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외부 수혈’의 부작용
  • 안동현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 승인 2012.10.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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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이미 유럽에서는 동물의 피를 사람에게 수혈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고, 19세기 초에는 타인의 혈액을 환자에게 직접 수혈하는 직접 수혈 요법이 시술되었다. 당연히 치명적 부작용이 빈번했지만 원인 규명에 실패하다 1901년이 되어서야 란트스타이너가 혈액형을 현재 알려진 바와 같은 ABO형으로 분류하면서 수혈 치료에 결정적 전환점을 가져왔다. 서로 다른 혈액형을 수혈할 경우 공급된 혈액과 환자 혈액의 적혈구가 서로를 공격하는 용혈 현상이 일어나 급성 신부전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대처가 늦으면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

지난 9월26일 연매출이 6조원에 달하는 재계 31위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핵심 계열사 극동건설이 동시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웅진의 윤석금 회장은 세일즈맨의 성공 신화를 이룬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1980년 7천만원의 자본금으로 출판업을 시작한 이래 방문 판매 노하우를 살려 건강식품, 화장품, 정수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성공했다. 윤회장의 이런 M&A(인수·합병) 전략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소비재 산업에서 벗어나 이종 업종으로 사업 다각화를 도모하는 쪽으로 확장되어 극동건설, 웅진코웨이, 서울저축은행 등을 부채를 끌어들여 공격적으로 매수했다. 극동건설의 경우에는 론스타 펀드로부터 예상 가격의 두 배가 넘는 가격으로 인수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심지어 재무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시장 전망이 불투명한 태양광 사업에 무리하게 진출해 웅진에너지, 웅진폴리실리콘을 설립하는 패착을 두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1차적 책임은 윤회장 자신에게 있다. 대우나 영국의 RBS처럼 ‘M&A로 흥한 자 M&A로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M&A 성공은 승자의 저주라는 덫을 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에 의하면 이런 ‘닥공(닥치고 공격)’ M&A 전략의 배후에 젊은 컨설턴트들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 명문대에서 MBA 학위를 받고 외국계 컨설팅회사에서 일하다 스카우트되어 그룹의 요직을 차지한 이들이 M&A 속도전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컨설팅의 핵심은 경영 전략에 훈수를 두는 것이다. 전략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갖춘 이들을 이용해 내부에서는 보기 힘든 취약점을 파악하고 기회를 발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기능은 어디까지나 훈수를 두는 것이다. 내부인과 컨설턴트 간에는 한두 달 회사를 실사해서는 극복하기 힘든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문성이라는 폭보다는 깊이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회사 전체를 조망해야 하는 경영과는 거리가 있다. 조명 전문가가 연출가를 대신할 수 없고, 데이비드 레드베터가 타이거 우즈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룹의 초창기 때부터 동고동락해 회사를 같이 키워온 사내 인사들을 제치고 외부에서 젊은 피를 무리하게 수혈한 결과 용혈성 부작용이 발생해 결국 ‘세일즈맨의 성공 신화’가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정치권에서도 앞다투어 외부에서 혈액형이 다른 많은 인사를 영입하고 있는데, 화학적 결합이 담보되지 않은 이런 무분별한 수혈이 과연 부작용 없이 순항할지 두고 볼 일이다. 아니, 벌써부터 수혈된 곳에 발열 현상이 시작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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