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기 대신 비행기표 택했다
  • 엄민우 (mw@sisapress.com)
  • 승인 2013.01.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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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대학 나와 해외에서 취업한 ‘알파걸’들

‘학식(대학교 내 구내식당을 일컫는 말)’에서 함께 제육덮밥 먹던 선배 언니가 ‘뉴요커’가 될 수 있을까? 수업이 끝난 후 나와 함께 떡볶이를 즐기던 대학 친구가 마천루가 즐비한 홍콩에서 커리어우먼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해줄 증인들이 있다. 여느 대학생들과 다름없이 국내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해외에서 멋지게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 10명의 젊은 커리어우먼이 얼마 전 공동으로 책을 냈다. 이들은 <왜 그녀들은 해외 취업을 선택했을까>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취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한국 화이자 제약의 이지은 과장. ⓒ 시사저널 임준선
미국의 유명 팝가수 앨리샤 키스는 그의 노래 <Empire State Of Mind>를 통해 뉴욕을 ‘수많은 꿈으로 이루어진 정글’이라고 표현했다. 뉴욕은 꿈의 도시이다. 세계 각지에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권수정씨도 그중 한 명이다. 올해로 뉴욕 생활 10년차에 접어드는 권씨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바이어로 일하고 있다. 해외 취업에 성공한 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하고픈 일을 일찍 정했다는 것이다. 권씨는 중학교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디자인보다는 브랜드를 홍보하고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일찍부터 대학 진로에 대해 탐색했다. 그런데 국내에는 패션과 관련한 학과가 디자인 쪽밖에 없었다. 권씨는 일단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하고 미국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패션이 발달한 곳이 프랑스와 미국이니까 프랑스어를 배워놓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권씨는 학교 공부와 유학 준비를 병행했다. 프랑스어와 더불어 토플을 공부했다. 결국 졸업 후 권씨는 진학하고자 했던 미국 파슨스 패션 디자인스쿨 마케팅학과에 합격했다.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벨기에의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와 더불어 세계 3대 디자인스쿨로 꼽히는 파슨스에 입학한 후 권씨는 인턴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권씨는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면 되지만, 마케팅 분야는 그런 것이 없다. 직접 사람들과 부딪치며 어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세계 1위 제약회사 화이자에 근무하는 이지은씨 역시 뉴욕 생활을 했다. 대학 시절 이씨는 해외로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호주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다가 친구들과 3주 동안 뉴욕으로 놀러간 이씨는 이후 ‘청소부를 하더라도 뉴욕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온 이씨는 이미 또래 친구들과는 달라져 있었다. 대기업 적성평가 문제집을 파고드는 대신 해외 취업을 하기 위한 내공을 쌓기 위해 해외 인턴 및 자원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활동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쌓여갔다. 평범한 국내 여대생이 세계인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결국 이씨는 2010년 미국 화이자 뉴욕 본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 유지은ㆍ민유주ㆍ권수정 제공
꿈 찾아 정글에 몸 던지니 기회 많더라

권씨와 이씨는 ‘뉴욕은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살아남는 도시’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권씨는 “한국에서는 그저 묵묵히 일하고 자기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지만 뉴욕은 다르다. 공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자신의 성과를 스스로 홍보해야 한다. 조용히 앉아서 일만 한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남이 알아줄 시간도 없다”라고 전했다. 이씨 역시 “미팅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알려야 한다. 한국에서처럼 논리 정연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때그때 자신의 생각을 바로 표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뉴욕을 매일 파티나 하는 화려한 곳으로만 생각한다면 큰코다친다. 이벤트나 파티가 많은 것은 인위적으로 네트워킹을 만들려다 보니 생긴 역설적인 문화이다. 신입사원이 왔다고 환영회를 연다거나 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권씨는 “점심시간에 나가서 밥을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일을 하면서 먹는 게 태반이다. 대신 다들 일찍 퇴근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인적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파티도 많이 가고 하는데, 학생들에게는 이런 것이 화려해 보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씨는 “회사 동료들과 친해지고 싶으면 한 명 한 명 직접 다가가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처럼 일일이 챙겨주는 문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치열하고 냉정한 뉴욕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이 걱정된다면 동양권 취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유지은씨는 해외 취업을 넘어 해외 창업을 이뤄냈다. 그녀는 현재 ‘리블러’라는 교육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유씨의 대학 생활은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던 유씨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이다. 단순한 어학 공부를 넘어 유씨는 인턴 활동을 하며 진짜 중국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원하는 족족 낙방했지만 그 과정에서 유씨의 열의를 높게 본 사람의 소개로 유네스코 베이징 지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유씨는 “어학연수만 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력서도 미리 써보고 인턴이나 자원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나가면 도움이 된다”라고 충고했다.

유네스코 인턴 경험을 거친 유씨는 외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한 끝에 모건스탠리 일본 지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이후 홍콩 UBS 아태 지역으로 자리를 옮긴 후 9년 동안 회사 생활을 했다.

유씨의 홍콩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하게 사람이 몰리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뉴욕과 같았지만 서로 네트워킹하고 싶어 하다 보니 사람을 사귀기 좋았다. 열 명만 모여도 출신 국가가 5개 이상이었다. 도시가 작아 모이기도 편했다. 유씨는 주말마다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가끔씩은 친구들을 모아 배를 빌려 섬으로 놀러 갔다 오곤 한다. 한국 돈으로 각자 7만원씩만 내면 즐길 수 있다. 평범한 국내 대학생이었던 유씨는 그렇게 어느새 홍콩의 젊은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해외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해외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해외 취업형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민유주씨는 애셔스트 로펌 도쿄 지사의 변호사이다. 그는 이번 해외 취업과 관련한 출판을 제안한 주인공이다. 민씨는 “해외 취업을 하고 싶다면 무보수로 일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해외와 관련한 경험을 하며 국제적인 타이틀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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