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충격 뒤에서 웃는 보험사들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2.09.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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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금리 하락에 맞춰 공시 이율도 낮춰 적용

삼성생명은 9월 들어 자사 저축 상품의 적용 금리(공시 이율)를 전달 4.8%에서 0.1%포인트씩 낮췄다. 대한생명과 교보생명도 저축 및 연금 상품 금리를 같은 폭만큼 인하했다. 중소형 생명보험사들 역시 금리 인하 행렬에 예외 없이 동참했다. 시장 확대 경쟁을 벌여온 손해보험사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역대 최저치로 금리를 조정했다. 삼성화재는 저축성 금리를 연 4.6%로, 전달 대비 0.3%포인트나 인하했다. 2009년 10월 저축성 상품 금리를 따로 산정한 이후 최저치이다. 보험사들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연 5%대의 높은 금리를 제시했지만 더는 고금리 출혈 경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보험사들이 잇달아 금리 재조정에 나선 것은 자산 운용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투자할 만한 대상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총 6백20조원 규모의 자산을 굴리는 보험사들은 자산 운용 수익률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자산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당기순이익을 결정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각 보험사의 운용 자산 이익률은 지난해만 해도 연 5%대 중·후반을 유지했다. 하지만 올 들어 일제히 4%대로 급락했다. 자산 운용 실적이 좋은 편인 삼성생명만 해도 운용 자산 이익률(조정치 기준)은 지난해 매달 5.2~5.6% 선을 지켰지만, 최근 4%대 후반에 머무르고 있다. 고객에게 제시하는 공시 이율을 연달아 낮추는 이유이다.

금리 높은 저축성 상품도 사업비 떼면…

자산 운용 이익률이 떨어진 것은 시장 금리가 하락한 탓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 금리를 연 3.25%에서 3.0%로 낮춘 데 이어 조만간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 채권, 주식 등 유가증권 시장과 부동산 시장도 침체이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보험사들은 속속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역마진 우려가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자산 1백60조원 이상을 굴리는 삼성생명은 저금리에 대응하기 위해 태스크포스 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한생명, 교보생명 등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비용 절감에 나섰다. 대한생명 관계자는 “주로 연금 등 초장기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문제는 고객의 보험료를 받아 20~30년간 장기로 굴릴 만한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투자 대상 중 우량 채권 비중을 끌어올리는 한편 해외 투자도 확대하기로 했다. 예컨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사채 등 투자 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수익성이 좋은 채권 비중을 과거보다 키우겠다는 식이다.

또,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을 확대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보험계약대출은 계약자 보험금을 담보로 잡고 있어 부실 위험이 없다. 메트라이프생명은 금리 연동형 보험계약대출 한도를 환급금 대비 종전 90%에서 최근에 95%로 확대했다. 보험업계에서는 그동안 대출 한도를 환급금의 80~90%로 제한해왔다. 이 회사 관계자는 “보험계약대출의 경우 안전하면서 수익성이 가장 좋은 투자처이다”라고 말했다. KDB생명은 휴일에도 대출을 내주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한화손해보험은 이미 납입한 보험료의 최대 두 배까지 신용대출을 내주기로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준비 없이 초저금리 시대를 맞으면서 1997년 이후 닛산생명·다이쇼생명 등 중대형 보험사 일곱 곳이 연달아 파산했다. 최근 변액보험 수익률 논란 이후 보험 판매까지 급감하고 있어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연금과 저축성 상품에 적용하는 연 4.5~5%의 금리는 소비자 관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수준이다. 시중 은행의 1년짜리 예·적금 금리가 연 3%대 중·후반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1%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상호저축은행의 정기예금 평균 금리보다도 높다. 재테크 전문가들이 보험사 저축 상품을 ‘저금리 시대의 숨어 있는 보물’로 추천하는 배경이다. 표면적으로는

1억원을 은행과 보험사 상품에 넣었을 때 연간 100만원씩 차이가 난다는 계산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보험사들이 역마진에 빠졌다는 판단 근거로 삼고 있다. 운용 자산 이익률이 4%대 초반인데도 저축 상품 적용 금리는 이보다 0.5%포인트 이상 높다는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은행 예·적금의 경우 가입 후 별도의 수수료가 전혀 없다. 만약 연 3.7% 이자를 적용한 1년짜리 예금에 가입했다면 만기 때 세금을 빼고 이자만큼 수익을 얻는 단순한 구조이다. 은행은 이 예금과 대출 금리의 차이(예대 마진)를 조절해 이익을 낸다.

보험 저축 상품은 훨씬 복잡하다. 적용 금리는 ‘착시’일 뿐이다. 연 4~5%대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약속해도 실제 손에 쥘 수 있는 수익률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업비 탓이다. 사업비는 보험설계사에게 지급하는 모집 수당과 관리 비용 등이 포함된 일종의 수수료이다. 예컨대 1억원을 연 4.7%짜리 보험사 저축 상품에 가입했다고 치자. 은행 예금이라면 해마다 4백70만원(세금 제외)의 이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보험 저축 상품에 가입하면 매달 5~10%를 사업비로 떼간다. 보통 3~4년 내에 해약하면 원금조차 찾을 수 없는 배경이다. 다만 10년 이상 가입할 때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이자 계산이 복리 방식이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이다.

※19개 생명보험사 평균치임.
모든 상품의 금리 체계를 ‘변동형’으로 바꿔

연금 상품의 실수익률은 더 낮다. 사업비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보험사에 따라 다르지만 연금 사업비는 7~15년간 월평균 8~12% 선이다. 이런 사업비 덕분에 보험사 입장에서는 표면 금리를 높게 주더라도 안정적인 이익을 낼 수 있다. 특히 보험사의 저축 및 연금 상품을 10년 이상 계속 유지하는 사람은 전체의 30% 정도에 불과하다. 중도 해약자가 많을수록 이익을 더 크게 볼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사 상품의 표면 금리가 워낙 높기 때문에 오래 가입하면 큰 수익을 낼 것 같지만 막상 만기 때 실수익률을 보면 실망할 수 있다. 보험 상품 사업비가 많은 것은 설계사 등에게 투입하는 초기 비용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대형 보험사 기준으로 연 3.5% 정도의 운용 자산 이익률만 기록하면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사업비 등을 감안할 때 신규 계약 기준으로는 연 3.5%의 자산 수익률을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각 보험 상품에 가입하기 전에는 사업비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보험사마다 수십 종류의 저축 및 연금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가입 전월 수수료 등을 안내하는 보험사는 한 곳도 없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상품은 판매 채널을 대부분 설계사에 의존하는 구조인데, 설계사들의 반발이 있어 각 상품별 수수료를 다 공개하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보험사들은 청약을 체결한 가입자에 한해 실제 수수료를 약관 등을 통해 안내하고 있다. 이마저도 약관 중간에 숨겨놓는 경우가 많아 눈이 밝지 않은 사람이라면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증권사들이 각 펀드의 수수료를 비교 공시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보험사들은 또 모든 상품의 금리 체계를 변동형으로 바꿨다. 시장 금리가 떨어지면 공시 이율을 낮춰 저금리 리스크를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현재 외환위기 전후처럼 확정 금리형 연금을 판매하는 곳은 하나도 없다. 보험사 상품의 적용 금리는 대부분 매달 바뀌는 방식이다. 변경된 금리는 1개월에서 최장 1년 단위로 적용된다. 종전에 가입했던 사람에게도 똑같이 낮춰진 금리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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