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에 군림하는 ‘의원나리’
  • 안성모·이승욱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1.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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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연금제·면책특권·과다한 세비·영리 업무 겸직·국회 폭력·공공시설 VIP 대우·3백명 의원 수

‘칠거지악(七去之惡)’은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는 일곱 가지 나쁜 행동을 일컬었다. 과거 조선 시대 남존여비(男尊女卑) 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요즘과 같은 남녀평등 시대에서는 꿈도 꾸기 힘든 말이다. 하지만 이를 지금의 정치권에 견주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회의원들을 내쫓을 수 있는 이유로 꼽을 만한 일곱 가지 나쁜 관행 및 제도가 지금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의원연금제’ ‘면책특권’ ‘3백명에 이르는 의원 수’ ‘과다한 세비 지급’ ‘영리 업무 겸직’ ‘국회 내 폭력 행위’, ‘공공시설에서의 VIP 특별 대우’ 등이 그것이다. 그들은 이런 특권을 빌미 삼아 ‘쪽지 예산’ 남발과 ‘밀실 담합’ ‘외유성 해외 출장’ 등 온갖 추태를 저지르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국회의원직에 따르는 권력과 특권을 하나씩 포기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민주당에서 핵심 당직을 맡았던 한 전직 의원이 ‘금배지’를 뗀 이후 최근 기자에게 털어놓은 소회이다. 일상생활에서부터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의전을 받지 않는 상황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평소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일쑤이다. 이럴 때면 허탈감과 공허한 마음마저 든다고 한다. 국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살펴보면 국회의원이 갖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보게 된다. 전직 의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 일종의 ‘금단 현상’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잊을 수 없는 ‘계급 특전’의 달콤함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분노에 가득 찬 느낌이다. 온갖 특권을 누리며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국회의원들이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 수행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1월8일과 9일 이틀간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회의원의 직무 수행 활동 점수는 10점 만점에 평균 4.36점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싸움꾼’(28.6%), ‘부정부패·비리’(15.8%), ‘권력 남용’(9.0%), ‘기득권’(8.0%), ‘밥그릇 챙기기’(6.5%) 등 부정적인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모든 국회의원을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부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이를 해결해야 할 책임은 국회의원 전체에게 있다. 지난해 19대 국회가 개원한 후 여의도 정가에는 쇄신 한파가 거세게 몰아쳤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야 정당은 국회 개혁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새누리당은 세비 반납에 이어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불체포특권까지 내려놓겠다고 했다. 당내에서조차 “다음에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느냐”라는 푸념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민주통합당도 국회의원 연금 제도 폐지와 겸직 금지 등 국회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1월 임시국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정치 쇄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과연 의정 활동을 위해 필요한 권한인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내에서 일어나는 다음과 같은 권위주의적 행태들은 지금 우리 대한민국 국회의 슬픈 자화상이자 현주소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좌관들이 의원을 보좌하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 “의원이 보좌진 임금까지 챙기나”

지난해 5월 여의도 정가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18대 국회가 끝나는 시점에 일부 의원실에서 보좌진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고당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일부 의원들이 세비를 받는 마지막 달인 5월을 앞두고 보좌진들을 해고한 후 대신 친인척 등 자신의 지인을 보좌진 명단에 올려 임금을 받아갔다는 것이다. 의정 활동을 하는 도중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였는지, 의원이 개인적으로 챙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보좌진의 임금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국회 소속의 별정직 공무원이지만, 임면권은 해당 국회의원에게 있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4급 상당의 보좌관 2명과 비서관(5급) 2명, 비서(6~7급) 3명 등 모두 7명에 이르는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여기에 인턴 인력을 최대 2명까지 채용할 수 있다. 국회의원 1인당 9명이 보좌하는 셈인데, 연 급여를 환산하면 약 4억원에 달한다. 해당 법에 따르면 이들은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직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국회의원이 오늘이라도 그만두라고 하면 당장 짐을 싸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입법 활동과 무관한 사적인 일을 시키더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다선의 한 전직 의원은 특히 보좌진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그가 국회의원 재직 당시 보였던 보좌진 운용 행태는 지금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국회의원으로 있을 당시 그는 서울의 자택에서 기거했는데, 보좌진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입법 활동 지원과 동떨어져 있었다. 고참 경력의 한 보좌관은 “그 의원의 부인이 대청소를 하는 날은 보좌진들이 무조건 서울 자택에서 모이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 보좌진들은 집에서 부인을 도와 청소도 하고 빨래도 했다고 한다. 말이 좋아 ‘가족 같은 분위기’이지 사실 ‘사노(私奴)’와 다름이 없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비단 이런 일뿐만이 아니다. 비례대표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 보좌진들이 회사 업무에 동원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국회의원의 권위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버젓이 일어나는 일들이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보좌진을 지역구 관리에 동원하는 관행도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누리당 재선 의원의 방에서 근무하는 한 보좌관은 “지금도 국회 의원회관을 둘러보면, 실제로 국회에서 근무하는 보좌진은 절반도 채 안 될 것이다. 입법 활동을 보좌하는 것보다는 다음 선거를 위해 지역구 관리를 하거나 지역 사무실을 운영하기 바쁘다. 국회의원이 후원금을 받아서 사용해야 할 지역구 관리 예산을 보좌진 예산에서 전용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보좌진들 사이에서 지역구 의원보다 비례대표 의원을 더 선호한 이유도 지역구 관리에 동원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국회 둔치 주차장 ⓒ 시사저널 임준선
■ 의원 중심 주차장…민원인은 바깥으로

지난 1월9일 오후 국회 둔치 주차장. 서류 가방을 든 한 중년 신사가 자신이 몰고 온 차에서 내렸다. 매서운 찬바람에 옷깃을 여민 그는 바람을 가르며 뛰기 시작했다. 둔치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국회 순환버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는 민원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면서 일과 시간에는 10분 간격으로 둔치 주차장과 국회의사당을 오가는 순환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순환버스에 오른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는 “매번 이게 무슨 난리인지…”라며 투덜댔다.

