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비리 의혹에 흔들리는 보수 본산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1.2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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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자유총연맹 내부 문서 단독 입수

국내 최대 관변 단체로 손꼽히는 한국자유총연맹이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내부 비리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되면서 존립 기반마저 위협받는 모습이다. 안팎으로 “이미 곪을 대로 곪은 것이 터지기 시작했다”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경찰은 자유총연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내사에 착수한 경찰은 9월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정국에서 잠시 주춤하던 수사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다시 가속 페달을 밟는 분위기이다. 관련 상황을 예의 주시해온 여권의 한 인사는 “전·현직 직원과 지역 간부 그리고 협력업체 관계자까지 수십 명이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유총연맹의 비리 의혹을 고발하는 여러 제보를 접했다. 이에 따라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복수의 전·현직 고위 인사들을 다양하게 만났고,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인사들로부터 직접 해명을 듣기도 했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도덕적으로 너무 무감각해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라거나 “<개그콘서트>도 아니고 하늘 아래 이런 코미디가 없다”라는 등의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반면 자유총연맹 현 지도부측에서는 “누군가 왜곡된 내용을 떠들고 다닌다”라거나 “경찰 수사가 편파적이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관련 의혹을 반박하고 나섰다.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회장(가운데)과 회원 대표들이 지난 2011년 6월 창립 기념행사에서 ‘자유의 날’을 선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격 미달 회원이 대통령 훈장 받아”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맞서는 가운데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자유총연맹 내부 인사들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들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거기에는 박창달 현 자유총연맹 회장이 취임한 이후 발생한 각종 비리 의혹이 담겨 있었다. 특히 이 중에서도 대통령 훈장 수여와 관련해서 의혹을 소개한 문건이 눈길을 끌었다. 실제 기자가 취재한 인사들 중 상당수가 훈장과 관련한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자유총연맹은 매년 정기 총회 때 행정안전부로부터 다섯 개의 대통령 훈장을 받아 공로자들에게 포상해왔다. 그런데 2010년 6월에 진행된 총회에서는 훈장이 하나 더 늘어 여섯 개가 주어졌다. 논란은 추가된 대통령 훈장을 받은 회원이 심사위원의 심사를 제대로 받지 않은 ‘무자격’ 인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당시 총회에 참석했던 인사들에 따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생소한 사람이 단상에 올라가 대통령 훈장을 받으니까 다들 “저게 뭐야?” 하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심사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심사 절차도 없었는데 끼워 넣기를 해서 훈장을 주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훈장은커녕 표창을 받을 자격도 안 되어 1차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이었다. 행정안전부에는 심사를 다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총회 이후 자유총연맹 내에서는 “문제의 훈장을 회수해 행정안전부에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 회원이 수천만 원의 돈을 주고 훈장을 받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자유총연맹측은 “의혹 제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공적심사위원회 구성에 민간 심사위원을 참여토록 해 공적 심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을 보면 당시 훈장 문제를 놓고 제기된 의혹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다. 또한 당시 논란이 확산되자 내부적으로 조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일지’ 형식으로 된 이 문건에 따르면, 2010년 7월19일 사무총장실에서 행정운영본부 간부를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되었다. 심사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조사한 결과, 한 지역의 지부장이 당초 포상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던 회원 정 아무개씨의 포상을 추가로 요청했다. 포상 구분 칸은 빈칸으로 제출되었는데 지부장이 구두로 ‘표창’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직본부에서 검토한 결과 정씨의 경우 포상 대상 결격이라는 판단이 내려졌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이메일이 행정운영본부에 발송되었다.

그런데 해당 지부에서 재차 정씨에 대한 포상 요청을 해오자, 결격 사유가 명시된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사를 거쳐 한 단계 위인 ‘포장’으로 정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씨의 수공(내부 활동) 기간은 15년 10개월로 작성되었고, 이후 정씨는 또다시 한 단계 오른 ‘훈장’ 후보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수여하는 상은 공적에 따라 표창, 포장, 훈장 순으로 급이 올라가는데, 훈장의 경우 수공 기간이 15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사 서류를 통해 확인한 결과, 정씨는 2004년부터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훈장 자격 미달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훈장 자격 문제에 대한 내부 조사가 박회장의 지시로 중단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당시 문제 제기를 했던 한 인사는 “정씨 이외에 이 아무개씨도 포장에서 훈장으로 격상되었는데, 15년 이상이라는 자격 조건이 되지 않았다. 이씨 역시 수천만 원을 주고 훈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라고 전했다. 훈장을 받은 이씨는 박회장의 측근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자유총연맹과 자유센터웨딩홀 전경. ⓒ 시사저널 최준필
민간 지원금 1억원 이틀 뒤 현금으로 출금

1954년 설립된 자유총연맹은 회원 수 1백50만명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 단체이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로부터 13억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귀족 단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다른 시민단체의 경우 평균 지원액이 4천9백만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단체의 위세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자유총연맹의 지역 조직은 지자체로부터 별도의 보조금도 받고 있다. 그 금액이 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원받고 사용하는 단체임에도 취재 과정에서 일부 확인된 돈 관리 시스템은 체계적이지 못한 모습이었다. 한 고위 인사는 “가짜 영수증이 상당히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자유총연맹은 전경련을 비롯한 기업으로부터도 상당한 금액을 지원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총연맹측이 제시한 ‘한국자유총연맹’ 명의의 통장 사본을 살펴보면, 전경련은 2010년 1월부터 2011년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총 7억원을 입금했다. 이 기간 행정안전부로부터 입금된 국고 보조금도 최소한 여섯 차례에 걸쳐 8억4천7백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총연맹측은 “모든 입출금은 법인 통장을 경유해 이루어지며 사용은 자유 수호 활동에 지출되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 입금된 금액은 대부분 ‘한국자유총연맹’ 명의의 또 다른 통장으로 이체되었다. 2010년 12월 말 전경련으로부터 입금된 1억원은 이틀 후 한꺼번에 현금으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결국 이 통장만으로는 국고 보조금과 민간 지원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자유총연맹측은 “다 목적에 맞게 사용되었다. 그것까지 확인해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자유총연맹이 법인 계좌가 아닌 직원 계좌로 돈을 관리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자유총연맹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한 인사는 “여러 직원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1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지도부가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 자료
박회장이 나의원을 지지한 배경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선거 결과는 홍준표 의원이 1위를 차지해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자유총연맹 내에서도 홍의원이 아닌 나의원을 지지한 데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당시 당내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당선인과 연관 짓는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한 여권 인사는 “여성 정치인인 나의원을 내세워 박후보를 견제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자유총연맹은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 때에도 내부적으로 박당선인이 아닌 다른 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후보를 도왔던 한 인사는 “자유총연맹을 그만두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도운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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