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만 더 뛰면 되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0.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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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원으로 사업 재개해 빚 22억원 갚은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 시사저널 이종현
1998년 어느 날 한 남자가 빌딩 9층 창 난간에 섰다. 6백원짜리 소시지와 소주 한 병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삶에 넌더리가 났다. 한 발만 내딛으면 고통스러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밀린 세금을 내라는 세무서 직원의 전화였다. 시쳇말로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는 돈 때문에 삶을 마감하려는 사람에게 세금 타령이냐며 고함을 질렀다. 그 직원은 죽을 때 죽더라도 세무서 전화를 받고 죽는다는 말을 유서에 남기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 말에 죽는 것이 억울할 만큼 화가 난 그는 난간에서 내려왔다. 14년 전 목숨을 끊으려 했던 그 남자는 현재 연 1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천호식품의 김영식 회장(61)이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이 광고의 주인공이 김회장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유명 기업인이 된 배경에는 가난을 떨치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는 27세에 결혼하면서 보증금 3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차렸고, 32세 때에도 보증금 100만원에 월 4만원 월세살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날, 퇴근한 그에게 초등학생 딸이 달려와 안겨 울기 시작했다. 생일이어서 학교 친구들을 불렀는데 친구들이 단칸방에 사는 가난한 아이라고 놀렸다는 것이다. “그 다음 날 저금해둔 전 재산 3백만원을 1만원짜리로 찾아왔다. 한두 장씩 방바닥에 뿌리는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우리는 부자라고 안심시켰다.”

자살하려다 발견한 결혼반지 덕에...

가슴이 사무치게 아파 돈을 벌기로 작심했다. 저주파 치료기와 같은 가정용 의료기를 만들어 팔았던 그는 1986년 뼈가 부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뼈는 6개월이 지나도록 붙지 않았다. 주변 사람의 권유로 달팽이를 먹었더니 한 달 만에 뼈가 붙었다. 이때부터 건강에 좋은 식품 사업에 관심을 두었다. 자신이 경험한 달팽이 추출액을 팔아 돈을 조금 벌었다. 1994년 은행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부산에서 현금 보유액 기준 100위에 드는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화를 받고 거만해졌다. 다른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식품 사업을 하던 내가 황토방을 만든다며 건설업에 손을 댔다. 1994~95년에는 가지고 있는 자금을 쏟아부었고, 1996년에는 집과 공장을 저당 잡히고 은행 대출금을 받아 투자했고, 1997년에는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1998년 부산에서 빚 많은 사람 100위에 들었다는 전화가 은행에서 왔다. 기업인은 자신의 비전문 분야에 투자하면 무조건 망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집과 공장은 부산에 있었지만 판매망이 서울이어서 강남 역삼동에 사무실이 있었다. 여관비가 없어서 그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일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까지 겹쳐 사업이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은행 빚과 사채 독촉에 시달리다 9층 사무실 창 난간에 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박했다.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다가 결혼반지를 발견했다.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 1백30만원으로 10평짜리 사무실을 60만원 월세로 얻었고, 여직원에게 40만원을 주었다. 나머지 30만원 중에서 20만원으로 전단지를 만들었다. 사무실에 쌓여 있던 쑥 진액을 팔아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한때 떵떵거리는 부자였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새벽에 지하철 입구에서 전단을 돌리는 스스로가 창피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단지를 돌리는 것뿐이었다. 

“부자가 되는 첫걸음은, 변하는 일이다. 옆도 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기로 했다. 첫 달에 1천100만원, 둘째 달에 1천9백만원, 셋째 달에 3천3백만원, 넷째 달에 9천8백만원, 다섯째 달에 1억5천만원, 여섯째 달에 2억5천만원으로 매출이 늘어났다. 가끔 부산 공장에 갈 때 기차는 시간이 너무 걸려 새벽 비행기를 싸게 탔는데, 승무원 눈치를 보면서도 좌석마다 전단지를 꽂았다.”

1년 11개월 만에 빚 22억원을 모두 갚았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2년에는 대출 없이 서울 역삼동에 7층짜리 사옥을 지었다. 현재 고객은 70만명으로 불어났고, 1백50종류의 건강식품을 팔아 연간 1천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그의 인생의 좌우명은 ‘10m만 더 뛰어봐’이다. 100m를 뛰는 사람에게 2백m를 뛰라고 하면 누구나 포기하지만, 10m만 더 뛰라고 하면 얼마든지 뛴다. 10m는 실현 가능한 목표인 셈이다. “죽을 생각에서 살 생각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꾼 다음에 할 일은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일이다. 우리 회사 아르바이트생이 언젠가 나에게 ‘정직원이 목표’라고 쓰인 휴대전화 바탕화면을 보여주었다.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일도 잘한다. 그를 그 다음 날 바로 정직원으로 일하게 했다. 봐라, 목표를 세우고 간절하면 이루어지지 않는가. 목표를 세운 다음에 할 일은 실천하는 일이다. 대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방법이 있다. 산에 가서 자신이 세운 목표를 큰소리로 말하라. 그 소리는 뇌로 전달되어 행동하게 만든다. 열정도 생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늘 상상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는 상상을 하면 매사를 관찰하고 몰입하게 된다. 창의적인 생각이 뿜어져 나온다.”

“약속 시각 15분 전에 나타나는 사람은 잘 풀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찾아낸 사업 아이템이 산수유이다. 그가 직원들과 제품을 팔 방법을 논의하던 때였다. 산수유가 정력에 좋은데 사람들에게 대놓고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무심코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라고 말한 것에 직원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 광고까지 만들었다. “정직한 사람과 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내가 먹어보고 느낀 사실을 그대로 광고에 표현했다. 또 좋은 원료를 쓰고, 합리적인 가격에 판다. 협력회사에도 어음 대신 현금으로 대금을 준다. 정직하게 만들고 파니 소비자들의 재구입률이 80% 이상이다. 과거에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한번 써보라고 산수유를 선물로 보냈더니 3개월 후에 고맙다는 편지가 왔다. 영부인 로라 부시로부터. 선물은 대통령에게 했는데 왜 영부인이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을까는 알아서 상상하라.”

이처럼 김회장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회사를 알리는 노력을 꾸준히 했다. 그에게는 한 달에 40~50건의 강연 요청이 쇄도하는데, 너무 많아 수백 명이 모이는 곳에서만 3~4회 강연한다. 이 역시 회사를 알리는 수단이다. 외국에서 바이어가 오면 그 나라 국기를 회사 정문에 단다. “우리가 다른 나라 회사를 방문했는데 그 회사 앞에 태극기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감동이지 않는가. 이런 일이 회사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실천법이다.”

그는 약속 시각보다 15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로 유명하다. “소비자는 TV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데, 그 15초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15분은 어떤가. 초로 따지면 9천초인데,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안 풀린다면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기본을 지켜라. 약속 시각 15분 전에 나타나는 사람은 반드시 인생이 풀리게 되어 있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고, 자기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매출 10%를 해마다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직원 복지에도 신경을 쓴다. 체력단련실, 당구장, 찜질방, 음악감상실은 물론이고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기숙사도 갖추었다. “세계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주는 회사로 만들겠다. 그 실천 방법으로 우선 2014년에 상장하기로 하고 직원들에게 5백만원씩 우리 사주를 살 기회를 주었다. 나는 그 값어치를 100배 키울 자신이 있다. 그러면 직원들 통장에 5억원이 생기지 않겠나. 그때가 되면 나 스스로 성공한 사업가로 자랑하면서 다니겠다. 내가 못 할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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