국회 둔치 주차장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국회 경내 지정 주차장은 크게 의원주차장과 공무주차장, 보호 대상 주차장, 방문인 주차장으로 구분된다. 이에 따라 외부인의 주차도 일정 부분 허가된다. 하지만 방문인 주차장은 사전 신청을 한 초청 방문인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개방된다. 대다수 일반 민원인은 국회의사당이나 의원회관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국회 둔치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국회 사무처는 2010년 국회 내 출입 차량이 늘어나면서 교통 혼잡이 가중되고 있다며, ‘국회교통체계개편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국회 경내·외 주차장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운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11년 1월부터 공무와 장애인, 유아 동승 등으로 지정되지 않은 차량은 원칙적으로 모두 둔치 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에서 국회의원실은 제외되었다. 이로 인해 민원인뿐만 아니라 국회 안에 상주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국회 둔치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는 한 사무처 직원은 “경내 지정 주차장은 국장급(2~3급)은 되어야 이용할 수 있다. 앞으로 20년은 근무해야 경내에 주차할 수 있는 혜택을 볼 수 있다. 의원실이 민원인까지 제치고 주차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을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의원회관 신관이 완공되면서 주차장 문제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 건물 지하에 1천95대(리모델링 완공 시)를 소화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민원인 차량의 국회 출입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지난 1월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한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회의원의 특권 의식은 단적으로 국회 경내 주차장 운영 사례만 봐도 잘 드러난다. 국민이 국회의 주인이라고 떠들면서도 마치 국회가 국회의원들의 것처럼 운영되고 있으니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것이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국회 정문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본관. ⓒ 뉴스뱅크이미지
■ 항공기 1등석에 귀빈실…출입구도 따로

지난해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이 국회 문화 개선 방안을 야심차게 구상했다. 국회에 잔재해 있는 권위주의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털어내자는 취지에서다. 그렇다고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국회 본청 중앙 출입구와 계단을 모든 국민이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국회 울타리를 없애자는 정도였다. 현재 일반 방문객의 경우 국회 본청 뒤쪽에 위치한 출입구를 이용해야 한다. 방문증을 이곳에서 끊어준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정문으로 들어왔다면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야 하는 셈이다. 한 층 위에 있는 중앙 출입구는 주로 국회의원들이 드나든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의원의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에 대한 논의 자체가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동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고 한다. 보안 문제 등이 이유로 거론되었다고 하는데, 이보다는 국회의원이라는 ‘특권 의식’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회의원은 장관급 예우를 받는다. 초선 의원이 ‘금배지’를 달았다는 사실을 가장 크게 실감하는 곳이 바로 공항이라고 한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원은 철도와 선박, 항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통상 항공기는 1등석이다. 폐회 중에는 공무일인 경우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지만 ‘공무’에 대한 해석은 하기 나름인 만큼 특별한 제약은 없다고 봐야 한다. 비용뿐만이 아니다. 의전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귀빈 대우를 받는다. 우선 입국이나 출국 시 일반 국민이 받는 깐깐한 보안 검색을 받지 않아도 된다. 국회의원에 대한 보안 검색은 약식으로 처리된다. 또, 일반 승객과 함께 우르르 몰려다닐 필요도 없다. 공항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귀빈실을 이용하고 특별 출입구로 드나들면 된다. 보통 1시간가량 소요되는 출입국 절차와 보안 심사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 “10억원가량 쪽지 예산 전달은 관행”

국회의원에게 지역구 예산 확보는 사활을 건 문제일 수 있다. 다음 선거에서 지역민의 선택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쪽지 예산’이 논란을 불러왔다. 쪽지 예산은 예산안을 심사 중인 국회 예산결산위원들에게 국회의원들이 특정 사업과 관련된 예산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는 민원성 쪽지를 전달하는 관행을 일컫는다. 최근에는 쪽지가 아니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 등을 이용한다고 해서 ‘문자 예산’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쪽지 예산은 예산 부실의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없어져야 할 나쁜 관행으로 지탄받아왔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쪽지 예산을 갈수록 늘리고 있는 추세이다. 2011년도 예산안까지 2천억원대를 넘지 않던 쪽지 예산은 2012년도 예산안에서 4천억원대로 급증한 후, 올해는 5천억원대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예결위원 소속 의원에게 5억원가량의 쪽지 예산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거물급을 제외하면 1인당 보통 10억원가량을 지역구 예산으로 반영해달라고 쪽지 예산으로 전달하는 관행이 있다. 거기에 비하면 이번에 전달한 쪽지 예산은 적은 편이다. 그중 3분의 2가량이 실제 예산안에 반영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의원들이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으려면 의정 보고서에 몇 줄은 더 넣어야 하지 않느냐. 의정 보고서에 싣는 데 지역구 예산 확보만큼 확실한 호재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쪽지 예산뿐만 아니라 지역구 예산 확보를 위해 중앙 부처를 움직이는 ‘예산 끼워 넣기’ 관행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 확정 시한을 앞두고 정부 차원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지역구 예산을 미리 책정하도록 힘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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