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새 차를 구입하십니까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1.1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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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시장’에서 거래되는 중고차만 3백만대…시스템도 현대화

서양에서는 중고차를 레몬에 비유한다. 시고 맛없는 레몬처럼 형편없는 차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국내 중고차 시장이 몰라보게 성장했다. 요즘 출시되는 자동차는 예전보다 고장이 적어서 중고차 품질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차를 교체하는 주기도 3~5년으로 짧은 편이다. 특히 요즘처럼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 대형차 중고 매물이 많이 나온다. 신차를 산 후 할부금이 부담된 소비자가 저렴한 차로 갈아타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직장인 윤기수씨(가명·47)는 최근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는 “다양한 편의 사양(옵션)을 갖추고도 신차보다 수백만 원 싼 가격이 매력이다. 또 과거와 달리 목돈 없이 할부로 살 수 있어서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품질 좋은 중고차 구입이 실속을 챙기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배경으로 국내 중고차 거래는 2011년부터 연 3백만대 규모를 넘어섰다. 중고차는 개인끼리 거래하기도 하지만, 매매업체를 통하기도 한다. 매매업체를 통하면 이전 등록이 두 차례 발생한다.

이런 중복 거래를 뺀 실제 중고차 거래 대수는 2백50만대가량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신차 시장보다 두 배가량 많은 수치이다. 시고 맛없는 레몬(중고차)이 맛있는 레몬으로 익은 셈이다. 중고차 매매업체 SK엔카의 정인국 경영지원본부 이사는 “2012년 소비자들은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중고차를 찾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경기가 좋지 않은 탓에 그랜저에 이어 트럭(포터2)이 국산차 거래 대수 2위를 차지했다”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대형 중고차 거래단지 생겨

40대인 윤씨는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중고차를 사고 싶어 했다. 인터넷을 통해 옵션과 가격이 적당한 차를 알아보았다. 매매업체에 전화를 걸어 해당 차량에 대해 문의했다. 중고차는 직접 보는 것이 좋다는 업체의 말을 듣고 업체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가 찾던 중고차는 그 자리에 없어서 발길을 돌렸다.

이른바 허위 매물(미끼 매물)이다. 실제로는 팔렸음에도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차량이다. 일부 매매업체는 허위 매물을 보고 업체를 방문한 소비자에게 다른 차를 사도록 유도한다. 이런 행위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중고차 거래의 신뢰를 깨는 원인으로 꼽힌다.

그는 지인들로부터 도움말을 얻어 인천에 있는 대규모 중고차 거래단지(엠파크)로 향했다. 1월8일 오전 그는 지상 9층짜리 건물로 들어섰다. 지난 2011년에 세워진 이 건물에는 7천여 대의 중고차가 있고, 이 차들을 파는 중고차업체 100여 개가 상주한다. 차 성능 검사, 정비, 세차, 금융, 보험, 등록 업무를 담당하는 시설도 있다. 인터넷 쇼핑몰처럼 중고차 매매업체와 소비자가 한 공간에서 거래할 수 있는 중고차 쇼핑몰이 마련된 셈이다.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본 차는 실제로 이곳 주차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건물 내에서는 허위 매물이 사라졌다. 이곳에서만 연간 5천여 대가 거래된다.

윤씨는 건물 내부에 있는 온라인 단말기에서 차를 검색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차를 발견했다. 차의 성능과 상태는 물론 차가 주차된 위치와 그 차를 판매하는 매매업체까지 확인했다. 그는 그 업체를 찾아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매매업체 대표를 만나 자신이 찾는 차를 설명했다. 2천만원대의 가격에 내비게이션이 있는 검은색 차량이 그의 취향이었다.

과거에는 주로 주머니 사정에 맞는 차를 선택했다면, 요즘에는 편의 사양을 따지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또 튜닝(개조)한 차를 선호하던 소비 성향이 사라지고 있다. 옛날보다 차의 부품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매매업체 관계자는 대형 모니터를 통해 해당 조건에 맞는 매물을 검색한 끝에 윤씨가 미리 봐둔 차를 포함해 모두 3대의 차를 추천했다.

