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사면’ 카드, 쥐었다 놓았다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3.01.2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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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공판, 일주일에 한 번꼴 ‘초특혜’ 확인…‘2월 특사 준비설’ 돌아

 “최근 들어 VIP(이명박 대통령)에게 SD(이상득 전 의원) 근황이 자주 보고된다고 한다. 보고 내용 중에는 옥살이를 하는 SD의 고충과 관련한 정보가 많다. 팔순이 다 된 형이 옥고를 치르는데,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느냐.”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새누리당 친이계의 한 인사가 기자에게 전한 이야기이다. 임기를 불과 한 달여 앞둔 이대통령이 짜 맞추고 있는 ‘2월 특사’(특별사면)를 앞두고 그의 복잡한 심경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대통령의 임기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리는 2월24일 자정까지이다. 그동안 ‘명박산성’이나 ‘불도저’ 등으로 묘사되면서 ‘불통(不通) 논란’을 빚은 지난 5년의 집권 기간을 되돌아본다면, 여론의 향배는 이대통령의 특사 구상과는 멀어 보인다. 더욱이 여론보다 이대통령이 더 눈치를 보는 부분이 있다. 바로 지금 실질적인 권력자인 박당선인의 의중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 ‘임기 중 사면 불가론’을 약속했던 박당선인은 2월 특사 카드를 만지고 있는 이대통령이 현실적으로 가장 먼저 넘어야 장애물이다. 지금 시점에서 여권, 특히 친박계 내부의 반응만 놓고 본다면 이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최측근 인사가 포함된 사면 카드에 대한 분위기는 냉랭하다. 하지만 최근 2월 특사를 둘러싼 기류에 변화의 조짐이 읽히고 있다. 박당선인이 적극적인 ‘사면 불가’ 입장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이대통령이 박당선인이 받아 안을 수 있는 새로운 버전의 2월 특사 카드를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통령이 2월 특사 명단에 ‘형님’의 이름을 올릴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비관적 전망도 들린다. 하지만 이는 지금의 여론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일 뿐, 청와대에서는 사실상 지난해 가을부터 이 전 의원의 2월 특사를 준비해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런 정황은 <시사저널>의 취재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7월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된 후, 1월10일 검찰로부터 징역 3년을 구형받고 24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날 이 전 의원의 선고가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본인이나 검찰의 항소 등이 이어지면서 2심과 대법원의 최종심까지 이어질 경우 수개월이 걸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이 전 의원이 1심 선고를 받은 지 불과 한 달 안에 사면 대상에 포함되기란 시간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본인이 항소를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1심 선고가 확정된다. 따라서 초점은 이 전 의원의 1심 선고가 과연 언제 나올 것인지에 맞춰졌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사진팀
이상득 공판, 일사천리로 진행

