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용사’ 9인, 하나고 위해 뭉쳤나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11.1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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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고등학교 출연 관련 외환은행 이사회 의사록 입수 분석

김승유 하나고등학교 이사장이 외환은행 노조와 한판 붙었다. 외환은행 노조는 ‘2백57억원을 하나고에 출연하기로 한 결정을 철회하라’며 은행측과 김승유 이사장을 압박하고 있다. 등록금 1천만원이 넘는 ‘귀족 학교’에 사회공헌이라는 명목으로 거액을 출연한 것은 부당한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승유 이사장은 “외환은행 노조가 허위 사실을 유포해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모독인 만큼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할 것이다”라고 맞서고 있다.

기업의 중요한 결정은 보통 이사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사회 회의 안건으로 상정되면 이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당 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논의한 후 결정하게 된다. 외환은행의 하나고 출연 결정 역시 이사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이사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시사저널>은 김기준 민주통합당 의원의 협조를 받아 당시 하나고 출연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제46기 9차 이사회 의사록’을 입수했다. 내용을 들여다본 결과 하나고에 대한 출연이 적절한 결정인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대신 대외적 시선을 고려해 출연 시기와 규모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이사회는 지난 10월16일 오전 10시10분부터 12시20분까지 외환은행 본점 15층 임원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의장을 맡은 김주성 이사를 비롯해 윤용로 행장 등 아홉 명의 이사진이 참석했다. 윤용로 외환은행장은 시작부터 여론을 의식하는 발언을 꺼냈다. 곽철승 그룹장이 회의 시작 전 안건 설명과 함께 ‘하나고는 강남 3구 소재 자녀의 입학을 제한한다’고 하자 윤행장은 “하나고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인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정확하게 파악해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타당성 여부 검토 없이 논의 이끌어가

권○○ 이사가 바통을 이어갔다. 권이사는 “이번 안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은행이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외부에 기부하는 데 있어 하나고가 적절한 곳이냐 하는 것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하나고에 출연을 해야 하는 이유를 피력한 후 곧바로 “기부금 출연은 Lump sum(일시불)으로 한꺼번에 다 내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때부터 회의에서는 주로 출연 방법이나 시기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처음에는 외부 시선을 의식해 분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권○○ 이사는 “대내외 논란이 있는 점을 감안해 3~5년 사이에 분담하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용로 행장이 “금리 하락으로 운용 수익이 감소한 상황이다. 사회공헌 활동을 지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환은행 직원 자녀들에게 내년부터 다른 관계사 자녀와 동일한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일정 기여는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의장을 맡은 김주성 이사도 입을 열었다. 김주성 이사는 “출연금을 일시로 할 것인지, 분할할 것인지는 은행과 하나고 상호 입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은행 입장도 있지만 출연이 지연되었을 때 하나고에 다른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중략) 사회적 인재 양성을 위한 기부금 출연 취지와 상호 입장을 고려하면 원안대로 가결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김주성 이사는 지난 1998년 하나은행 이사직을 시작해 2005년부터 3년 동안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로 활동하다가 외환은행 사외이사가 된 인물이다.

가장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 인물은 홍○○ 이사였다. 홍이사는 출연 방법에 대해 ‘타이밍이 굉장히 안 좋다’며 이자 해당 분을 먼저 출연하고 내년 상황을 봐서 출연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출연 시기에 대해서도 “출연하되, 그 시기를 예민한 정국이 끝난 시기, 예를 들어 올해를 지나고 하는 것이 어떠냐”라고 말했다. 또 “강남 3구 자녀에 대해 전체 정원 기준으로 입학을 제한한다면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귀족 학교라는 시비는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개해도 되는 사항이면 적극적으로 언론에 홍보할 필요가 있겠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날 회의는 ‘기부금 출연은 원안대로 하되 출연 시기는 행장이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나고 출연에 대한 적정성 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큰 파장 없이 출연할 수 있을까’가 회의의 주된 주제였다.

지난 10월31일 하나고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전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하나금융 계열사, 하나고에 8백34억원 후원

하나고는 이미 하나금융그룹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2012년 10월19일 현재까지 8백34억원이 넘는 출연 및 후원을 받았다. 아직 집행되지 않은 외환은행의 출연금 2백57억원이 더해질 경우 1천억원이 넘어간다.

하나고가 하나금융 계열사를 넘어 외환은행에까지 손을 벌리게 된 것은 ‘수익용 기본 재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수익용 기본 재산은 말 그대로 수익을 창출해내는 재산을 말한다. 부동산, 은행 예금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학교법인은 연간 학교 회계 운영 수익 총액의 약 2분의 1 이상의 수익용 기본 재산을 확보해야 하며, 수익용 기본 재산은 보유 총액의 3.5% 이상 수익이 나야 한다. 교육청은 재정 건전성을 위해 수익용 기본 재산을 확보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나고는 총 2백60억원 정도의 수익용 기본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주로 예금 형태로 되어 있으며 예금 이자를 운영 자금으로 쓴다. 그런데 최근 금리 하락으로 운용 수익이 감소한 상황이다. 지금으로서는 수익용 기본 재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7억~8억원 수준이다. 25억~30억원 정도는 되어야 운영이 가능한데 한참 모자란다. 하나고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해마다 20억원 이상을 그룹에서 받아와야 한다. 사실은 외환은행에서 목돈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외환은행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2백50억원 정도 출연해주겠다고 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외환은행 노조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환은행 노조 관계자는 “은행도 힘든 상황인데 수익성도 없는 사립학교에 사회공헌 명목으로 거액을 가져다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솔직히 (하나고) 이사장이 김승유 회장이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전했다. 김승유 이사장은 하나금융지주의 중요업무를 처리하는 등 여전히 하나금융 안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전히 은행 안팎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김기준 의원실에 따르면 김승유 회장은 국정감사 증인 출석 요구에 대해 ‘하나금융그룹에서 진행하는 BNB Bank 지분 인수 건과 관련한 출장으로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답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인 이대순 변호사는 “예전부터 지적했지만 하나고는 단순한 학교로 보면 안 된다. 김승유 이사장은 하나고를 통해 하나금융지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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