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양김’, 국내 IT 생태계 바꾸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10.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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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김정주 NXC 대표, 나란히 1, 2위

정보기술(IT)업계의 ‘지각 변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IT 부문의 차세대 파워 리더는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현 무소속 대선 후보)의 독주 체제였다. 안 전 원장은 지난 2008년부터 4년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IT 부문에서 그의 영향력은 해가 갈수록 커졌다. 2010년 68%에서 지난해 76%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대선 출마 원년인 올해에는 순위권에서 제외되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이해진 NHN 의장, 이제범 카카오 공동대표 등도 지난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올 들어 김택진 대표와 이제범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름이 빠졌다. IT업계의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고, 스마트폰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인물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연합뉴스
독주 체제  구축했던 안철수 전 원장은 순위권 밖으로

IT 부문에서 강하게 부각되는 인물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주 엔엑스씨(NXC) 대표이다. 두 사람은 국내 게임업계를 이끄는 ‘쌍두마차’이다. 전문가들을 상대로 IT 부문의 차세대 파워 리더를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김정주 대표가 김택진 대표를 앞서고 있다. 지난해 넥슨은 1조2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엔씨소프트의 매출(6천89억원)과 두 배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하다. 넥슨은 주로 M&A(인수·합병)를 통해 매출을 끌어올렸다. 엔씨소프트는 직접 개발한 게임을 히트시켜 수익을 냈다. 기술 개발에서는 넥슨보다 엔씨소프트가 한 수 위라는 것이 게임업계의 중론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두 인사가 최근 ‘적과의 동침’을 시도하고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미국의 주요 게임업체인 ‘밸브(Valve)’에 대한 공동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최근 하와이에서 극비리에 회동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밸브는 글로벌 순위 5위 안에 드는 초대형 게임업체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슈팅 게임 ‘하프 라이프(Half Life)’를 개발한 회사이다. 전 세계에 4천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스팀(Steam)’도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두 김대표가 밸브 인수에 성공하게 되면 국내 게임업계의 생태계가 완전히 바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왼쪽)ⓒ 뉴스뱅크이미지, (오른쪽) ⓒ 시사저널 임준선
엔씨소프트와 넥슨측은 현재 밸브의 공동 인수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양측은 “하와이에서 두 대표가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밸브 인수를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두 인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김택진 대표는 지난 6월 넥슨에게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8천45억원에 매각했다. 업계에서는 “결국은 밸브를 인수할 자금을 마련하려는 취지가 아니겠느냐”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재벌가 중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세계 최대 IT업체인 삼성전자의 최고운영책임자(COO)라는 직책과 그룹 차기 총수라는 지위가 이재용 사장을 돋보이게 한다. 이제범 카카오 공동대표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순위권에 진입했다. 이대표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실질적인 개발자이다. 올 초 ‘플랫폼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모바일업계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최근 무료전화 서비스 ‘보이스톡’을 선보이면서 이동통신업계와 각을 세우고 있다. 스마트폰 게임 ‘애니팡’은 누적 다운로드 2천만건을 돌파하면서 전국을 애니팡 게임장으로 만들었다. 롯데 영플라자 명동점 앞에 마련된 특설 무대에서 ‘최고수 선발전’이 열릴 정도이다. 스마트폰의 인기를 감안할 때 이제범 대표의 영향력은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미국 증시에서는 애플과 구글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기업 가치를 넘어선 상태이다. 애플은 지난 2010년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판매하면서 MS를 추월했다. 구글도 최근 스마트 단말기의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을 64%까지 확대하면서 MS를 제치고 세계 2위 기업에 올라섰다. 국내 IT 시장 역시 향후 모바일 시장의 대응에 따라 세대교체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왼쪽)ⓒ 시사저널 유장훈, (오른쪽)ⓒ EPA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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