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이들의 노래’ 문화계 강타하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1.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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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한국 문화예술·스포츠까지 휩쓸어

영화와 뮤지컬, 연극, 출판, 음반, 스포츠의 흥행을 동시에 움직인 하나의 콘텐츠가 있었을까?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1802~1885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그가 1862년에 펴낸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지금 한국 땅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에서도 영화가 흥행 상위권에 머무르면서 개봉 2주차에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여 제작비 6천만 달러를 이미 회수했고, 사운드트랙 음반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 못지않게 장르를 넘나들며 붐을 이루고 있다. 소설 <레미제라블>은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20만권 정도 팔려나갔다. 12월에는 영화와 뮤지컬, 연극이 동시에 무대에 올라가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영화는 지난해 대선일인 12월19일 개봉한 뒤 뮤지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관객 5백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영화 음반은 국내에서 2만장이 나갔다. 이들 모두 한 달도 안 되어서 생긴 일이다. 외국 영화이고 음반 시장에서 마이너 장르인 뮤지컬 음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성과는 파격적인 일이다. 피겨스케이터 김연아가 컴백 무대에서 프리스케이팅 음악으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On my own> 등을 선택한 것은 <레미제라블>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맨 위쪽부터) 뮤지컬 , 연극 , 영화 ⓒ KCMI·50대연기자그룹·UPI코리아 제공
연쇄 폭발 노린 영리한 마케팅 전략

<레미제라블> 붐의 핵심에는 뮤지컬이 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영국의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가 1985년 영국 무대에 올린 이후 전 세계 43개국에서 21개 언어로 공연되었다. 1996년과 2003년 우리나라에도 투어팀이 들어와 공연하기도 했다. 28년이나 묵은 뮤지컬이 다시 인기몰이를 하는 배경에는 영화가 있다. 제작자이자 판권 보유자인 매킨토시는 할리우드의 거대 스튜디오인 유니버설과 손잡고 1995년 10주년 기념 공연을 영상물로 냈다. 2010년에는 공연 25주년을 맞이해 작품을 시대 변화에 맞추어 새롭게 다듬어낸 기념 공연을 영상물로 발매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영화화 작업을 추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판 <레미제라블>의 초연과 영화 개봉이 맞물렸다. 한국어 버전 뮤지컬 초연은 11월에 시작되었다. 2백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레미제라블>은 경기도 용인 포은아트홀에서 11월3일 조용히 막을 올렸다. 이 정도의 제작비에, 정성화·박종원·박준면이 등장하는 뮤지컬이라면 서울에서 먼저 지명도를 높이고 지방 투어를 나서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레미제라블>은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20여 일간의 용인 공연을 끝내고 무대는 대구로 향했다. 대구 다음은 부산이고, 서울에는 4월 초에 입성한다.

용인 공연에서는 음향이나 한국말 가사가 어색하게 들리는 배우의 발성에 대한 지적도 없지 않았지만, 유료 관객 점유율이 75%에 이르며 2만명을 동원하는 등 조용한 성공을 일궈냈다. 그러다 대구 공연을 하는 중에 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뮤지컬에 별 관심이 없거나 뮤지컬 티켓값을 부담스러워하는 계층도 대거 <레미제라블> 팬덤으로 흡수시켰다. 뮤지컬은 배우의 얼굴 표정과 섬세한 연기까지 전달하기에는 무리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노래 실력보다는 ‘연기’가 우선이고 심지어 한글 자막은 우리말로 노래하는 뮤지컬 배우보다 극 내용을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

대선과 맞물려 정치 담론으로도 비화

영화 <레미제라블>을 홍보하는 영화사측에서는 “관객들이 앙상하게 마른 판틴(앤 해서웨이)이 노래를 부르는 대목과 장발장의 임종 장면에서 크게 반응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두 장면 모두 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노래보다는 연기에 방점이 찍힌 장면이다. 이지선 영화평론가는 “톰 후퍼 감독이 뮤지컬을 1 대 1로 영화로 옮기는 제약 조건이 있었음에도 전반부에는 배우 얼굴을 클로즈업해 관객에게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하고, 혁명 현장이 등장하는 후반에는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혁명에 참여한 ‘불쌍한 사람들’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주었다. 뮤지컬과는 차별화되는 영화만의 리듬을 만들어낸 것이 성공적이었다”라고 평했다.

뮤지컬과 다르게 혁명의 당위성과 좌절된 혁명을 강조한 영화는 지난 대선과 겹치면서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되었다. 영화를 보고 대선 결과에 대한 ‘힐링을 받았다’는 류의 감상과, 그것은 영화에 대한 오독이라는 주장이 맞붙은 것. 논쟁은 영화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쪽으로 작용했다.

<레미제라블>은 연극 무대에서도 불이 붙었다. ‘50대 연기자 그룹’이 제작한 연극 <레미제라블>이 지난해 12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11일간의 공연 기간 중 유료 관객 80%라는 드문 기록을 세운 것. 오현경·장웅·이용이 등 쟁쟁한 배우들이 모두 참여했다. 제작자이자 배우인 윤여성씨는 “중견 배우들이 우리도 이런 대작을 올려보자는 생각에 노개런티로 무대를 만들었는데, 흥행에 성공해 개런티를 줄 수 있게 되었다. 아르코 대극장에서 이 정도의 만석을 기록한 것은 몇십 년 만에 처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작품은 각색도, 무대 연출도 모두 대학로 연극인이 한 것이다. 영화나 뮤지컬보다 훨씬 더 밀도 있게 원작의 세계를 전달하고 있다고 자신한다”라고 말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엔딩 장면에 등장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힘찬 합창 장면에서 위로를 받거나, 꽃 같던 시절에서 갑자기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판틴의 인생 유전에 눈물짓거나, <On my own>의 애절한 멜로디를 따라가는 김연아의 유연한 몸짓을 따라가거나, 지금 한국 사회는 <레미제라블>을 열심히 소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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