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 1천조원 뇌관을 제거하라”
  • 이철현 (lee@sisapress.com)
  • 승인 2013.01.0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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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시장 침체 계속되면 복합 불황 가능성 한 발 헛디디면 크레바스에 떨어진다

계사년 한국 경제는 트라이다운(Tri-down)에 직면했다. 한 국가의 총체적 경제활동을 구성하는 소비, 투자, 수출이 하나같이 부진하다. 실질 성장률은 잠재 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업 실적이나 산업 활력, 가계 소득, 재정건전성 같은 지표로 가늠할 수 있는 경제 체질도 눈에 띄게 부실해지고 있다. 유럽 재정 위기, 중국 경기 둔화, 미국 부채 한도 상한 협상 같은 외부 충격을 견딜 면역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경제는 살얼음판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형국이다. 그 살얼음판 아래에는 가계 부채 1천조원이라는 함정이 위태롭게 도사리고 있다.

한국 경제는 자칫 한 발짝 헛디디면 가계 부채라는 크레바스(빙하 표면에 쪼개진 틈)에 빠질 수 있다. 가계 부채는 한국 경제의 토대까지 붕괴시킬 수 있는 대형 시한폭탄이다. 조심스럽게 뇌관을 제거하지 못하면 부동산값 폭락, 금융 부실, 경기 침체 같은 폭탄이 연쇄적으로 터져 한국 경제는 일본식 장기 복합 불황에 빠질 수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일자리 창출, 부동산 경기 활성화와 함께 가계 부채 해결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가계 부채는 별 다른 상황 변화가 없다면 올해 1천조원(한국은행 가계 신용 기준)을 넘어설 것이 확실하다. 가구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의 비율은 주요 선진국 중 최고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다. 가처분 소득 중 빚 갚는 데 쓰는 금액이 지나치게 많다 보니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생계형, 신용, 제2 금융권 대출이 늘어나면서 가계 부채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까지는 원금 상환을 유예하고 은행 건전성이 유지되었다. 또 경기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빨리 회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가계 부채의 뇌관은 터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초까지 국내외 경제 연구기관이 내놓는 국내 경기 전망은 어둡기 그지없다. 한국은행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 같은 국내 경제연구기관부터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해외 경제기구까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3% 이하로 낮추고 있다. 유럽, 중국, 미국 같은 수출 시장의 경기 회복이 더딘데다 내수 시장 활성화의 조건인 가계 소득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주택 시장이 불안하다. 경제 여건이 눈에 띄게 나빠지면서 가계 부채발 경제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수도권 집값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 지수가 2008년 금융 위기 직전 최고점에서 7%가량 빠졌다. 대형 아파트는 17% 넘게 떨어졌다. 수요와 공급 사이 불균형이 크다 보니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부동산 매매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갖가지 규제를 풀고 있으나 중소형 주택 위주로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효과밖에 거두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집값 하락이 전국으로 확산되면 부동산 시장은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전세금이 오르면 집값도 오르던 것이, 지금은 그마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전세금은 치솟고 있으나 집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회의실에서 열린 소상공인 단체 연합회 임원단과의 만남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계 부채,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

수도권 집값 하락은 가계 부채와 맞물려 움직인다. 부채 디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가 빚을 갚기 위해 담보로 맡긴 집을 팔다 보니 물가를 끌어내리고 경기 침체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부채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경기는 장기 침체를 피하기 어렵다. 집값이 떨어지면 소비부터 위축된다. ‘역자산 효과(자산 가치가 줄면 가난해졌다고 느끼게 되어 예정된 소비를 줄이는 것)’ 탓이다. 이 와중에 하룻밤 자고 나면 쓰러지는 건설업체가 속출하는 주택 건설업종은 경기 침체를 부추기고 있다.

그동안 경쟁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늘린 금융기관은 한꺼번에 어려워질 수 있다. 박명수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반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 데다가 집값 하락과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가계 소비 여력이 크게 약해지고 있다. 민간 소비가 가계 부채발 금융 시장 불안으로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지적했다.

주택 시장이 경착륙하면 복합 불황이 엄습할 수 있다. 경제 체질이 나빠진 와중에 복합 불황까지 겹치면 국가 경제 위기로 파급된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새 정부가 가계 부채 연착륙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새 정부는 대출 총량을 규제하거나 금리를 높여 대출을 줄이는 조치보다 가계가 부채를 지탱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부채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가계 소득이 늘어나야 한다. 가계 부채라는 난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계 소득을 늘리는 것이 상책이다. 가계 소득이 늘어나려면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 일자리 창출은 가계 부채 해결 방안이기도 한 셈이다.

국내 실업률은 2.8%(통계청)에 불과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수치에는 허수가 있다.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이는 실업자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 졸업하지 않고 대학 도서관에서 취업 공부에 몰두하는 대학교 5, 6학년생이 즐비하다. 이로 인해 실업률만으로 노동 시장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고용률을 보아야 한다. 고용률은 인구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한국의 고용률은 60% 미만이다. 선진국보다 10%포인트가량 낮다. 국내 일자리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이다. 고용률이 높아지려면 인구 증가보다 일자리 수가 많이 늘어나야 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45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인구는 50만명가량이 증가했다. 고용률이 오르기는커녕 떨어졌다. 그나마 올해는 새 일자리가 30만개에 불과할 전망이다.

일자리와 고용 조건 불만 쏟아질 듯 

이 탓에 올해에는 노사, 청년, 여성, 고령층, 자영업자, 베이비부머까지 각계각층이 일자리 부족과 고용 조건 악화에 대한 불만을 쏟아낼 것이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사오정(45세 정년), 워킹푸어, 캥거루족(부모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20~30대), 니트족(취업에 뜻이 없고 임시직으로 연명하는 집단)이 창궐할 것이다. 일자리 부족과 고용 조건 악화로 인한 사회 갈등이 증폭되면 한국 경제는 구조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앞으로 IT(정보기술)나 중화학 업종 같은 제조업에서는 일자리가 늘어나리라 기대하기가 어렵다. 일자리는 종소기업과 서비스업에서 늘려야 한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서비스업 선진화는 더는 미루지 말아야 한다. 중소기업을 키워 고용을 늘리면 소비 증대로 이어지고 내수 기반을 확대해 대외 경제에 취약한 구조도 개선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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