윤씨는 중고차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매매업체 대표의 안내를 받아 중고차가 가득한 4층 실내 주차장으로 갔다. 첫 번째로 본 차량은 주행거리가 5만km에 가격은 2천5백만원대, 두 번째와 세 번째 차량은 모두 2만km대의 주행거리에 가격은 2천7백만원대였다. 도정창 중고차114 대표는 “같은 주행거리의 차라도 운전자의 운전 습관에 따라 차 상태는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주행거리는 2만km밖에 안 되는 차인데, 기름이 샌다면 이전 소유자가 차를 거칠게 몰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엔진은 확인하면서도 트렁크를 열어보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트렁크 에 곰팡이가 끼어 있는 차가 있다. 외부에서 습기가 들어오거나 내부 습기가 빠져나가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라고 귀띔했다.

사고 여부 조회해 ‘차 내력’ 파악하라

첫 번째 차를 사기로 결정한 윤씨는 매매업체 사무실로 돌아와 그 차의 성능 점검 기록부와 등록증을 확인했다. 차량 성능은 점검기록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자동차관리법에 의해 중고차 판매자가 제공해야 하는 차량에 대한 종합 정보이다. 연식, 주행거리, 사고 여부, 결함, 수리 위치, 정비 상태 등이 표기되어 있다. 중고차를 주행해보았더니 실제 성능이 기록과 다르다면, 중고차를 인도한 지 1개월 또는 주행거리 2천km 이내에 보상받을 수 있다. 점검기록부에 표시된 차량 정보와 자동차 등록증의 내용이 일치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차량 정보가 다르면 허위 매물이거나 대포차(명의 이전이 안 된 중고차)일 가능성이 크다. 사고 이력은 ‘카히스토리’로 확인했다. 카히스토리는 보험개발원이 제공하는 중고차 사고 이력 조회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를 통해 용도 변경도 알 수 있다. 렌터카나 영업용 등으로 사용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자동차 등록원부를 보고 가압류, 저당권, 과태료 미납 상태도 살폈다. 소유주 이름과 차량번호로 인터넷(www.ecar.go.kr)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등록세(5%), 취득세(2%), 공채, 관리비 등 1백70만원과 선수금 5백만원을 내고, 차값의 나머지 2천여 만원은 36개월 할부로 처리하기로 했다. 같은 건물에 상주하고 있는 캐피털업체 직원이 사무실에 들러 윤씨의 신용 상태 등을 확인하고 할부를 결정했다.

윤씨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주의할 점 두 가지가 있다. 반드시 ‘관인 매매계약서’를 사용해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또 계약서에 있는 특약 사항 란에 소비자가 원하는 내용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고차를 인수한 후에 침수 차량, 주행거리 조작 등의 사실이 발견되면 전액 환불받을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 건물에 상주하고 있는 보험사 직원을 불러 보험에도 가입했다. 차량의 명의를 이전하는 절차만 남았다. 그 건물에는 차량 이전 등록을 담당하는 구청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매매업체 직원이 차량 등록을 대행해주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윤씨는 한 장소에서 중고차 거래를 마치고 자신이 원하던 중고차를 몰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중고차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허위 매물이 줄어들었고 대형 거래단지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고차 보증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이다. 중고차에 결함이 발견되면 각 매매업체를 상대로 소비자가 일일이 해결해야 한다. 

더욱 달콤한 레몬으로 농익으려면 사후 보증 관리도 필요조건인 셈이다. 중고차 거래 단지 엠파크의 노주영 마케팅전략팀장은 “앞으로는 중견 기업 이상의 업체가 이름을 걸고 사후 관리까지 하는 대형 중고차 거래단지가 생길 것이다. 현재로서는 중고차 구매 관련 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비자가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똑똑한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중고차 유통이 투명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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