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김연아 풀었다 ‘스타 갈증’
  • 조영준│엑스포츠 기자 ()
  • 승인 2012.12.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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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메이커’처럼 나타나 피겨계 재평정

ⓒ 연합 뉴스
점프와 스핀 그리고 스파이럴 등 다양한 기술이 어우러진 종목이 피겨스케이팅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는 이와 심판의 시선을 사로잡는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종합예술 스포츠’의 개념을 지닌 이 종목은 기술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스케이터를 원하고 있다.

신채점제 시대 이후 트리플 악셀 같은 ‘한 방’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김연아(22·고려대)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시대에 가장 부합한 스케이터이다. 김연아가 떠난 뒤 여자 싱글 무대는 하향 조정되었다. 이른바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어졌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마의 점수대’인 2백점을 넘는 여자 싱글 스케이터도 사라졌다. 정교한 기술과 독창적인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스케이터도 보기 힘들어졌다. 여자 싱글 흥행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김연아는 ‘레인메이커’처럼 은반 위에 나타났다.

생애 네 번째로 200점 뛰어넘다

뱀파이어에 매혹된 여인은 황홀한 표정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달콤한 로맨스는 섬광처럼 지나갔고 고통의 시간이 다가왔다. 연기에 몰입한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가뿐하게 성공시켰고, 트리플 플립도 매끄럽게 소화했다. 

72.27점. 올 시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최고 점수를 수립했다.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역사상 최고 점수인 34.85점을 기록한 김연아는 그렇게 복귀식을 치렀다.

다음 날 그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민중으로 돌아왔다. <레미제라블>의 웅장한 선율에 몸을 내던졌다. 중·후반부에 배치된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 점프에서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밸런스는 완벽했고, 올 시즌 최고의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쳤다. 쇼트프로그램과 합산한 최종 합계 점수는 201.61점이었다. 이보다 완벽한 복귀 무대는 없었다.

 ‘여왕의 귀환’에 일본 피겨계 긴장

2012~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는 애쉴리 와그너(22·미국)이다.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프랑스 에릭 봉파르에서 정상을 차지한 그는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190점을 돌파했다.

그러나 김연아의 옛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22·일본)가 부활의 기지개를 켰다.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NRW트로피가 열릴 때 러시아 소치에서는 그랑프리 파이널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사다는 와그너를 제치고 ‘그랑프리 퀸’에 등극했다. 이 대회에서 그가 받은 점수는 196.80점이었다. 2백점에 근접한 높은 수치였다.

아사다의 올 시즌 최고 점수는 이틀을 넘지 못했다. 아사다가 12월8일(이하 한국 시각) 시즌 최고 점수를 수립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이틀 뒤 반전이 일어났다. 김연아가 도르트문트에서 아사다의 기록을 넘어섰다. 자신이 세운 기록이 김연아로 인해 늘 묻히는 ‘악연’이 이번에도 재현되었다.

일본 언론은 아사다의 우승에 열광했다. 그리고 동시에 긴장감도 나타냈다. 스포츠 호치는 ‘아사다가 세운 쇼트프로그램 시즌 최고 점수를 김연아가 웃돌았다’고 보도했다.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을 버린 상태였지만 김연아는 변한 것이 없었다. 3+3 콤비네이션 점프는 물론 독창적인 표현력을 지닌 ‘피겨 여제’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밴쿠버 이후의 피겨 역사, 김연아에 달렸다

아사다는 물론 와그너도 트리플 러츠와 플립이 들어간 3+3 점프를 구사하지 못한다. 두 선수는 모두 예술 점수에서 큰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러나 김연아가 NRW트로피에서 기록한 점수(쇼트프로그램 : 34.85점, 프리스케이팅 : 69.52점)에 미치지 못한다.

아사다와 와그너는 김연아가 없는 빙판을 호령했다. 하지만 기술은 물론 예술적인 부분에서 김연아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김연아의 무서움은 NRW트로피의 기량이 ‘완성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핀을 가다듬고 체력을 끌어올리면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보여준 최절정의 연기가 가능하다.

스타 기근에 시달렸던 여자 싱글 무대는 김연아의 등장에 탄성을 내질렀다. 미국의 시카고트리뷴은 ‘김연아의 연기는 그녀를 그리워했던 피겨 팬들에게 압도적인 경기력을 펼쳤던 예전의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라며 ‘스타 부재에 시달리는 피겨계에 김연아가 컴백했다는 사실에 대한 심판들의 감사 표시였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연아가 말하는 자신의 복귀 무대  

김연아는 이번 대회를 통해 드러난 자신의 문제점을 ‘스핀’이라고 집어냈다. 

“올 시즌 복귀하면서 스핀 룰이 많이 신경 쓰였고 많이 어려워졌다. 이 부분은 경기에서도 완벽하게 할 수 없었다. 점프에는 큰 무리가 없었는데 스핀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원래 스핀에서 레벨4를 받는 것이 목표였는데 3~1 정도가 나왔다. 이번 경기를 발판으로 보완해야 할 점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김연아는 이번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수행한 세 가지 스핀에서 모두 레벨3을 받았다. 또한 프리스케이팅에서는 레벨4(플라잉 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와 레벨3(레이백 스핀) 그리고 레벨1(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을 기록했다.

김연아의 올 시즌 메인 코치인 신혜숙 코치는 “스핀에서 에지가 흔들리며 회전 수 부족 판정이 나온 것 같다. 스핀은 발을 바꾸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회전 수 부족 판정으로 이어진다”라며 스핀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준비할 때 김연아는 스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스스로 “유연성이 다른 선수들처럼 좋지 못하다”라고 말한 그는 스핀과 스파이럴에 힘을 기울이면서 ‘무결점’ 스케이터로 거듭났다.

김연아가 스핀을 못하는 스케이터는 아니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생각할 때 스핀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가 새롭게 규정된 스핀 룰에 적응만 한다면 다시 ‘무결점’의 여왕 자리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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