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재앙을 몰고 왔네”
  • 권대우 발행인 ()
  • 승인 2013.01.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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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펑. 생소한 단어다. 찬란했던 앙코르와트 유적을 괴물처럼 뒤덮고 있는 나무 이름(뱅골보리수)이다. 문어처럼 달라붙어 건축물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벽과 지붕을 타고 내려와 담과 문을 휘감고 있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한때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무성하게 잎을 피웠을 때는 그저 자연의 조화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스펑은 소중한 유적을 훼손시키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스펑의 무게로 인해 유적(돌)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스펑 나무의 성장력은 매우 뛰어나고, 생명력이 끈질기다. 그런데 이젠 나무를 없앨 수도 없게 되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방치했기 때문에 뽑아낼 수 없고,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지금 스펑 나무는 성장 억제제를 맞으며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더는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밀림처럼 우거져버린 스펑 나무를 제거하기엔 이미 때가 늦어버린 탓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의도 선량들. 입만 열면 ‘국민’이다. 말로만 판단하면 애국자는 의원회관에 다 모여 있는 듯하다. 마치 스펑 나무의 무성함을 자연과의 조화로 생각했듯이 의원들의 겉모습만보며 국민들은 따르고 존경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환상이었다. 

그래서 떠올려지는 것이 스펑 나무다. 앙코르와트 유적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소중한 문화유산을 파괴하듯 빛나는 금배지, 말의 성찬 뒤에 숨은 잘못된 습관과 관행이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해봤다. 결과는 짐작했던 대로였다. 국민들은 정치권을 정말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의원들은 마치 자신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선량이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실망시켰다.

국회의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싸움꾼, 부정부패, 비리, 밥그릇 챙기기란다. 그러니 의원 수를 줄이고 세비도 깎아야 한다는 응답을 했다. 그런 판국에 이들은 연초에 폐기하기로 했던 의원연금법을 슬그머니 존속시켰다.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약속했던 대로 연금법을 폐지하라는 얘기이다.

“스펑! 자네가 재앙을 몰고 왔네.” 소중한 앙코르와트 문화유산 위기를 보며 관광객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훗날 우리 국민들은 여의도 선량들에게 무슨 말을 건넬까?

“의원님들! 자네들이 이 나라에 재앙을 몰고 왔네.”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여론조사가 잘못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국민만 바라보고 산다는 그들의 말을 믿고 싶다. 그 말이 거짓으로 판명될 때 대한민국의 혼을 갉아먹는 스펑 나무 신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성하게 잎을 피웠을 때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줬지만, 지금은 성장억제제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스펑 나무. 구태와 교만, 졸속이 국회의사당에 만연될 때 금배지의 화려함은 추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스펑이 성장억제제를 맞으며 연명하는 것처럼.

이 시간에도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서민들을 떠올려보시라. 누가 낸 세금으로 금배지가 빛나고 있는지 생각해보시라. 국민의 심판을 두려워할 때 역사 앞에 바로 설 수 있다. 양심의 불도 다시 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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