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사고보다 더 큰 재앙 올 수 있다”
  • 충남 부여·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10.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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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은산면 주민들, 산업폐기물 매립장 건설 “절대 안 된다” 반대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 일대 산업 지정 폐기물 매립장 건설 예정 부지. ⓒ 시사저널 최준필
충남 부여군 은산면. 인구 4천명이 조금 넘는 전형적인 이 농촌 마을은 요즘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지난 10월20일에는 시골 마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인 무려 2천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가 은산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지역에 폐기물 매립장 설립이 추진되면서, 주민 모두가 농민에서 ‘투사’로 변신한 것이다.

㈜에코에이스는 은산면 대양리 산 25-1번지 일대 87만1천9백96m²(26만3천7백78평)에 1만1천평 규모의 폐기물 처리장 4개소를 16년간 운영할 계획으로, 현재 21만평의 토지를 매입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은산면 이장단은 지난 8월29일 ‘은산면 폐기물매립장 설치 반대 대책위원회(위원장 황정익)’를 구성하고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0월24일 기자가 방문한 은산면에는 붉은 글씨로 쓰인 플래카드가 마을 입구부터 골목마다 걸려 있었다. 면사무소에는 대책위원회 사무실이 차려져, 한적하기만 한 다른 면사무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에서 만난 황정익 위원장은 폐기물 매립장의 경우 구미 불산 가스 유출 사고보다 더 큰 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위원장은 “산업 지정 폐기물에는 수은과 납, 카드뮴, 비소와 같은 발암물질과 중금속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단 한 번의 유출 사고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미나마타 병은 물론 각종 암의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매립장 예정지가 고지대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황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매립장 예정지는 면사무소에서 약 4km 떨어진 은산면 축령봉 일대에 있었다. 예정지와 불과 3백~4백m 거리에는 부락도 위치하고 있었다. 만약 태풍 등의 천재지변으로 폐기물이 유출될 경우 지하수는 물론 예정지 하류 지역에 있는 은산천의 수질 오염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황위원장은 “은산면은 태풍 피해가 잦은 곳이다. 지난 2010년에도 집중 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주택이 유실되어 두 명이 숨지기도 했다. 만약 폭우로 차수막이 훼손되면 은산천과 맞닿아 있는 백마강까지 오염된다. 이 지역 전체 농·식수원이 못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지역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은산면을 비롯한 부여군의 주 수입원은 유기농·친환경 농산물이다. 부여군 공동 브랜드 ‘굿뜨래’ 이름으로 나오는 농작물 중 밤과 멜론, 토마토, 양송이버섯, 표고버섯은 전국 최고의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선다면 농산물에 대한 고객 신뢰도가 밑둥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원회와 연대해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부여군 공무원노조의 정길채 지부장은 “폐기물 유출이 없더라도 폐기물 매립장 인근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누가 제값을 주고 사겠는가? 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서는 순간 부여군 전체의 생활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또한 은산면에는 귀촌·귀농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폐기물 매립장 옆으로 이사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년에 대양리에 네 가구가 이주할 예정이었으나, 매립장 설립 소식 탓에 귀촌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오히려 은산면을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지 않겠는가. 폐기물 매립장 설립은 곧 은산면의 몰락을 뜻한다”라고 비판했다.

폐기물 매립장 설립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매립장 예정지는 밤 재배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날에는 마침 밤 수확이 한창이었다. 이 지역은 임업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보전산지’이다. 황위원장은 “산지관리법에 따르면 보전산지가 60% 이상을 넘을 경우 개발 행위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매립장 예정지의 보전산지 비중은 약 75%에 이르고 있다. 이런 곳에 매립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0월24일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 일대 산업 지정 폐기물 매립장 건설 예정 부지 인근에 내걸린 현수막들. ⓒ 시사저널 최준필
업체측은 “주민들이 억지 부리고 있다”

은산면 거리 곳곳에 내걸린 플래카드 중에는 ‘1천4백년 전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백제 왕도 부여에 산업 폐기물장이 웬말이냐’라고 쓰인 문구도 눈에 띄었다. 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오면 관광객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담긴 것이다. 특히 은산면에는 도천사지와 현애사지, 숭각사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김태호 부여군의회 부의장은 “은산면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은산별신제가 있다. 국·도비를 받아 매년 3월에 별신제를 지내는데, 행사 때 제관은 하천물에서 목욕 재계를 하고 있다. 또한 하천물로 술을 담가 제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곳에 폐기물 매립장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폐기물 매립장 건설을 놓고 몇십 년간 살을 부비며 살아왔던 이웃 간에 허물 수 없는 벽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목돈을 만질 수 있는 매립장 예정지의 토지주와 다른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황위원장은 “매립장 인근 지역에 대한 추진업체의 토지 매입 약속에 토지주 4~5명이 찬성하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4천여 명의 은산면민들은 결사 반대하는 입장이다. 토지주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토지주들도 자신의 고향이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라고 호소했다. 반대 움직임은 은산면 차원을 넘어 은산천이 흐르는 인근 규암면, 나아가 부여군 전체로 확산하는 흐름이다. 부여군의회와 부여군 이장단 전체의 반대 결의도 추진되고 있다. 

폐기물 매립장 건설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행정 기관에서도 이를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용우 부여군수는 “환경 영향 평가 등 행정적 절차가 진행된 것은 아직 없다. 그러나 보전산지 문제나 지역 경제를 고려할 때 매립장 건설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매립장 예정지가 고지대에 위치한 데다 이상 고온으로 자연재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오염물질 유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매립장 건설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폐기물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는 에코에이스측에서는 주민들이 객관적인 근거 없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형적인 ‘떼법’이라는 것이다. 권태집 에코에이스 대표는 “매립장은 ‘밀폐형 돔’ 형식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이 방식은 안전성이 입증되었다. 환경부에 돔 형식으로 건설된 매립장 중 오염물질이 유출된 사례가 있는지 문의한 결과 단 한 건도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주민들의 소득을 보전하는 차원에서 해마다 1억원을 마을 발전 기금으로 지급한다는 협약서도 체결했다. 지역 주민들을 우선 채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보전산지도 실제 사업장으로 사용되는 12만평을 기준으로 하면 58~59%에 그친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우리는 공청회든 환경 영향 평가든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환경 영향 평가를 위해 필요한 오염 측정기 사용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항변했다.

농민들이 농기구 대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는 부여 은산면의 상황은, 구미 불산 가스 유출 사고 이후 한껏 높아진 유해물질 배출 업체에 대한 주민들의 경각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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