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인생 극장’ 클라이맥스는 계속된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0.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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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지키며 건재 과시…고선웅 연출가 2위

전문가들이 뽑은 연극 부문 차세대 리더 1위는 극단 골목길 대표인 박근형 연출가(26%)였다. 2위는 고선웅 연출가(극단 마방진·경기도립극단 연출가)로 6%의 지목률을 얻었고, 3위는 극단 집현의 이상희 연출가로 4%의 지목률을 기록했다.

박근형 연출가는 지난 몇 년간 계속 수위권에 올라 있는 한국의 대표 연출가이다. 박연출가와 고선웅 연출가는 서로에 대해 “사랑하는 후배”(박근형), “존경하는 선배”(고선웅)라고 부를 정도로 절친하다. 극단 골목길 사무실 벽에는 고연출가의 얼굴 그림이 걸려 있다. “선웅이가 왔을 때, 저 그림을 내가 사왔으니 가져가라고 했더니 이 장소에 어울린다며 안 가져갔다.” 고선웅의 얼굴 그림이 골목길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 일러스트 장재훈
이상희, 3위 오르며 처음 이름 올려

지난해에 비해 대폭 순위가 오른 고연출가는 이번 순위에 대해 “영광이다. 더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여름 작고한 일본의 한국계 연출가 쓰가 고헤이의 <뜨거운 바다>를 무대에 올려 찬사를 받았다. 무대를 본 쓰가 고헤이의 미망인과 딸은 고연출가를 일본에 초청해 같은 연출로 일본 배우를 써서 공연하겠다는 뜻을 밝혀 현재 추진 중이다. 그의 올해 마지막 작품은 LG아트센터 초청 기획 공연인 <리어외전>.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비튼 이 작품은 12월에 무대에 오른다. 그는 “원작보다는 덜 칙칙하고 박력 있게 만들 것이다. 무장르 오락 비극이다”라고 소개했다. 최근 2년간 올리는 작품마다 큰 화제를 모은 그가 피날레를 대포로 장식할지 주목된다.

3위를 차지한 이상희 연출가는 올해 처음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극단 목화와 자유에서 배우 노릇을 하던 그가 연출에 손을 댄 것은 1997년이다. 그런 한편으로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인 황해도 평산 지역 소놀음굿을 배우고 익혀 ‘전수 조교’로 지정받기도 했다. 그는 “굿은 예술의 보고이다. 우리 전통 굿의 예술성을 연극에 접목시켜 재창조하는 공부를 해왔다고 보면 된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런 공력을 바탕으로 그는 올해 <바리, 세상 밖으로>를 국립극장 무대에 올렸고, 이어 옹고집전을 현대화한 <미스터 옹>을 준비하고 있다.

(왼쪽)ⓒ연합뉴스, (오른쪽)ⓒ이상희 제공


ⓒ 시사저널 임준선
박근형 연출가는 올해에도 쉼 없이 달렸다. 상반기에는 <꽃과 건달과 피자와 사자>와 <전명출 평전> <청년 오레스테스>를 무대에 올렸다. 여름에는 여수엑스포에서 <바다의 소녀>라는 총체극 연출을 맡았다. 하반기에는, 9월에는 스트린드베리이 100주기 기념 페스티벌 개막작인 <유령 소나타>를, 10월에는 <화성인 이옥>, 11월에는 직접 대본을 쓴 <빨간버스>를 국립극장에 올린다. 그 사이사이에 앙상블 시나위의 음악극 <전통에서 말을 하다>와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의 무대 연출도 맡았다. 이어 오는 11월부터 3개월간 골목길 창단 10년 만에 그동안 무대에 올렸던 대표작을 한꺼번에 공연하는 ‘골목길 페스티벌’을 연다. 지금은 스크린과 안방극장으로 주 무대를 옮긴 윤제문과 고수희 같은 골목길의 대표 배우도 이 자리에 다시 모인다.

“극단을 만든 지 10년이 되었으니 잔치 한번 하는 것이다. 60석 되는 작은 극장(76스튜디오)에 갈탄 난로 피워놓고 옹기종기 모여서 공연하고, 끝나면 지인들이랑 매일매일 잔치하는 것이다.” 골목길 페스티벌에는 <쥐>와 <대대손손> 등 세 작품이 다시 선보인다.

골목길은 <청춘예찬>이나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같은 히트작을 갖고 있지만 장기 공연을 하지 않고 있다. 윤제문이나 고수희의 존재를 알린 것이 바로 1999년의 <청춘예찬>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그는 “연극은 한 번 끝나면 소멸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기 공연은 마음만 먹으면 하면 되는데 이를 위해 두 팀, 세 팀 만들면 극단이 공장이 되는 것 같고, 배우 수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초연 때 ‘그 맛’이 바뀔 수도 있다. 처음에 본 관객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반복되는 공연이 타성에 젖게 하고 실망시키는 경우도 많고…. 관객의 평이 좋은 작품도 대부분은 초연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더라”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그는 대학로의 상업적인 오픈런 공연을 낮춰 보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전문 제작자이니까, 그들이 장기 공연을 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자체 극장을 마련해 장기 공연하는 그런 시스템이 정착된 것 같다. 대학로에 놀러 나왔다가 즐거운 코미디 작품을 보고 관객이 잠시 편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어찌 보면 그것이 요즘 대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골목길에게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지금처럼, 이런 식으로 작품을 올리고 공연을 해도 생존에 문제가 없다. 영화나 방송으로 성공한 선배들이 운영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내가 엑스포 행사같이 외부 공연을 맡을 때는 여건이 좋으니까. 연극으로 돈을 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은 방송이나 영화로 해결할 수도 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 교수이기도 하다. 한예종은 최근 몇 년간 실기 분야에서 엄청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지난해에는 학생들 자살 문제로, 올해는 입시 부정 의혹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그는 “어느 학교나 좋지 않은 일이 있겠지만 나쁜 것이 부각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다른 이들이 주목할수록 몸가짐이나 마음 가짐을 잘해야 한다”라고 에둘러 말했다. 그는 “연극은 영재가 있을 수 없는 분야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음악이나 무용과 달리 연극은 30~40세가 넘어야 빛을 볼 수 있다. 많이 살아보고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 할 수 있는 직업이 연기이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삶의 관록이 쌓이면 표현이 깊고 완숙해지겠지만 연극에서는 오랜 쓰라림을 맛봐야 진국이 나온다. 초기 한예종 출신들이 이제 마흔이 되었다. 그 보석들이 빛을 발할 때가 왔다.” 이 오랜 기다림과 숙성의 과정을 못 참아서인지 연극 분야에서는 무용이나 음악, 미술과는 달리 입시 부정이라는 말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국악의 아쟁 소리가 좋다는 그는 최근에 전통음악 공연 연출에도 손을 대고 있다. “아쟁을 가까이서 들으면 정말 안 빠져들 수가 없다. 누구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국악 입문 초기 증상이라고 하더라. 극단 연습할 때 전통 국악인을 초청해서 단원들에게 연주를 들려주며 힘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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