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만 키운다고 투자은행 되는 건 아니다”
  • 엄민우 (mw@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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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은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한국 대표

2012년 세계 경제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안’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들이 각 대륙에 한 개씩 심어져 있었고, 그 위에서 위태롭게 돈이 오갔다. 폭탄이 투하된 곳은 G2(미국·중국)와 유럽, 폭발 영향 반경은 전 세계이다. 미국 재정 절벽 문제,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 유럽 재정 위기 리스크는 2013년에도 여전히 ‘진행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안성은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한국 대표를 만났다. 그는 도이치은행, 살러먼스미스바니증권을 거쳐 2004년 메릴린치 한국지점 IB그룹 수장으로 입사해 2008년부터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미국 재정 절벽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개인적 견해이지만, 완전한 타결은 힘들지 몰라도 부분적인 타결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막판에 가서 타결이 안 되면 그 파급 효과가 너무 크다. 의원들이 휴가에서 돌아와 보통 48시간 전에 등원 관련 통보를 받는데, 아직도 일부 의원은 통보를 못 받았다며 나중에 등원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연말이 다 되어서 등원할 거라는 이야기인데, 이것을 역설적으로 보면 속마음은 다 타결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게 개인적인 추측이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리스크도 우려되는 경제 이슈 중 하나이다.

경착륙은 피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 같다. 경제학자들이 중국 리스크보다는 유럽 재정 위기 리스크를 더 많이 고려하는 것을 보면 중국 쪽 염려는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2013년도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가져가는 것이 좋을까?

사실은 월가에서도 ‘채권의 시대는 갔다’ 혹은 ‘주식이 죽었다’라는 논쟁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주식이 채권을 넘어서는 타이밍이 왔다고 많은 분석가가 이야기한다. 전문가들이 통상적인 지표들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주식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적 펀드들이 포트폴리오를 할 때 채권보다 주식 쪽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동성이 많이 풀렸기 때문에 금리가 더는 내려가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금리가 안 내려가면 채권 가격도 더는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치고 오르는 주식시장의 모멘텀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려면 기업의 글로벌 성과와 수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가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대기업들의 수익이 계속 나와 주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은행들의 투자은행화 속도가 더디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말하기 조심스럽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소견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제조업체는 굉장히 빨리 컸다. 하지만 금융은 인내심이 필요한 분야이다. 어느 정도 기간과 평판이 다져져야 확 커지는 특성이 있다. 어느 순간에 특정 금융사가 딱 나타나서 시장을 지배하고 이런 건 힘들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탄생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꾸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투자은행으로 키우기에는 덩치가 작아서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은 내실이 중요하다. 사람의 경험이나 지식에서 나오는 산업이기 때문에 덩치를 키운다고 반드시 경쟁력을 키운다고는 할 수 없다. 덩치 큰 것이 좋다는 말은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수백 년 금융 역사를 보면 덩치와 경쟁력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국 금융 시장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크기는 작지만 포트폴리오가 다양하다. 선진국 시장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 선진국에서 판매되는 금융 상품들이 적용 가능한 시장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제조업 기반이 아시아 중 가장 탄탄하기 때문이다. 인도나 중국 시장은, 규모는 크지만 판매되는 상품들이 한국보다 다양하지 않다.

공대(서울대 산업공학과) 출신으로 투자은행 대표 자리까지 오른 약력이 흥미롭다.

공대 동기들이 ‘넌 차라리 공대에서 공부 열심히 안 한 게 잘한 것이다’라고 하더라.(웃음) 공대를 나오면 경영대학원(MBA) 점수를 따는 데 수월한 면이 있다. 수리적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계에서 파생상품을 설계하거나 구조화하는 사람 가운데는 공대 출신이 많다. 다만 업계에 선배나 동창이 없어 힘들었던 부분은 있었던 것 같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직원들이 장애인 복지시설을 방문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제공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사회적 공헌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난 2001년부터 선덕원, 노아의 집 등 고아나 장애우들이 있는 곳을 대상으로 공헌 활동을 해왔다. 올해부터는 미혼모들이 있는 동방복지재단도 대상 기관으로 추가했다. 기부를 통해 사회 적응을 돕고, 1년에 두 번씩 찾아가 봉사활동을 한다. 지난해에는 우리 아이들도 데리고 갔는데 좋아하더라. 주말에 노아의 집 아이들을 서울로 초대해 가족들과 저녁 식사도 하고 공연도 볼 계획이다.

직접 참여해보았다면 보람된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는 금융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고 일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사회복지와는 연결 고리가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직접 가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보내다 보면 진정으로 보람되고 느껴지는 것이 많다. 선덕원은 고아원이고, 노아의 집은 장애우들이 있는 곳이다. 선덕원 친구들이 노아의 집 친구들을 보고 더 어려운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하더라. 뱅커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투자은행이 이렇게 사회 공헌에 애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미국에서도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금융계는 물론이고 전 기업을 통틀어서도 사회적 기업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이다. 한 대학 교수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사회적 기업 활동이 유명한 케이스라고 하더라. 복지뿐 아니라 문화 및 예술 쪽으로도 사회에 기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에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지는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도 그중 하나이다. 보통 작품을 대여해줄 때 대여료를 받는데, 무료로 제공했다. 아직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미국 인상주의 작품을 대규모로 알리는 색다른 기획이 될 것 같다.

2013년 사회 공헌 계획은?

사회 공헌 활동은 규모와 상관없이 지속성이 중요하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적지만 의미 있는 공헌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개인적 소망이지만 공헌 규모도 가급적 늘렸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런 활동을 하는 몇 안 되는 외국 금융기관으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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