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계륵’이 된 말 많은 이동흡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1.2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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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소장에 임명되든 낙마하든 부담 커

박근혜 새 정부 역시 출발선에서 ‘인사’에 발목을 잡히고 마는 것일까? 1월3일 헌법재판소장(이하 헌재소장)에 지명된 이동흡 후보자의 자질 검증 논란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처음에는 의례적인 야당의 정치 공세쯤으로 치부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측과 새누리당조차도 의혹이 점차 확산되자 상당히 당황해하는 눈치이다. 자칫 새 정부에 불똥이 튈지 촉각을 곤두세운 채 여론의 향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반면 비대위를 출범시키고 석고대죄 삼배 민심 투어를 벌이던 민주당은 모처럼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듯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동흡 후보자의 인선이 박근혜 정부 출범 전 정국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이후보자를 누가 지명했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헌재소장 추천 권한은 현직 대통령에게 있다. 즉, 이명박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 생각은 다르다. 박근혜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으로서 이후보자 지명에 깊숙이 관여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헌재소장직에 3명의 후보자가 있었다. 그 가운데 이후보자의 경우 법조계에서 비판이 많아 (이대통령이) 임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박당선인 쪽에서 강하게 임명을 원했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야당측은 이후보자를 국회 임명 동의를 받는 박당선인의 첫 인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야당이 이후보자의 낙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다.

1월17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 “MB 정부 인사” vs 야 “박당선인 책임”

이와 관련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인사청문회 특별위원회(인사청문특위)에 속한 한 민주당 의원은 “헌재소장 후보에 이후보자, 목영준 전 헌재 재판관, 박일환 전 대법관 등이 거론되었다. 이대통령은 목 전 재판관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당선인이 총리 인선을 염두에 두고 목 전 재판관 대신 이후보자를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는 이번 기회에 박당선인의 인사 능력을 정면으로 문제 삼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서는 “이후보자의 지명은 이대통령의 뜻일 뿐”이라며 철저하게 선을 긋고 있다. 이후보자 지명과 관련한 후폭풍으로부터 박당선인을 적극 보호하려는 모습이다. 새누리당 소속 인사청문특위 위원은 “인사청문회에서 이후보자에게 ‘박당선인이 정말 뒤를 봐줬느냐’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후보자에 대한 지명 권한은 물론 책임까지 모두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 사실 당 내부에서 임기 끝까지 인사 문제로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불만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현 정부의 인사에 ‘감 놔라 배 놔라’라고 참견하는 것은 박당선인의 성격과도 맞지 않다. 야당은 6년 전 이후보자의 헌재 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일절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지금 와서 집중 공격을 하고 있다. 사실상 박당선인을 노린 정치 공세가 아니겠느냐. 이번 일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빼앗아보려는 야당의 노력이 안쓰러울 뿐이다”라고 강력 반발했다.

여당 “법조계 헤게모니 다툼의 산물”

한 발짝 더 나아가 새누리당은 이후보자의 각종 의혹을 법조계 ‘주도권 싸움의 결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이다. 새누리당의 권선동 인사청문특위 간사는 “‘헌재 내부에 굉장한 헤게모니 다툼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자기들이 기대하던 인물이 아닌 다른 사람이 헌재소장으로 지명되다 보니까 거기서 어떤 불만이 나오고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을 ‘네가 한번 증명해봐라’라고 하면, 없는 사실을 어떻게 없다고 증명하겠는가”라고 항변했다.

대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후보자가 임명되면 25년 헌재 역사에서 최초의 헌재 재판관 출신 헌재소장이 된다. 그런 만큼 이후보자가 헌재의 위상 강화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의 또 다른 인사청문특위 위원은 “대법원과 헌재는 위헌법률심판권 등 각종 권한과 역할 설정을 놓고 알력 다툼을 벌여왔다. 그런데 이후보자는 대법원이 꺼리는 ‘재판소원(법원 판결을 헌재가 다시 심리하는 것)’ 등을 주장해왔다. 대법원 입장에서는 이후보자가 눈엣가시일 것이다. 여직원의 법복 시중 등 이후보자의 처신과 관련한 의혹은 법원 내부자의 제보이다. 이후보자를 견제하려는 법원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보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점차 뜨거워지면서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이후보자가 새 정부에 부담이 되는 만큼 털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성태 새누리당 인사청문특위 위원은 “의혹 제기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후보자의 판결문을 꼼꼼히 따져보고 있는데, 그중 친일파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판결로 친일 논란이 일고 있는 것 등이 (국민 정서상) 더 큰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설사 이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 동의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문제라는 시각은 그래서 나온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이후보자가 알아서 결단을 내려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이다. 임기 6년의 헌재소장은 새 정부와 임기를 같이하게 되는데, 그 뒷감당을 박당선인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식으로든 이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박당선인의 향후 국정 운영 일정에 적잖은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야당과 법조계 내부의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 적극 맞서야 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박당선인에게 이후보자는 ‘계륵’이 아닐 수 없다.

 


2006년 청문회는 전효숙 당시 헌재소장 후보자에게만 집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6년 임기 보장을 위해 현직 재판관이던 전후보자를 사직하도록 한 뒤 헌재소장으로 임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검증해야 할 대상도 너무 많았다. 당시 청문회에서는 이후보자 외에도 전효숙·김희옥·김종대·민형기·목영준 등 무려 6명에 대한 청문회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없다. 당시 이동흡 헌재 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회의록에 따르면, 오전 10시께 시작해 오후 4시를 훌쩍 넘어 끝난 청문회에서 여야 청문위원들은 이후보자를 상대로 전효숙 후보자 지명과 관련한 절차적 논란에 대한 질문만을 쏟아냈다. 현안이라고 할 만한 내용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질문이 고작이었다. 이후보자 개인 비리 의혹이나 자질에 대한 질문은 사실상 관심 밖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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