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보다 사람에 주목하라”
  • 박병록│경향게임스 기자 ()
  • 승인 2012.10.3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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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팡 개발자 등 게임업계 영웅 2인의 창업 성공 스토리

(왼쪽)선데이토즈 이정웅 대표 ⓒ 이정웅 제공, (오른쪽)스윙크 양희세 대표 ⓒ 양희세 제공
대한민국 청년은 슬프다.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해도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88만원 세대’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불과 2~3년 전에는 대기업을 선호하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대기업의 허상을 버리고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에서 기회를 노리라는 조언이라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 자체가 어렵다 보니 그저 ‘힘내라’는 격려가 전부이다. 취업해도 저임금과 고용 불안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 청춘에게 지하실 창업으로 넥슨이라는 거대 게임사를 만든 김정주 NXC대표는 “월급 주는 사람이 되라”라고 말한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다른 모든 사람이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할 때 과감히 창업을 시도해 성공을 일군 선배 CEO의 창업 스토리가 있다.

이정웅 대표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

이정웅 선데이토즈 대표(31)는 명지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개발자 출신 CEO이다. 대학 졸업 후 트랙나인, 신텍정보시스템, NHN 등을 거쳤으며, 2008년 선데이토즈를 설립했다. 선데이토즈의 대표작 ‘애니팡’은 2012년 게임 산업의 모든 이슈를 독점하고 있다. 1천만 다운로드, 2백만명 이상의 동시 접속자, 1일 3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게임의 저변을 여성과 40대 이상으로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정웅 대표는 2008년 엔씨소프트 출신 임현수 이사, ‘오디션’ 개발자 박찬석 이사와 선데이토즈를 설립했다. 이정웅 대표는 창업 당시를 떠올리며, 혼자서는 창업을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세 사람은 그야말로 국내 게임 산업에서 핵심이 되는 기업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유망한 개발자였다. 대우도 좋았고 회사에서 입지도 남달랐다. 그럼에도 창업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콘텐츠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출발은 좋았다. 세 사람이 모두 개발자였기 때문에 다른 직원이 필요 없었다. 직원 고용의 위험도가 낮았고 오랜 친구 사이라 팀워크도 좋았다. 하지만 첫 번째 야심작이 시장에서 참패했다. 게임성은 우수했고, 참신한 시도였지만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자신만만했던 세 사람은 납득할 수 없었던 실패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발력 이외에 모든 부분이 부족하다는 답을 얻었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고객 관리, 운영, 비즈니스 등 모든 부분에 대한 경험도 방법도 몰랐던 것이다. 소셜 게임 분야는 장기적인 운영과 고객 관리, 비즈니스의 접목이 개발만큼 중요하다는 것도 이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실패를 교훈삼아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 그 분야 전문가를 영입했고, 철저하게 짜인 전략 아래 모든 사업을 움직였다.

2009년 1등 소셜 게임 개발사라는 기업 비전을 만들고 싸이월드 앱스토어에 ‘애니팡’ ‘사천성’ ‘아쿠아스토리’ 등을 발표해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정웅 대표는 2011년 새로운 기업 목표를 세우고 기업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싸이월드 해킹 사건이 발생한 것이 계기였다. 유저들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보안에 문제를 느낀 사용자들이 결제를 꺼리면서 매출도 줄어들었다. 이 사건을 통해 자신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던 싸이월드를 떠나 새로운 플랫폼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여기에 성공을 자신했던 ‘정글스토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보이며 부진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필요했다. 이정웅 대표는 그 대안으로 모바일을 선택했다. 기존 모든 개발 라인업을 중단하고 모바일 시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경험이 없는 모바일에 대한 시도는 기존의 개발력을 모두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1년이 넘도록 신작 출시는 제쳐놓고 문제 해결에 모든 직원이 매달렸다. 일부 직원들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느냐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이정웅 대표의 결정은 확고했다.

어려움 끝에 애니팡의 모바일 버전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시장에 출시하기 꺼려졌다. 적절한 수익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다수 모바일 게임사가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앱스토어 유료 판매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운 좋게 카카오톡 게임센터 개설과 시기가 맞았고, 플랫폼 사와의 조율을 통해서 2012년 7월30일 ‘애니팡’의 모바일 버전을 출시했다. 선데이토즈는 소셜 분야에서보다 더 큰 성공을 만들어냈다.

양희세 대표 “리스크 최소화하라”

양희세 스웡크 대표는 연세대학교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스윙크를 설립했다. 국내 기능성 게임 분야에서 가장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1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의 국립과천과학관과 기능성 게임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기능성 게임 대회를 독자적으로 실시해 국내 기능성 게임 가운데 가장 많은 유저 데이터와 학습 효율을 자랑한다. 스윙크의 성공으로 상업적인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기능성 게임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의 판단이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게임의 역기능을 해소해 차세대 교육 부교재로 게임을 각광받게 만들었다.

양희세 대표는 대학 졸업 직후, 기능성 게임 개발에 뛰어든 창년 창업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사회 경험이 적은 20대에 사업을 시작한 양희세 대표는 두 차례 실패를 경험했다. 스윙크는 그에게 세 번째 창업이었다. 양희세 대표가 두 번의 실패를 통해서 얻은 교훈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라’라는 것이었다. 좋은 아이디어와 넉넉한 자금이 있었지만, 성급하게 사업 규모를 늘리고 치밀하지 못했던 사업 계획으로 연이은 실패를 경험했다.

두 번의 실패 후 양희세 대표는 2008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스윙크를 설립했다. 남들 보기 좋은 사무실을 버리고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제공하는 작은 사무실에서 창업했다. 산학협력단은 양희세 대표가 고심하던 고민을 상당 부분 해결해주었다. 앞서 선데이토즈의 이정웅 대표가 개발자 출신의 CEO였던 것에 반해, 양희세 대표는 좋은 개발자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연세대 산학협력단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만만치 않은 임대료였지만, 좋은 개발자를 수급받을 수 있었고, 사무실에 필요한 의자와 책상, PC도 무상으로 임대받을 수 있었다.

고정비를 줄이고, 개발자 수급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스윙크의 기능성 게임 개발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정비가 줄어들면서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해 시장에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었다. 이전 두 번의 실패에서는 시간에 쫓겨서 미흡하게 만든 게임을 시장에 출시해, 참패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완성도가 높아 정부 기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스윙크는 국내 굴지의 교육 출판사인 두산과 공동으로 기능성 게임을 개발하고 있으며, 교과부의 기능성 게임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양희세 대표는 창업 준비생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성공 가능성을 키우는 리스크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성공할 아이디어보다 실패를 최소화하는 아이디어가 요구된다”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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