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문에 무너지는 검찰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11.27 18: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대 대선 정국 주무르던 검찰, 총장 사퇴 요구 내몰려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이 현직 검사의 성 추문과 관련해 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11월23일 사의를 표명한 뒤 동부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김광준 서울고검 부장검사의 금품 수수에 이어 현직 검사의 성 추문이 터지면서 검찰이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연이은 비리 사태에 한상대 검찰총장과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1월23일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은 전 아무개 검사(29)의 성추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같은 날 민주당 문재인 후보측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일이 발생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검찰 개혁을 당신들 손에 맡겨둘 수 없다. 한총장과 권장관은 즉각 사퇴하라”라고 촉구했다.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e-pros)’에도 ‘부끄럽다. 두더지로 살겠다. 어차피 대통령이 바뀌면 총장이나 장관도 바뀔 테니 검찰 수뇌부가 용퇴를 해야 한다’라며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검찰총장은 세 명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신승남 총장(2001년 5월~2002년 1월)은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되어 친동생 승환씨가 구속되자 취임 7개월여 만에 자진 사퇴했다. 뒤를 이은 이명재 총장(2002년 1월~2002년 11월)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이총장은 2002년 10월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 치사 사건이 일어나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임채진 총장(2007년 11월~2009년 6월)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지금 검찰은 국민과 야당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정기관들에게도 동네북이 되는 모양새이다. 이번 전검사의 성추문 사건이 불거지게 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 사건을 조사 중인 대검 감찰본부가 암행 감찰의 관례를 깨고 언론을 통해 공식 입장을 표명한 배경에 대해서 궁금증이 일고 있는 것이다. 감찰본부는 지난 11월20일 피의자 ㅇ씨(여·43)의 변호인이 서울동부지검의 지도검사에게 검사와 부적절한 성적 접촉이 있었다는 문제를 제기하자 곧바로 감찰에 착수했으며, 이날 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즉각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사정기관에서 정보 입수했기 때문?

그러나 일각에서는 검찰이 다른 사정 당국을 의식해서 사태가 더 확산되기 전에 서둘러 사건을 공표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검사와 관계를 맺은 ㅇ씨가 한 성폭력상담센터에서 상담을 했는데, 이 루트를 통해 한 사정 당국이 관련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사건을 다른 사정 당국에서 공표했을 경우, 검찰의 도덕성은 그야말로 벼랑 끝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검·경 갈등이 극심한 지금, 경찰이 이 사건을 수사할 경우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총장은 지난 11월19일 김광준 검사가 구속된 직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퇴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일부에서는 정권 말기인 데다 대선을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한총장이 사의를 표명해도 청와대가 수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BBK 수사’를 비롯해, 역대 대선마다 사정의 칼을 휘두르며 대선 정국을 주도했던 검찰의 위상이 이번 대선에서는 잇따른 악재 돌출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