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후보 비난 광고에 수억 달러씩 쓰는 나라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2.09.2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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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돈 전쟁’ 하듯 선거 광고전 치러

베인 캐피털의 사업 관행을 들어 롬니 후보를 비판하는 광고 (왼쪽)와 오바마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는 광고(오른쪽).
11월6일 미국 대선을 향한 선거 광고 전쟁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오바마와 롬니 후보 진영은 올 들어 8개월간 선거 광고비로만 6억 달러를 투입했는데 마지막 남은 50일 동안에는 5억 달러를 더 쏟아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경제난을 해결하겠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는 물론 그들을 외부에서 지지하는 수퍼팩들이 10억 달러 이상을 선거 광고비에 쏟아붓고 있다. 선거 광고의 거의 대부분은 비난 광고이다.

오바마, ‘비난 광고전의 사령관’ 별명 얻어

오바마 팀과 오바마를 지지하는 수퍼팩의 광고에서는 여전히 롬니 후보를 맹공하는 네거티브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 후보의 오락가락하는 발언, 말실수 등을 끄집어내 공격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특히 오바마 진영은 전당대회 직전까지 원색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고 롬니 후보를 비난하는 광고에 주력해왔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비난 광고전의 사령관’이라는 새 타이틀까지 얻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승인했다고 알려진 한 광고에는 30년 안팎의 경력이 있는 여러 명의 철강 근로자들이 등장해 롬니 후보를 성토하고 있다. 롬니 후보를 억만장자로 만들어준 사모펀드 회사인 베인 캐피털의 사업 관행에 독설을 퍼붓는 것이다. 광고에서 한 근로자는 “롬니는 이 나라 보통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가 어떻게 평범한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심지어 또 다른 근로자는, 롬니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롬니는 흡혈귀라고 말하고 있다. 베인 캐피털이 망해가는 회사를 사들여 직원들을 대부분 해고한 다음 남은 몇 명을 쥐어짜내 어느 정도 살아나면 회사를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수법으로 돈을 벌고 근로자들은 내쳤다고 원성을 터뜨리는 광고이다.

롬니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수퍼팩들의 선거 광고는 상대적으로 점잖은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 오바마의 성적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롬니 후보가 승인한 광고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 중 경제 성적표를 파고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8% 이상의 높은 실업률이 43개월째 지속되고 있으며, 지난 4년간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는 해마다 4천 달러씩 소득이 줄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국가 부채가 16조 달러를 넘어섰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빚더미만 늘렸다’라고 성토한다.

롬니 광고에 출연한 사람들은 “4년 전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많은 것을 기대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실망만 남았습니다” “경제난에 직장을 잃고, 집도 잃고 신용도 잃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오바마를 찍었지만 이번에는 말뿐인 오바마 대신 경제난을 해결할 롬니로 바꾸려고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딸에게’라는 롬니측 광고에서는 새로 태어난 딸아이가 국가 부채 때문에 5만 달러의 빚을 지고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꼬집고, 광고 속 엄마와 같은 미국 여성 5백50만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읍소하고 있다.

6억 달러의 선거 광고비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과 오바마 지지 그룹은 2억8천6백90만 달러를, 롬니 후보와 롬니 지지 그룹은 3억1천8백4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롬니 후보 팀은 7월부터 선거 광고비 지출 면에서 오바마 대통령 진영을 추월했다. 도전자가 현직 대통령보다 선거비 씀씀이에서 앞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야말로 수억 달러가 투입된 선거 광고 전쟁은 지지자들인 이른바 수퍼팩의 등장으로 한층 가열되고 있다. 수퍼팩은 무제한으로 돈을 모아 무제한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광고비에 투입된 6억 달러 중에서도 거의 절반인 44%는 수퍼팩이 낸 돈이다. 즉, 수퍼팩들은 이 기간 중 2억

6천7백만 달러를 선거 광고비로 썼다. 거액을 뿌리고 있는 수퍼팩들의 선거 광고비 중 4분의 3인 2억1천2백만 달러는 롬니 후보를 지지하는 수퍼팩들로부터 나왔다. 즉, 롬니 팀이 쓴 전체 광고비 3억1천8백40만 달러 가운데 후보측이 쓴 돈은 8천7백65만 달러인데 비해, 67%인 2억1천2백만 달러는 수퍼팩과 거부 등 외부 지원을 받은 것이다.

반면 오바마 팀이 투입한 선거 광고비 2억8천6백90만 달러 중에서 거의 대부분인 2억

3천3백60만 달러는 후보측에서 지출했다. 20%인 5천7백47만 달러만 외부 수퍼팩에 의해 지원되었다. 롬니 후보가 외부 수퍼팩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를 지지하며 롬니를 주로 비판하는 선거 광고전에 나선 수퍼팩으로는 ‘최우선 행동’이라는 단체가 거의 유일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친(親)오바마 수퍼팩은 8개월 동안 4천8백18만 달러를 롬니 후보를 비난하는 광고에 투입했다.

반면 롬니 후보를 지지하며 오바마 후보를 비난하는 광고전을 펴온 수퍼팩 중에서는 ‘크로스로드 GPS’가 6천만 달러를 써 가장 선두에 서 있다. ‘아메리칸 크로스로드’가 4천

8백45만 달러, ‘번영을 위한 미국인’ 4천6백52만 달러, ‘미래 회복’ 4천4백41만 달러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친롬니 수퍼팩들이 오바마 끌어내리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퍼팩들의 선거 광고는 지지 후보의 정책을 알리기보다는 반대 후보의 약점을 들추어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수억 달러가 들어가는 선거 광고 자금을 미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많게는 12개 주, 최근에는 8~9개 주에서만 돈 구경을 할 수 있다. 이들 8개 주가 대선 승부를 판가름할 경합주들로 꼽히기 때문에 선거 광고전도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선거 광고비가 가장 많이 투입된 곳은 역시 최고의 경합지이자 최대 표밭인 플로리다이다. 8개월간 1억2천100만 달러나 받았다. 이어 오하이오 주에 1억1천7백만 달러가 투입되었다. 3위는 버지니아 주로 9천30만 달러의 선거 광고비가 몰렸다.

롬니, 억대 광고 효과 한 방에 날려버려

외부 수퍼팩들의 압도적인 지원으로 선거 광고 전쟁에서 우위를 지켜온 미트 롬니 후보는 자신의 최대 취약점인 말실수 때문에 억대 광고 효과를 한 방에 날려버릴 위험에 처했다. 지난 5월 중순 비공개 선거 자금 모금 행사에서 마음대로 발언한 롬니 후보의 모습이 몰래 녹화되었다가 좌파 진영의 마더 존스라는 잡지의 웹사이트에 공개되었다. 이 동영상 속에서 롬니 후보는 “미국인 47%는 정부에 의존하면서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부가 건강보험, 음식, 집 등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롬니 후보는 또 “이들은 소득세도 내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낮추겠다는 내 공약과 상관이 없다”라며 “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자기 인생을 돌보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지 못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롬니 후보의 이번 발언으로 그의 진면목, 즉 속내가 드러났다는 비아냥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어 선거일을 50일 앞두고 그의 백악관 도전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롬니 지지자들은 수억 달러를 쏟아붓는 선거 광고 효과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롬니의 실언이 자주 발생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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