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권한 다 줄게, 대통령만큼은!”
  • 안성모·조해수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10.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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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일이 임박해지면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 사이에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기싸움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그동안 두 후보는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는 분위기를 보여왔으나 이제는 날 선 공방을 주고받는 경쟁자가 되어 있다. 서로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 ‘안철수 대통령-문재인 총리’를 염두에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승부를 펼치는 형국이다. 차기 권력을 향한 두 사람의 수 싸움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 일러스트 정찬동
야권 후보 단일화의 현실적인 방안은 결국 ‘공동정부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후보가 대통령을, 또 다른 후보가 총리를 맡는 방식이다. 승자 독식 형태의 단일화가 아닌 권력 분점 형태의 단일화이다. 대통령은 외치(外治)에 전념하고, 총리가 내치(內治)를 총괄하는 형식이다.

대통령 권한 축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측이나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측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대통령은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총리를 해라’라는 식으로 한 치의 양보 없이 맞서고 있다는 데에 있다. 문후보 캠프는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를, 안후보 캠프는 ‘안철수 대통령-문재인 총리’를 염두에 두고 수 싸움을 펼치는 형국이다.

야권의 두 유력 주자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대결을 펼쳐야 한다는 점에서 ‘협력 관계’에 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를 놓고 힘겨루기를 펼쳐야 한다는 점에서 ‘경쟁 관계’에 있기도 하다. 그동안 두 후보는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후보를 상대로 상호 협력에 방점을 둔 행보를 이어왔다. 서로 상처가 될 언행도 가급적 삼갔다. 그런데 대선 정국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두 후보 간 경쟁 구도가 급속히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양측은 위험 수위를 오가는 날 선 공방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기 싸움을 펼치기 시작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10월7일 오전 불산 가스 누출 사고 피해를 입은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를 찾아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 문재인 제공
■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
“안철수, 독자 출마 선언하는 순간 야권 지지층이 쑥 빠질 것”

민주당은 ‘안철수 대통령-문재인 총리’ 그림은 상당히 어색하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그래서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을 거론하며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해찬 당 대표는 “전 세계 민주 국가에서 무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가를 경영한 사례가 없다.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라고 주장했다.

문후보 역시 정치 변화와 시대 변화를 안정감 있게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당 기반 없이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현실 정치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을 설명한 것이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후보에게는 후보 자리를 양보하거나 민주당에 입당하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민주당이 이처럼 안후보측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예민한 사안을 들고 나온 데는 후보 단일화 경쟁을 주도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우선 지지율 변동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감지했다. 특히 박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승산이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고무된 분위기이다. 문후보 캠프 관계자는 “추석 이후 호남에서부터 기류가 바뀌었다. 문후보와 안후보 모두 양자 구도에서 박후보를 이길 수 있다면 민주당 후보가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후보 자신도 상당히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다. 지난 10월10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서 그는 “불과 한 달 전과 지금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이제 사라졌다. 과연 민주당 후보로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상승, 안철수 하락 분위기 탔다”

민주당이 자신감을 갖는 데는 과거 경험도 한몫하고 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고 정몽준 후보를 상대로 단일화 경쟁에서 승리했다. 당시 단일화 방식은 여론조사였다. 정후보의 지지율이 다자 대결 구도에서도 30% 이상 나올 정도로 노후보가 객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지율 추세에 변화가 나타났다. 정후보의 지지율이 서서히 빠지는 반면 노후보의 지지율은 상승 곡선을 그린 것이다. 현재 안후보와 문후보의 지지율 추세가 이때와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지지율은 매일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다. 그래서 추세가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후보가 지난 5월에 제안했던 ‘공동정부론’과 9월 후보 수락 연설에서 밝힌 ‘책임총리제’가 다시 등장해 주목되고 있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은 안후보측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 구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와 관련해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문후보 캠프의 한 핵심 인사는 “지금은 두 후보가 각자의 비전을 보여주는 단계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라며 말을 아꼈다.

