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부터 케이블TV도 디지털로 보세요”
  • 최연진│한국일보 산업부 기자 ()
  • 승인 2012.12.0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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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업계, 디지털 케이블용 셋톱박스 내장형 TV 판매 예정

조만간 케이블망을 이용한 디지털 TV 방송 수신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올해 12월31일이면 지상파의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된다. 내년 1월1일이면 지상파가 모두 디지털 방송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액정표시장치(LCD)든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이든 평면 디지털 TV로 바꾸지 않으면 배불뚝이 브라운관 TV로는 더는 방송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디지털 TV를 구입한다고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TV를 구입해서 바로 볼 수 있는 지역도 있지만, 방송이 잡히지 않는 이른바 난시청 지역일 경우 디지털 방송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날로그 방송 시절에도 난시청 지역이 존재했기 때문에 같은 문제가 있었다. 산간벽지의 문제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도심에서도 높은 건물들에 가려 방송이 잡히지 않는 지역이 꽤 많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바로 케이블TV이다. 즉, 안테나로는 방송이 잘 잡히지 않는 지역에서는 유선을 통해 방송을 보내줘 지상파와 케이블TV의 각 채널을 볼 수 있게 해결해주었다.

여기에 답이 있다. 케이블TV로 디지털 방송을 보내줘서 모든 사람이 지상파의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가능한 일이다. 그러려면 케이블TV의 디지털 방송에 따로 가입해야 하고 디지털 방송을 수신하기 위한 셋톱박스를 또 설치해야 한다. 돈도 돈이지만 여러모로 귀찮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괜찮지만 저소득층은 몇만 원의 설치비와 셋톱박스 비용, 아날로그 방송보다 비싼 디지털 케이블 방송용 수신료를 내가며 디지털 방송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TV를 아예 보지 않고 살 수도 없는 일이다.

케이블TV업계가 답을 들고 나왔다. 디지털 TV에 디지털 케이블 방송용 셋톱박스를 손톱만큼 작은 반도체로 만들어 아예 넣어서 판매하는 방법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 ‘클리어쾀’이라고 한다. 쾀(QUAM)이란 쉽게 말해 신청자가 아닌 사람은 볼 수 없도록 방송 신호에 암호를 거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 암호를 해제한 것이 클리어쾀이다. 그냥 간단하게 TV에 케이블용 셋톱박스가 내장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채널 수 줄어들지만 요금은 싸질 듯

이렇게 되면 디지털 TV만 구입하면 케이블TV업체에 전화로 디지털 방송을 신청한 뒤 안테나 선만 연결하면 간단하게 지상파 및 케이블TV의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다. 따로 셋톱박스를 설치할 필요도 없고, 와서 설치해주기를 기다리며 방송을 보지 못하는 불편함도 사라진다. 당연히 셋톱박스 등 부대 비용도 들지 않는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방법을, 자칫하면 디지털 방송에서 소외될 수 있는 저소득층에게 디지털 방송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보고 있다. 즉, 저소득층만 가입할 수 있는 최저가 요금제를 만들어, 이들이 디지털 TV를 구입한 뒤 케이블TV업체에 신청하면 싸게 디지털 방송을 공급하겠다는 복안이다. 정부가 긍정적으로 바라보니, 일의 진행은 일사천리이다. 이미 케이블TV업계와 TV 제조업체들 사이에는 이야기가 끝났다. 내년부터 클리어쾀 기능을 내장한 디지털 TV를 판매하기로 협의한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이미 TV 제조업체들은 클리어쾀 기능을 내장한 디지털 TV를 팔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클리어쾀 기능을 내장하지 않은 디지털 TV는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했기 때문에 미국에 TV를 수출하는 모든 업체는 클리어쾀 기능을 내장해서 TV를 만든다. 수출용과 내수용 TV를 따로 만들면 오히려 돈이 더 드니 아예 국내 판매용도 미국 수출용과 똑같이 만들어 지금까지 팔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국내에는 이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내장되지 않았다.

따라서 삼성·LG·소니·파나소닉 등 국내에서 디지털 TV를 판매하는 모든 업체는 내년부터 클리어쾀 기능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내장해서 판매할 계획이다. 기존 디지털 TV에도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클리어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업체에서 일일이 구입자들을 찾아다니며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줄 수 없으니, 기존 디지털 TV 구입자는 제외하고 내년부터 새로 디지털 TV를 구입하는 사람들에게만 클리어쾀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클리어쾀 서비스는 저소득층을 겨냥하는 만큼 요금도 싸질 전망이다. 케이블TV협회 관계자는 “케이블TV업체들이 현재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월 3천~4천원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신 채널 숫자가 제한된다. 현재 정부와 케이블TV업계, TV 제조업체들이 기술 표준 등을 협의하면서 요금과 채널 숫자 등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중인데, 20~30개 채널을 제공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즉, 값싼 요금으로 편리하게 볼 수 있도록 제공하는 대신 채널 숫자가 많지 않은 셈이다.

방통위, 내년 상반기에 시범 서비스 방침

여기에 인터넷TV(IPTV)와 위성방송업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저소득층을 겨냥한다고 하지만 일반에게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케이블TV 업계가 낮은 가격과 편리함을 무기로 내세워 가입자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결국, 싼 가격을 앞세워 일반 가구까지 공략하면 순식간에 방송 시장은 케이블판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위성방송업체인 KT스카이라이프가 접시 안테나가 없는 위성방송인 DCS 서비스의 편리함을 앞세워 가입자를 확보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의 반발이 특히 심하다. 셋톱박스 없는 디지털 방송이 접시 안테나 없는 위성방송인 DCS와 다를 것이 뭐가 있느냐는 논리이다. DCS는 방통위에서 불법으로 규정했는데, 클리어쾀은 불법이 아니라는 방통위 해석에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KT스카이라이프는 클리어쾀을 허용한다면 접시 안테나 없는 위성방송인 DCS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케이블TV업계는 클리어쾀 서비스가 너무 저가여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제 살 깎아 먹기 식 영업은 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시장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은 케이블TV업계도 동의하고 있다. 즉, 케이블TV업계가 시장 확대를 하지는 않더라도 인터넷TV나 위성방송에서 가입자를 빼앗아가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같은 논리는 모순이다. 시장을 지키기에 충분한 서비스라면 역으로 확대하기에도 편리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년 방송 서비스는 파란이 클 전망이다. 방통위는 내년 상반기 중에 시범 서비스를 거쳐 서비스 확대 방안 등을 결정짓겠다는 방침이다. 그 전에 정부가 잡음이 일지 않도록 클리어쾀 서비스 이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일일이 가입자들을 찾아다니며 클리어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서비스가 허용되면 방송 시장에도 여러 가지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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