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 메이저리거 류현진, ‘박찬호 신화’ 넘어설까
  • 정철우│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12.11.20 10: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코리안 괴물 투수 맞비교

‘괴물’ 류현진이 지난 11월14일 드디어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떠났다. LA 다저스와 계약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를 만날 예정이다. 아직 계약이 되지 않았으니 다저스맨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보라스가 구단 돈을 끌어내는 데 워낙 악명 높은 인물이다 보니 양측의 기 싸움이 일찌감치 펼쳐지고 있다. 때문에 ‘혹 감정싸움이 지나쳐 계약이 틀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류현진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 만큼 모두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상황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연합뉴스
류현진이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되면 좋든 싫든 대선배 박찬호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박찬호는 지난 1994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한국 야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그가 입었던 첫 번째 유니폼이 바로, 일명 ‘다저 블루’라고 불리는 푸른빛의 LA 다저스 유니폼이었다.

만약 그들이 동시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면 ‘최동원 vs 선동렬’에 이은 또 하나의 진짜 승부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0여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의 격차는 맞대결은커녕 직접적인 비교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글이라면 가능하다. 시간의 차이를 애써 외면한 채 둘의 공을 한 번쯤 비교해보는 것도 팬으로서 꽤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투수가 던진 공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얼핏 크게 떠오르거나 직선으로 꽂히는 것 같지만, 중력은 공평하고 모든 공을 잡아당긴다. 하지만 모든 투구가 중력에 똑같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강하게 손끝에 채인 공은 회전의 힘을 받아 중력을 최대한 이겨낸다.

박찬호의 직구는 일명 라이징 패스트볼이라고 불렸다. 공이 타자 앞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리학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덜 떨어진 공’이었지만, 치는 타자나 보는 팬들에게 그의 직구는 ‘부~웅’ 하며 떠오르는 위력적인 궤적을 보였다. 그는 한국에서 이미 1백60km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진 것으로 유명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 97마일(1백56km)까지 나오는 괴력을 뽐냈다. 스피드와 무브먼트 모두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류현진의 직구는 박찬호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솟아오르기보다는 묵직하게 밀고 들어가는 힘을 갖고 있다. 김정준 SBS ESPN 해설위원은 “2012 스프링캠프 때 포수 뒤에서 직접 공을 보니 진정한 돌직구는 오승환이 아니라 류현진이었다. 이 공에 제구력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류현진이 최고가 된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쓰리핑거 체인지업 vs 써클체인지업

제구력 부분에서는 박찬호가 류현진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 박찬호는 완벽한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투수는 아니었다. 삼진만큼 볼넷도 많았다. 최고 전성기였던 1999년과 2000년에는 볼넷이 2년 연속 100개를 돌파했을 정도이다. 대신 많이 쌓아놓고 극적인 삼진으로 해결해내는 통쾌함이 매력적이었다. 류현진은 제구력이 안정된 투수이다. 쉽게 볼넷을 내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2백 이닝을 돌파(2백11이닝)한 2007년에도 그의 볼넷은 63개에 불과했다.

한국에 체인지업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은 한화의 두 전설 송진우와 구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완성시킨 체인지업은 한국 야구사에 새로운 구종의 진입을 알렸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더욱 강렬하게 남은 체인지업은 박찬호의 써클체인지업이었다. 박찬호가 등판하는 LA 다저스가 국가대표팀이나 다름없던 시절, 박찬호가 하는 것은 모두 개척자의 도전 정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당시 박찬호는 그리 좋은 써클체인지업 투수는 아니었다. 직구와 투구 폼에서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직구와 슬러브 등 빠른 승부 일변도의 투구 패턴에서 완급 조절을 하는 수준 이상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써클체인지업의 위력만 놓고 보면 류현진이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2006년 한화에 입단하며 구대성에게 체인지업을 전수받은 류현진은 빠르게 이 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이 써클체인지업을 앞세워 한국 최고 투수가 되었다.

류현진표 써클체인지업의 최대 강점은 직구와 똑같은 폼에서 똑같은 궤적으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류현진의 빠르고 묵직한 직구에 잔뜩 긴장해 있던 타자들은 그보다 느린 직구처럼 보이는 체인지업에 스윙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막상 공은 마지막 순간에 떨어지며 방망이를 비켜나가기 일쑤였다. 결국 허탈하게 삼진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찬호의 체인지업은 써클체인지업에 머무르지 않는다. 샌디에이고로 이적한 뒤 그의 체인지업은 일명 쓰리핑거 체인지업으로 진화한다. 써클체인지업은 엄지와 검지로 원을 그린 뒤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던지는 공이고, 쓰리핑거 체인지업은 검지와 중지, 약지로 던지는 체인지업이다. 박찬호는 이 쓰리핑거 체인지업까지 익히며 좀 더 다양한 공으로 타자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발차기 vs 박치기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발차기 사건이다. 1999년 6월, 애너하임과의 경기에서 번트를 대고 1루로 뛰던 박찬호를 상대 투수 팀 벨처가 강하게 태그하며 문제가 발생했다. 고의적인 도발로 여긴 박찬호는 화를 냈고, 팀 벨처가 이에 대응하자 발차기를 날려버린 것이다. 미국에서는 몸싸움에서 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우리와 다른 문화는 사건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박찬호를 가해자로 몰고 갔다.

이 사건은 박찬호의 외로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선수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웠다. 보이지 않는 차별과 외로움이 있었다. 성공의 크기가 커질수록 부담도 커져갔을 젊은 박찬호에게 오랫동안 이어지는 타국에서의 삶은 누구도 달래주기 힘든 마음의 짐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류현진은 한결 여유 있는 입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타고난 천성이 여유롭고 무덤덤하다. 시쳇말로 ‘뭐, 안 되면 받아버리면 그만’이라는 여유가 늘 넘치는 선수이다. 전문가들이 그의 가장 큰 장점을 ‘마인드’로 꼽는 이유이다.

박찬호와 같은 개척자 덕에 이제는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는 점도 류현진에게는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저스가 류현진을 시작으로 다시 한번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인 만큼 팀 내 입지도 빠르게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최고 연봉 1천5백50만 달러를 받은 선수였다. 아직 계약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류현진은 약 연 1천만 달러(포스팅 비용 포함) 이상의 몸값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메이저리그 3선발급 투수를 영입할 때 투자할 수 있는 수준의 몸값이다. 메이저리그에 첫발을 내딛는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찬호를 빠르게 쫓아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박찬호의 몸값은 메이저리그 1선발급 선수들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지금의 메이저리그라면 맨 앞의 1자가 2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류현진이 전성기의 박찬호를 넘어서기에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