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검찰 조직 자체를 혁파해야”
  •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승인 2012.12.0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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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주도 개혁 아닌 시민사회 주관 개혁 절실

성추문 사건을 일으킨 서울동부지검 전 아무개 검사(가운데)가 11월29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올 것이 왔다.” 1961년 대중의 지지를 잃은 민주당 집권 세력이 정치군인들에게 권력을 찬탈당하는 순간 터져나온 한탄이다. 희극으로든 비극으로든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MB 검찰이라는 오명으로 점철된 일군의 정치 검찰 세력이 새로운 숙주를 찾아낸 또 다른 정치 검찰 세력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

사실 한상대 검찰총장의 사퇴는 너무도 당연하다. 뇌물 검사, 성추문 검사의 문제뿐 아니라 BBK 사건에서부터 내곡동 사저 수사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와 MB 검찰의 전 시기에 걸쳐 검찰총장이 책임져야 할 순간이 잠시라도 멈추었던 적이 없었다. 한상대 총장의 경우에는 좀 더 노골적이고 조악하게 검찰 권력을 오·남용했을 뿐이었다.

우리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변질될 여지를 마련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다. 광복 이후 검찰과 경찰의 영역 다툼은 심각했으나, 군사 정권이 영장 신청권을 비롯한 수사권을 검찰의 수중에 독점시키면서 검찰의 일방적 승리는 완결된다. 박정희 정권은 이런 검찰권을 철저하게 자신의 억압적인 통치 권력을 법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데 동원했다. 물론 검찰이 새로운 권력 주체로 등장한 것은 민주화에 따라 공안 기구가 약화되면서 그를 대체하는 권력 집행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럼에도 형사사법권을 정치권력과 결합함으로써 검찰이 정치 검찰로 변질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한 원죄는 박정희 정권에 있다. 자신의 권력을 관료 체제로 포장하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의 잔재가 민주화의 시대에까지 이어져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형사 사법 권력을 창출한 것이다.

김광준 부장검사의 수억 원대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 중인 김수창 특임검사. © 시사저널 최준필
한상대 총장 사퇴만으로 해결 어려워

그리고 바로 이 과정에서, 우리 검찰은 태생적으로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정치권력에 종속되어서만, 그리고 그에 기생해서만 존속할 수 있도록 길들여진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 등 형사사법권을 실질적으로 독점한다. 그뿐 아니라,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통해 한편으로는 특권적 선민 의식이라는 점에서는 가장 동질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승진을 향한 가장 경쟁적인 조직 문화를 구성한다. 나아가 검사동일체라는 왜곡된 조직 원리를 주입하며 철저한 상명하복의 체제를 구축하되, 준사법기관이라는 또 다른 왜곡을 통해 외부의 어떠한 견제와 감시도 거부한다. 제도적으로 그 어떠한 국가 기관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도 독립적인 권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무소불위의 것으로 종결짓는 것은 정치권력이다. 검찰의 권력은 최고 권부와 함께 작동하지만 동시에 그 권부의 승인이 유효하는 동안에 한해 최고일 수 있다.

최근 일어난 사태는 이것을 대변한다. 뇌물, 성추문, 대국민 사기극 등 권력 기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리와 비행의 종합 선물 세트 격인 상황에서 법무부장관-검찰총장-중수부장에 이르는 일련의 지휘 라인의 혼란과 혼선의 과정 어디에도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사건이 검찰총장의 옷을 벗길 만큼 중차대한 것임에도 정작 검찰총장은 미봉책 수준의 검찰 개혁안 몇 개로 자신의 직을 지켜내고자 했다.

검찰 고위 간부들은 또 그들 나름으로 그 개혁안에 포함되었던 중수부 폐지 안에 자기 세력과 지위에 대한 위협을 느끼며 이에 반발해 항명 사태로 치달아 검난(檢亂)의 상태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임기 만료로 저물어가는 권력으로부터 신생 권력으로 이동해가는 검찰의 정치 타산이 엿보인다. 마치 지난 17대 대선 때 BBK 사건의 사례가 이 MB 검찰의 관행을 통해 증폭되어 나타나는 듯한 모습이다.

한상대 총장의 사퇴만으로 현재의 사태가 미봉조차 되지 않음은 이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양상은 권력형 비위 사실이며, 그 원인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만들어내는 검찰 구조에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처리 과정은 철저하게 책임 추궁과 검찰 개혁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빗나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검찰 내부적인 권력 투쟁의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외부로부터 새로운 주인-정치권력-을 찾아 나선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존재한다. 문제를 규명하고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문제의 원인이었던 정치 검찰의 구태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상대 총장의 사퇴는 패배자가 져야 할 속죄양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검찰 자체적으로 개혁할 수 있을지 회의적

무릇 개혁에는 제도 개혁과 인적 청산이 필연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검찰 개혁만큼은 제도의 문제로만 다루어져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인적 청산의 문제 또한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잘 알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중수부를 폐지한다고 해서 검찰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중수부’라고 하는 상징적 기구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검찰 내부의 정치 검찰 조직 자체를 혁파하는 것이 선행될 때에 비로소 검찰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실제 검찰의 문제는 그 내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온다. 뇌물 검사를 추궁하기는커녕 기자를 겁박할 것을 조언한 중수부장의 행위에서부터 성추문 검사를 제대로 훈육하지도 못하는 지도검사 제도나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하는 감찰 체제의 무능함, 검찰 개혁을 향한 국민적 요구조차도 간과한 채 총장에게 개혁안 발표를 취소하라고 종용하는 일부 평검사 회의의 맹목성 등은 그 작은 예들에 불과하다. 무소불위의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어떠한 비판과 지적에도 귀 닫고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내팽개쳐버리는 검찰의 경직된 한계는 검찰총장 한 사람의 거취를 넘어 전체 검찰의 책무로 부과된다.

문제는 현재의 검찰에게는 이런 책무를 감당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외부적 충격을 통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대변한다. 검찰이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개혁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주도하며 주관하는 검찰 개혁의 작업이 절실한 것이다. 대선 등 권력의 변환기에 정치 검찰이 새로운 정치권력을 숙주로 삼아 연명을 모색하기 전에 시민사회가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타격을 통해 검찰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작업, 그것이 바로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궁극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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