<시사저널>이 이 전 의원의 재판 일정 기록을 확인한 결과, 이 전 의원의 공판은 지난해 8월20일 첫 공판 이후 마지막 결심 공판이 열린 지난 1월10일까지 4개월 20여 일 동안 총 17차례나 열렸다. 거의 일주일마다 한 번꼴로 공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이다. 통상 형사 재판의 경우 빨라도 한 달에 한 번꼴로 공판 기일이 잡히는 관행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재판이었다. 이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공판이 비슷한 기간에 5차례 열린 것과 비교해도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인사들이 최근 1심과 2심 선고 이후 잇따라 항소나 상고를 포기한 것도, 2월 특사의 사전 교감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저축은행 로비 관련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된 김희중 전 실장은 1월11일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3월에 추징금 3천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김 전 실장의 재판 일정 기록을 살펴본 결과, 항소심 기한(7일)인 1월18일까지 김 전 실장과 검찰 모두 항소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대통령의 최측근 3인방으로 통하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도 지난해 12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채 지금 사면을 기다리고 있다. SLS 구명 로비에 연루되어 2011년 11월 구속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6월과 벌금 5천4백만원, 추징금 1억1천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상고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통령의 처사촌오빠인 김재홍 전 KT&G 이사장도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2011년 12월 구속된 이후, 지난해 8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3억9천만원을 선고받아 대법원 상고를 했지만 한 달 만에 상고를 취하했다. 결국 김 전 사장의 대법원 상고 취하를 기점으로 이대통령의 친인척과 최측근들이 잇달아 법적 공방을 접으면서, 지난해 9월부터 이들 사이에서 사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MB 정부의 또 다른 실세였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항소 공판은 1월23일로 잡혀 있다. 시간상 이대통령 임기 중에 항소심 선고가 가능하니 박 전 차관 역시 대법원 상고를 포기할 경우 사면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청와대를 수년간 출입하고 있는 한 정치부 기자는 “어차피 퇴임 직전 마지막 사면을 단행하면 이러나저러나 이대통령과 현 정부가 욕을 얻어먹을 것은 뻔하다. 그런 마당에 굳이 이 전 의원 등 일부 측근을 제외하거나 소규모로 사면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예 사면을 하지 않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대사면설’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이대통령이 단행할 2월 특사의 가장 큰 난관은 앞서 말했듯이 박당선인과 새누리당이다. 박당선인은 지난 대선 동안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박당선인은 지난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면 당시에도 “대통령의 사면권이 사법권을 침해한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박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친박계 인사들이 최근 청와대의 사면 검토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자 십자포화를 퍼부은 데도 박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대통령이 막판 고심을 한 후 가장 핵심 인물인 이 전 의원을 제외한 특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박당선인이 받아 안을 수 있는 특사의 명분을 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친이계 새누리당 중진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믿을 만한 청와대 소식통’의 이야기를 근거로 “청와대 내부 관계자가 SD(이상득 전 의원)는 특사 명단에 절대 포함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더라. 현직 대통령의 친형을 포함한 사면은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정 정도 짐을 덜고 (사면으로) 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28일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웃으며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MB-박당선인, ‘밀고 당기기’ 시작?

대통령의 친형을 특사 명단에서 제외할 경우 비난 여론을 일정 정도 잠재울 수 있고, 과거 정권과의 형평성 논쟁에서도 명분을 찾을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2007년 12월31일, 측근이었던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특사를 단행한 바 있다.

즉, 가장 크게 주목받는 이 전 의원을 이번에는 제외하는 선에서 측근들을 포함시키고, 대신 친박계 인사와 민주당 등 야권 인사 그리고 여론 무마용 카드를 끼워 넣는 새로운 ‘2월 특사’ 명단을 꺼내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여론 무마용 카드로는 지난 2008년 용산 참사로 6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인 철거민 6명의 사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마지막 특별사면을 준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측과 민주당 등 야권도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친박계 좌장 격인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의 재판 과정이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다. 홍 전 의원은 지난 1월4일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가 진 아무개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 재판에서 벌금 3백만원과 추징금 3천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홍 전 의원은 항소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홍 전 의원은 지난해 9월 불법 정치자금으로 검찰에 고발된 이후에도 “사실무근이다. 법정에서 무고한 혐의를 벗겠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역시 1심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돌연 범죄 혐의를 모두 인정해 의혹을 낳았다.

또 박당선인의 최측근 인사로 통하는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도 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서 전 대표는 2009년 공천 헌금 파동 당시 실형을 선고받고 2010년 가석방으로 풀려났지만, 피선거권 10년 제한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이다.

결국 이대통령이 2월 특사에서 논란의 핵심인 이상득 전 의원 등 일부 최측근 인사를 제외하고, 친박계와 야당 인사까지 최대한 아우르는 정치인을 사면·복권 대상에 포함시켜 박당선인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내고 야당과 여론의 반발까지 무마하는 것으로 2월 특사의 밑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야당 정치인의 경우, BBK 폭로로 인해 수감된 후 만기 출소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씨,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사면·복권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건평씨와 이 전 지사는 현재 1심과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형이 확정된 후에야 사면·복권이 가능할 전망이다. 친박계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이미 박당선인이 임기 중에는 비리에 연루된 측근의 사면은 없다고 못 박은 만큼 앞으로 차기 정부에서 친박계 인사에 대한 사면은 어려울 것이다. 이대통령이 친박계 인사를 포함한 사면안을 내놓는다면 박당선인이 굳이 손에 때를 묻히지 않고 측근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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