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의 1년, ‘김정은 군부’ 구축
  •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2.12.1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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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현영철·김격식·최부일·현철해 등이 핵심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11월 보위기관창립절을 맞아 국가안전보위부를 방문해 보위전사들을 축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지난 한 해 동안 북한군 수뇌부의 핵심 고위직 책임자가 모두 바뀔 정도로 큰 지각변동이 발생했다. 지난 4월 장기간 공석 중이던 총정치국장직에 최룡해가 임명되었다. 실질적인 군부의 제1인자 자리에 군부 엘리트가 아닌 당 엘리트를 앉힌 파격적 조치였다. 군부의 제3인자 자리인 인민무력부장직에는 경질된 김영춘 차수의 후임자로 상대적으로 젊은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임명되었다.

군부의 제4인자 자리로 간주되어온 총참모부 작전국장에는 경질된 김명국의 후임자로 최부일 9군단장이 임명되었다. 이처럼 4월에만도 북한군 수뇌부의 핵심적인 4대 파워엘리트 직책(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총참모부 작전국장) 중 3개 직책의 책임자가 새로 임명되거나 바뀐 셈이다.

뿐만 아니라 현철해 국방위원회 정치부장 겸 총무국장이 차수로 승진함과 동시에 신설된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겸 후방총국장직에 임명됨으로써 새로운 실세로 부상하게 되었다.

지난 7월15일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리영호 총참모장이 전격적으로 해임됨으로써, 결국 올 한 해에 북한 군부의 4대 요직이 전부 바뀌는 전무후무한 변동이 발생했다. 리영호의 후임자로는 현영철 8군단장이 차수로 승진하면서 총참모장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지난 10월10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군 수뇌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때 현영철이 대장 계급으로 다시 강등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 다른 군 지휘관들도 한 계급 또는 두 계급 강등된 사실이 사진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 국내 일각에서는 “김정은 제1비서가 군부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 군부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라는 추측도 나왔으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올해 북한의 군부 엘리트 변동은 군대에 대한 당과 총정치국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이같은 변화는 김정은 체제에 좀 더 큰 안정성을 보장해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 김정은의 후계자 시절 그의 군부 장악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민군 총정치국이, 이제는 최고 지도자로 등극한 김정은이 좀 더 확고하게 군부 엘리트를 장악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고 있다. 지금 북한 군부 파워엘리트의 변화 양상 가운데 최대 특징으로 군사 지휘관의 위상은 약화되고 있는 반면, 정치위원들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생전인 2010년 10월 김정일-정은 부자. ⓒ 연합뉴스
김정각·김원홍이 ‘김정은 후계 구도’ 완성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한 사실은 지난 2009년 1월, 인민무력부나 총참모부가 아니라 총정치국을 통해 곧 대좌급에까지 전달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과거 총정치국이 김정일의 군부 장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후계자’ 김정은의 군부 장악에서도 핵심적인 수단으로 기능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9년 2월경부터 북한군은 ‘김정일의 군대’에서 ‘김정일·김정은의 군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 김정은의 후견인인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원홍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리영호 총참모장 그리고 김정일의 오랜 측근인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명국 총참모부 작전국장 등이 북한군 수뇌부를 이끌며 김정은 시대를 준비하는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2007년 3월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 임명된 김정각은 당시 병환으로 업무를 보지 못하는 조명록 총정치국장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김정은의 후계 수업을 지원하게 되었다. 김정각은 인민무력부 부부장 시절 군부 내 체육 부문을 담당하면서 농구를 좋아하는 김정은이 관저에서 군부 산하 농구팀과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김정은과 친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9년부터 김정은의 군부 엘리트 장악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김정각은 2009년 4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으로 선출되어 그 위상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그는 2010년 9월 개최된 당대표자회에서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직에 선출되었다.

2009년 2월 김원홍 보위사령관도 군 총정치국 내에서 제1부국장 다음으로 중요한 조직부국장에 임명되어 김정은의 군부 엘리트 장악을 지원하게 되었다. 김원홍은 같은 해 4월14일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2010년 9월28일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는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에도 임명되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는 그의 이름이 김경옥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군사 담당) 바로 다음에 호명되었다. 이는 김원홍이 김경옥의 지도하에 총정치국에서 군부 엘리트들의 조직과 인사 문제를 담당하고 있었던 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김원홍은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 바로 오른편에 앉아 최측근 인사임을 과시했다.

