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감시 기능, ‘가동’ 멈춘 상태였다
  • 김익중│동국대 의대 교수 ()
  • 승인 2012.11.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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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부품 품질 검증서 위조 사건 진상 추적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변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 시사저널 최준필
지난 11월5일 영광 원전 5·6호기의 가동이 중단되었다. 문제는 요즘 흔히 발생하는 고장이나 사고 때문이 아니라, 납품 비리 사건 때문에 스스로 멈춘 것이라는 점이다. 지식경제부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원전 부품 납품업체가 제출한, 해외 품질 검증 기관의 2003~2012년 품질 검증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60건이 위조된 것이 확인되었다. 위조된 검증서를 통해 원전에 납품된 제품은 총 2백37개 품목의 7천6백82개 제품이며, 이 중에서 실제 원전에 사용된 것은 1백36개 품목의 5천2백33개 제품으로 확인되었다. 위조된 검증서를 통해서 불법으로 납품된 부품들은 영광 3·4·5·6호기, 울진 3호기 등 5개 원전에서 사용되었으며 이 가운데 대부분이 영광 5·6호기에 사용되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미검증품 전체에 대한 교체 작업에 착수했고, 연말까지 영광 5·6호기의 가동을 정지한다는 것이다. 원전 2기의 정지로 올겨울은 사상 유례없는 전력난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전력 당국은 초고강도 전력 수급 종합 대책을 마련해 11월 중순쯤 조기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10년간 지속된 비리, 외부 제보로 발각

그런데 이번 사건을 잘 들여다보면, 몇 가지 이상한 점들이 발견된다. 첫째는 이 새로운 유형의 납품 비리 사건이 1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과연 10년 동안 한수원 내부나 원자력안전기술원 등 관계 기관이 정말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지가 궁금해진다. 둘째로 이 사건이 알려진 것은 한수원 내부나 관계 기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제보에 의해서였다는 점이다. 최근의 납품 비리 사건들은 거의 모두 외부 고발자에 의해서 사건이 드러났는데, 한수원을 감시하는 핵산업계 내부의 감시 기능은 왜 작동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하다. 셋째는 한수원과 지경부가 이 사건을 조사하고 수사 의뢰를 하는 동안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한 달이 넘도록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전의 안전 운영에 관한 책임이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이 가동 중지된 시점에서야 이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막강한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혹시 ‘종이호랑이’가 아닌지 의심된다. 넷째, 제도적인 문제도 이번에 드러났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의 원자력안전기술원이 가지고 있던 품질 검증 권한의 일부를 한수원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이로 인해 한수원은 일부 부품에 대한 품질 검증을 직접 관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의 본질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수원에 대한 국가의 감시 기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시 권한을 갖는 기관들이 그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사업체나 감시 기관이나 할 것 없이 핵산업계 모두가 ‘한통속’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주변에서 나오는 한결같은 얘기이다. 인적 구성이 그렇게 되어 있고, 법적으로도 사업체의 편의가 우선되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지경부는 이 사건의 초점을 ‘전력 수급의 위기’에 맞추고 있다. 영광 5·6호기의 정지가 단지 전력 수급 문제인 것으로, 그래서 전력 수급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핵산업계가 사용했던 전가의 보도는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라는 대국민 협박성 입장이었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이 문제가 되었을 때도, 탈핵과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했을 때도, 바로 그 논리가 사용되었었다. 이번 비리 사건에 대한 지경부의 보도자료에도 예외 없이 이 논리가 들어가 있다. 그러자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핵산업계의 논리에 묶여 있어야 하는가”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관계 당국에서 항상 내세우는 전력 수급의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전력 수급은 전기 공급과 수요의 문제이다. 전력 수급 문제는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너무 많이 증가할 때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이 중 어느 경우일까? 답을 먼저 말하자면, 수요 증가가 문제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현재 해외의 많은 나라는 전력 피크를 지났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전력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전력 수요와 경제 성장의 상관관계가 작아지는 이른바 디커플링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만이 전력 수요가 아직까지도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기 요금제를 비롯한 수요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 요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싸다고 볼 수 있다. 가정용 전기 요금은 세계 수준과 엇비슷하지만, 산업계의 전기 요금은 지나칠 정도로 싼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중국보다 더 싸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중국의 기업이 한국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이다. 전기요금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낮게 유지되어 한전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났고, 그 부담은 결국 국민이 지게 될 것이다. 실제 전기의 약 55%를 사용하는 산업계는 값싼 전기를 물 쓰듯 하고 있다. 심지어는 석유나 가스를 사용하던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경향마저 생겨났는데, 이렇게 산업계의 전기 수요 폭증은 아무리 원전을 많이 짓는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탈원전을 하면 전기 요금이 40% 오를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이런 소비 증가 추세라면 탈원전을 하지 않는다 해도 전기 요금을 50% 이상 올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의 생산 원가 중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산업계의 이 작은 이익을 위해서 원전을 더 지어야 하고, 외국의 에너지 다소비 업체까지 불러들여야 할까’라는 의문과 함께 ‘대기업과 외국 기업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원전의 위험과 송전탑의 고통과 환경오염과 세금의 무게를 국민이 감당해야 할까’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전기 요금 왜곡하는 핵발전소가 악순환 불러

정부는 그동안 “원전은 값싼 에너지이다”라는 스스로의 말을 지키기 위해서 전기 요금을 낮게 유지했고, 산업계는 다른 연료보다 값이 싼 전기를 쓰기 위해서 석유나 가스 연료를 전기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서 전기 수요는 폭증했다. 한전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 요금 때문에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고, 국민은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세금 부담을 늘려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 악순환의 중심에 핵발전소와 전기 수요 급증 현상이 존재하는 셈이다. 전기 요금을 왜곡하는 핵발전소가 이 모든 악순환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중심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핵발전소를 서서히 줄여가면서 수요 관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수요 관리를 통해 전기 소비를 줄이면서 서서히 에너지 전환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원전 부품 납품 비리 사건을 보면서 한수원과 핵산업계 내부의 투명성만 강조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해결법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수원을 비롯한 핵산업계가 이렇게 기형적으로 커버렸고, 그들만의 폐쇄적인 구조로 감시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는 주된 원인은 바로 우리의 원전 지상주의 사고에 있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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