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한 방’에 목마른 박근혜 캠프
  • 서상현│매일신문 기자 ()
  • 승인 2012.10.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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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론’ 휩싸인 가운데 2장의 반격 카드 만지작

지난 10월10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국회도서관 에서 열린 국민 대통합을 위한 정치 쇄신 심포지엄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추석 직후 한 친박근혜계 의원은 “이제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라고 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 이야기가 추석 차례상을 점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이 날린 ‘한 방’이 컸다는 뜻이었다. 새누리당은 잠시 이 ‘주춤세’를 ‘회복 직전의 평화’로 착각했다. 하지만 박후보의 지지율은 회복은 고사하고 오히려 ‘하방 경직화’했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유승민 부위원장은 10월10일에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박근혜 프레임이 과거사에 갇혀 있는 와중에 안철수 프레임이 ‘미래’로 열려 있는 것처럼 보여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박후보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앞으로 대한민국 5년이 이렇게 바뀔 것이다’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 대야(對野) 관계, 외교, 대북(對北), 국정 운영 비전까지 ‘앞으로 이럴 것이다’라는 미래 가치를 카드로 내밀어야 한다. 그것이 ‘준비된’ 대통령감으로서 문재인·안철수와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캠프의 전략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 국정 운영 능력 보여줄 ‘섀도 캐비닛’ 공개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몇 가지 수(手)가 있었고, 또 있다고 한다. 박후보 캠프에 다소 비판적인 조언을 하는 한 친박계 핵심 전략가는 “이 수를 둘지 말지는 오직 박후보만이 결정할 것이다. 다만 야권 후보 단일화에 버금가거나 그 단일화 효과를 상쇄하는 정도의 파격성, 등 돌린 민심이 돌아보는 수준이 아니라 박후보에게 와서 안기는 설득력이 없으면 폭발성을 갖기 힘들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근혜 후보의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발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 ‘예비 내각’은 야당이 대선을 앞두고 정권을 잡았을 경우를 예상해 미리 내각을 구성해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롬니 후보가 짐 탤런트 전 상원의원이나 존 리먼 전 해군장관, 조 리버먼 상원의원 등과 함께 일할 뜻을 비치면서 새로운 정부의 ‘색깔’을 유권자에게 ‘친절하게’ 보여주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있다. 미리 장관 후보들을 발표하게 되면 그 자리를 노리던 잠재적 경쟁자의 ‘충성’을 잃게 되어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친박계 핵심 전략가는 “사람 이야기가 아닌 ‘자리 이야기’만 해도 구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가령 지식경제부에서 지식과 경제를 떼어 놓을 것인지, 해양수산부를 부활시킬 것인지, 국무총리와의 역할 경계를 어느 선까지 할 것인지, 대통령 권한을 어느 수준까지 내놓을 것인지 등등에 대한 청사진만 보여주어도 ‘박근혜 국정 스타일’은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재오 의원이 내놓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 카드에 응답하는 모습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문후보가 제시한 안후보와의 ‘공동정부’ 구상에 맞불을 놓는 효과도 있다. 벌써 국민은 문후보로 단일화했을 때의 ‘안철수 총리’, 안후보가 되었을 때 ‘문재인 총리’를 떠올린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섀도 캐비닛’이 이미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수장학회·육영재단 등의 사회 환원

지난 10월7일 박근혜 후보의 비서실장인 최경환 의원(가운데)이 비서실장직 사퇴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 연합뉴스
또 다른 한 수는 안후보를 겨냥한 측면이 크다. 안후보는 이미 자신이 보유한 안랩 주식 중 절반을 ‘안철수재단’에 기부했고, 만약 대통령에 당선되면 나머지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박후보를 향해 고착된 네거티브 중 정수장학회·영남학원·육영재단·문화방송 지분이 있다. 박후보는 “이미 물러났다. 나와 관련이 없다”라고 일축했지만, 설령 박후보 재산은 아니라 하더라도 박후보의 재산 같아 보이는 이 부분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여론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정리의 마침표가 바로 ‘사회 환원’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야권은 오래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것들을 ‘강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후보는 2005년 정수장학회에서 물러났지만 그 후임으로 온 최필립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이었다. 이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의 100%,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지분 30%를 가지고 있다. 야권은 두 달 전 ‘군사 정권에 의한 재산권 침해 진상 규명 및 사회 환원 특별법’을 공동 발의해 국회에 제출했다.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한 ‘합법적 압박’이다. 해당 법안은 대통령 소속으로 위원회를 설치해 군사 정권이 취한 재산권 침해 진상을 조사하고 피해자 보상을 통해 명예 회복을 돕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0월11일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2차 인선 기자회견에 직접 나선 박후보는 공동선대위원장 발표 이후 기자들로부터 추가 질문을 받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잠깐 연출된다. 한 기자가 박후보의 방북설을 제기하며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날 계획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박후보는 웃으며 얼버무렸고, 조윤선 대변인이 급하게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박후보의 방북설이 처음으로 제기된 셈이다.

박후보 주변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로 대선 판도가 흔들릴 경우를 고려해 박후보가 이미 한 차례 북한을 다녀온 경험을 국민에게 재확인시킬 필요가 있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박근혜-김정은 회동설’이다. 여성은 안보에 취약할 것이라는 지적을 넘어 세 유력 후보 중 대북 관계에서만큼은 가장 ‘준비된’ 대통령감임을 내세울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읽힌다. 여론조사 하향세 국면에서 국내 현안이 아닌 외교 분야를 통해 퇴로를 열면서 에너지나 자원, 인권 등으로 분야를 넓혀가는 다목적 포석도 있다는 것이다.

박후보 캠프 안팎에서는 최근 안후보가 “이제는 북방 경제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2막을 본격적으로 열어가야 한다”라고 밝혔을 때 “아차!” 하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1998년 여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1천1마리를 직접 몰고 북한을 걸어간 것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이다. ‘황소 외교’로까지 회자되었던 그 이후 경색되었던 남북 관계가 호전되었다는 것은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안후보의 ‘북방 경제론’은 단순한 한 수가 아닌 결정적인 펀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안후보의 말처럼 이 열차는 “한국 경제와 남북 경협 그리고 동북아 경제 협력 정류장을 지나 북방 경제의 블루오션을 열 것이다”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등 야권의 ‘박근혜 네거티브’는 약 한 달 전부터 일시 멈춤 상태이다. 검증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타이밍을 재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국민을 감동시킬 한 수가 보이지 않는 한 ‘깔딱 고개’를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새누리당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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