이처럼 김정은은 2009년 상반기부터 총정치국의 김정각 제1부국장과 김원홍 조직부국장 등의 지원을 배경으로 북한군 간부 장악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이 선군정치의 핵심인 군 간부들에 대한 장악·지도 역할을 김정은에게 맡긴 것이다. 이미 이 시기부터 김정일의 군 관련 현지 지도는 김정은이 사전에 조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군에서는 이미 2009년 5월 말께부터 김정은에 대한 ‘위대성’ 선전이 시작되었는데, 이같은 작업을 주도한 곳 또한 총정치국이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그의 오랜 측근들인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김명국 총참모부 작전국장이 새로 ‘수령’의 자리에 오른 김정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정은으로서는 이들을 2선으로 퇴진시키고 그들의 자리에 자신의 측근들을 앉히는 방안을 선택했다. 그 결과 2012년 4월 군부 핵심 요직의 책임자 대부분이 바뀌게 되었다.

2010년 대장 칭호 받은 인물들 급부상

2012년 북한의 군부 엘리트 변동에서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 직전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은 인물 대다수가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당시 대장 칭호를 받은 인물은 김정은 자신과 고모인 김경희를 비롯해 최룡해, 현영철, 최부일, 김경옥 등이었다. 이 중 김경옥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지위가 올해 급상승했다. 이같은 사실은 이미 2010년에 김정일 사후 김정은을 보좌할 인물들에게 중요한 지위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인사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김경희는 2012년 4월 개최된 당대표자회에서 당 엘리트로서는 김정은 다음 가는 ‘조직비서’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당대표자회 직전에 최룡해 비서는 군부의 제1인자 자리인 총정치국장에, 최부일 9군단장은 총참모부 작전국장에 각각 임명되었다. 현영철은 올해 7월 리영호의 후임자로 총참모장 및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군부의 제2인자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총정치국에서 김정은의 군부 엘리트 장악을 보좌해온 김정각과 김원홍도 제4차 당대표자회를 전후해 그 지위와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김정각은 2월15일 최고사령관 명령에 의해 차수 계급으로 승진함으로써 마침내 리영호 군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같은 차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김정은의 군부 장악에 기여한 공로로 4월 제4차 당대표자회 개최 전 인민무력부장직을 맡게 되었다.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각 또한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진했고, 정치국 위원들 중 김경희 바로 다음인 두 번째로 호명됨으로써 핵심 실세 중의 하나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과거 인민무력부 부부장 시절 주로 외교 및 체육을 담당했고, ‘신사답다’는 평을 듣는 전형적인 외교형 인물로 알려진 김정각은 리더십에 한계를 보여 지난 11월 초 인민무력부장직에서 경질된 후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직에 임명됨으로써 ‘명예로운 은퇴’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김정각의 후임자로는 김격식 대장이 임명되었다. 김격식은 2009년 2월 총참모장직에서 경질되어 4군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김정은의 신임을 받아 다시 인민무력부장이라는 핵심 직책에 발탁된 것이다. 김정일이 2010년에 작성한 유서에서 김정은을 보좌할 인물로 김격식이 거론된 점에 비추어볼 때 김격식의 부상은 어느 정도 예정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으로서 군부 엘리트에 대한 김정은의 장악과 통제, 감시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김원홍은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 개최 직전 마침내 국가안전보위부장이라는 핵심 요직에 임명되었다. 국가안전보위부장은 파워엘리트들을 비밀리에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직책이기 때문에 김정일이 생전에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겨두다가 2009년 4월께에 김정은에게 직접 맡길 정도로 정권의 핵심적인 요직이다.

로켓 발사 성공으로 김정은 체제 강화

김정은이 이 직책을 김원홍에게 맡겼다는 것은 김원홍에 대한 그의 신임이 두터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원홍은 현철해 전 국방위원회 정치부장 겸 총무국장과 마찬가지로 제4차 당대표자회 전까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직도 가지고 있지 못했으나 국가안전보위부장직에 임명되면서 일약 정치국 위원으로 급부상했다. 

이처럼 군부에 대한 김정은과 노동당 그리고 총정치국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군대에서 군사 지휘관들의 위상은 약화되고 정치 간부들의 위상은 강화되는 상반된 현상이 나타났다. 군 엘리트가 아닌 당 엘리트 최룡해가 군부의 제1인자 직책을 맡은 것에 대해서도 군사 지휘관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불만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과 10월 북한군 병사들의 잇단 귀순은 현영철 총참모장을 비롯한 군사 지휘관들이 군 기강 해이에 대한 문책으로 계급이 강등되는 사태까지 불러왔다. 이처럼 군사 지휘관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은 군사 지휘관들이 이전 지위를 회복하고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더욱 맹세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마침내 미국의 백악관까지 사정권 안에 넣을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 능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된 사실은 북한군 병사들의 잇단 귀순으로 인한 군부의 침체된 분위기를 일소하고 김정은 체제의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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