민주당이 설령 단일화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안후보측과의 관계 설정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다. 후보 단일화 문제가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는 ‘치킨 게임’ 양상으로 진행될 경우 더 부담스러운 쪽은 민주당이다. 안후보가 ‘마이웨이’를 선언하면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민주당이 후보 단일화에 더 적극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 만큼 방어 입장에 놓인 안후보를 더는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물론 문후보 캠프 내에서는 안후보가 단독 출마를 강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캠프 핵심 인사는 “단일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가 정권 교체에 있다. 두 후보 모두 이러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출마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안후보에게도 득 될 것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캠프의 다른 관계자는 “안후보가 무소속으로 끝까지 가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야권 지지층이 쑥 빠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물론 이 경우 문후보도 박후보를 상대로 승리한다고 보장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으로까지 치닫지 않기 위해 민주당으로서는 안후보를 적절히 견제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끌어안을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최상인 셈이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10월11일 세종시 어진동 밀마루전망대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이연호 대변인으로부터 건설 현황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안철수 제공
■ 안철수 대통령-문재인 총리
“외치와 내치 구분”…사실상 문후보에게 권한 총리 주겠다는 협상 카드


안철수 후보는 ‘공동정부론-책임총리제’에 대해 일단 외견상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다. 안후보측은 후보 단일화 논의가 나올 때마다 “정치 혁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단일화가 목적이 될 수 없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후보가 사실상 안후보를 겨냥해 제안한 공동정부론 자체에 이미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라는 구도가 설정되어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안후보 캠프 내에서는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어떤 논의도 금기시되어 있는 모습이다. 윤태곤 상황팀장은 “책임총리제를 비롯해 후보 단일화에 대해 어떤 논의도 진행되지 않았다. 문후보측이 (단일화와 관련해) 제안한 내용도 없다”라고 일축했다. 다른 캠프 관계자들 역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단일화 논의에 휩싸일 경우, 국민들에게 안후보를 충분히 알리지 못한 채 ‘정권 교체’라는 대의에 함몰될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대신 안후보측은 연일 발언 수위를 높이며 강력한 집권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안후보는 민주당측이 제기한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에 대해 지난 10월11일 청주교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지난 10년 동안 국민들이 여대야소가 되도록 힘을 모아줬더니 같은 정당 안에서 패가 갈리고 대통령을 탈당시켜 결국 정당 대통령을 무소속으로 만들었다. 지금 와서 정당론을 꺼내는 것이 참 어처구니가 없다. 지금까지 정치에서 정당이 어떤 책임을 졌는가 묻고 싶다”라며 ‘정당 실패론’으로 맞받아쳤다.

안후보의 최근 행보는 결국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민주당과 문후보를 기성 정치 세력으로 규정해, 새로운 정치를 대표하는 안후보 자신과 차별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 시사저널 유장훈
결국 “대통령은 내가”로 맞설 가능성도

안후보가 단일화를 위해 고려하고 있는 현실적인 방안 역시 사실상 문후보의 책임총리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안후보는 지난 10월7일 대통령 임명권 10분의 1 축소, 감사원장 국회 추천, 사면권 행사 국회 동의 등 권력 분점을 골자로 하는 정치 개혁안을 제시했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 ‘미래기획부’이다. 지난 10월10일 한겨레는 안후보 캠프 관계자의 말을 빌려 “미래기획부는 과거 국가 발전 5개년 계획 등을 주도했던 경제기획원을 미래 지향적으로 되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대통령이 이 미래 기획 업무와 통일·외교·안보를 담당하고, 나머지 기능은 총리가 담당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안후보측은 “단일화 방안의 일환으로 논의된 것이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나섰지만, 결국 막판 단일화 협상이 진행될 경우 문후보에게 이 안을 제시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즉, 문후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지분’을 제안하는 것으로, 자신이 단일 후보로 선정되어 집권했을 경우, 문후보를 총리로 삼아 인사권 등 대통령의 권한 중 상당 부분을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안철수 대통령-문재인 총리’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정치컨설팅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안후보로 단일화가 되었을 경우 문후보는 내각 조각권에서 많은 지분을 요구할 것이다. 절반 이상이 민주당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럴 경우 안후보가 대통령이더라도 민주당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정치 전문가들은 안후보의 집권 이후 대대적인 정계 개편이 이루어져 결국 대통령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황인상 P&C 정책개발원 대표는 “안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계 개편은 필연적이다. 안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들을 중심으로 ‘대통령당’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정계 개편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지도자 중심이 아닌 다양한 계파와 세력들이 아우러져 좀 더 폭넓은 형태가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개헌을 통해 이원집정부제가 제도화되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이 결국 대통령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문후보나 민주당이 쉽사리 안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안후보에게도 다르지 않다. 제 아무리 책임총리나 내치의 권한을 갖는 실질적인 내각 수반 총리라 하더라도 역시 총리 임명권은 대통령에 있다. 결국 양측은 끝까지 “총리 권한을 최대한 주겠다. 하지만 대통령은 내가 할 테다”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 일러스트 신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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