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해 도덕·양심을 내던지다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2.12.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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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선 긴장감 가득한 <마진 콜>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뒤흔든 지 4년. 세계 경제는 여전히 불황의 터널 속에 갇혀 있다. 정리해고는 일상사가 되었고, 공들였던 금융 상품은 휴지 조각이 되기 십상이다. 세계 국가들은 금융에 목맨 오늘의 자본주의와 이를 움직이는 첨병들의 도덕적 해이를 반성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월스트리트는 결국 점령당하지 않았고, 오늘도 그래프 위의 점 하나에 삶의 희비가 엇갈린다.

영화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이하 <마진 콜>)은 흔히 ‘리먼 사태’로 대변되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하루 전, 대형 투자사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인원 감축으로 퇴직 통보를 받은 에릭(스탠리 투치)은 부하 직원 피터(재커리 퀸토)에게 곧 닥칠 위기 상황을 정리한 USB를 건네주고 회사를 떠난다. 학살에 가까운 정리해고 소용돌이가 지나간 저녁, 피터는 에릭이 준 자료를 분석하다가 자신들이 관리하던 파생상품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회사의 존폐가 달린 대규모 부실. 긴급회의가 소집되고 해결책이 논의된다. 물론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어차피 위기는 시작된 지 오래, 파산이냐 버티기냐의 갈림길만이 남았을 뿐이다.

<마진 콜>은 이 선택의 순간에 대형 투자사 임원들이 밤새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현 단계의 세계적 금융 위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번져갔는지를 되짚는다. 영화는 생존을 위해 도덕과 양심을 내던지는 이들의 단호한, 혹은 갈등 어린 얼굴을 세밀하게 들여다본 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파국의 아침을 연다. 그렇게 이야기는 하나로 수렴된다. 결국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으니, 이 자본 만능 사회에서 발버둥치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살인도 강도도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 <마진 콜>이 그 어떤 스릴러보다 관객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케빈 스페이시, 폴 베터니, 재커리 퀸토, 제레미 아이언스, 사이먼 베이커, 데미 무어, 스탠리 투치 등 이름만 늘어놓아도 즐거운 배우들이 펼쳐 보이는 앙상블은 압도적이며, 영화는 이들이 입고 있는 수트만큼이나 날 선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데뷔작이라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J.C 챈더의 각본과 연출은 벌써부터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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