력에 맞서 나토군을 공격하는 반군의 능력이 월등히 강해진 상황도 우려를 자아낸다.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경찰의 충돌은 남부의 자불 성에서 한밤중에 일어났다. 관리들에 따르면 충돌은 공동 기지에서 합동 순찰을 하던 중에 발생했다. 나토군은 사망자의 국적을 밝히지 않았으나 죽은 사람은 미군으로 밝혀졌다. 이보다 24시간 전에는 영국군 두 명이 역시 경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로써 올 들어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한 연합군은 모두 51명으로 늘어났으며, 이 중 15%는 정부 보안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개전 이후 연합군의 총 사망자는 3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당황한 나토사령부는 합동 근무와 정부군 훈련을 잠정 중단했다. 연합군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형국이다. 또한 실탄 관리를 엄중히 하고 식당, 내무반, 체육관 등에서 정부군의 동태를 철저히 감시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지방에서 차출되는 수천 명의 민병대에 대해서는 반군과의 연루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내부자 공격을 줄이기 위한 묘안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군과 나토 지휘관들은 그 동기와 배경을 두고 혼란에 빠졌다. 뒤죽박죽이 된 이번 사태는 정부군에 치안 업무를 맡기고 2014년 말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연합군의 출구 전략에도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까다로운 치안 업무 훈련을 정부군의 능력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고 여차하면 격분해 총격을 가하는 사태가 자주 일어난다. 미국 해병대가 탈레반 시체에 방뇨하고 코란을 불태운 행위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반미 감정을 갖게 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동부 성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 여덟 명이 미군 공습으로 사망한 사건은 가뜩이나 폭발적인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사망한 여인들은 땔감을 구하러 나온 가난한 농촌 여성들이었다. 주민들은 사망자의 시체와 부상자들을 트럭에 싣고 거리를 질주하면서 “미군은 살인자!”라고 외쳐댔다. 나토군은 반군을 폭격하던 미군 공군기들이 착오로 민간인을 죽였음을 시인하고 유감을 표했으나 주민들은 “살인자들은 물러가라!”라고 응수했다. 나토군 대변인은 라그만 성의 오지에서 발생한 반군과의 치열한 교전 과정에서 정부군으로 위장한 반군이 공습을 요청한 후 폭격이 있었다고 해명했으나 주민들의 분노를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최근 몇 년간 나토군과 정부군은 연합군의 오폭에 의한 민간인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거의 대다수의 민간인 사망자는 반군의 공격으로 발생했으나, 오인 공습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줄어들지 않았다.

전쟁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한편 서방 관리들에 따르면 헬만드 성 캠프 배스천(Camp Bastion)에서 일요일 새벽에 일어난 반군의 공격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금요일(9월16일) 저녁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계속된 공격에서 처음에는 미국 해병대원 두 명만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격의 강도는 매우 강했다. 반군들은 여섯 대의 AV-8B 제트기와 세 곳의 유류 저장고를 파괴하려 했다. 이 공격에서 두 대의 해리어 항공기는 크게 파손되었다. 특히 배스천 기지는 영국 왕자 해리가 근무하는 곳이어서 자칫하면 왕자가 변을 당할 뻔했다. 그는 아파치 헬기 편대 승무원으로 이 기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기지는 요새화되어 철통 같은 경비를 하는 곳이다. 이런 기지를 소규모의 반군이 침투해 상당한 피해를 입힌 사건은 미군과 나토 관리들을 경악시켰다. 런던의 영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공격에도 해리 왕자를 다른 부대로 전보하거나 귀국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금의 아프가니스탄 상황은 혼란 그 자체이다. 반군은 과거의 반군과는 그 색채가 달라졌다. 이들은 탈레반 및 알카에다와 전략적으로 제휴하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미군과 나토군을 무력화시켜 아프가니스탄에서 추방하고 탈레반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념은 다르나 작전상 필요에 의해 두 세력은 제휴했다. 구성도 복합적이어서 다루기가 어렵다. 이들은 때로는 나토군에 협조하고, 또 때로는 나토군을 공격하는 등 교란 작전을 편다. 그러나 이들이 자살 공격을 감행한 것은 최근의 일로서 그 정확한 동기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탈레반은 성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외세를 몰아내는 데 전폭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천명했으나, 자살 공격을 시작한 동기는 밝히지 않았다. 

9·11 사태 여파로 2001년 10월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철군을 목전에 두고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반군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세를 불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설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서방의 피로감을 반군이 역이용해 철군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반군의 득세를 방치할 경우 전쟁이 원점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워싱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제이 카네이 백악관 대변인은 치안 임무 이관 작업은 계속될 것이며 철군 일정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일련의 사태를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롬니는 오바마의 우유부단과 성급한 철군 계획이 화를 불렀다고 비난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