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전술’도 세습했나 다시 찾아온 북핵 위기
  • 홍현익 I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3.01.2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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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강화’에 몰린 김정은의 핵 도발 가능성은?

지난 1월23일 유엔 안보리가 기존의 대북 제재를 확대·강화하는 새로운 결의안인 2087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데 대해 42일 만에 제재 조치를 취한 것이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외무성과 국방위원회의 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노력을 포기할 것임을 밝혔다. 안보리의 강대국들이 모두 누리고 있는 자주권의 하나인 우주의 평화적 이용권을 왜 북한에 대해서만 막느냐고 항변했다. 또, 이를 계기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확인되었다면서 미국을 겨냥해 인공위성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속할 것이며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특히 이번 핵실험은 실전 사용이 용이한 고농축 우라늄 실험일 것으로 예상되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국제 사회의 다양한 강대국의 의견을 포함한 국제 여론이라 볼 수 있는 유엔 안보리의 결정에 대해 이처럼 예상보다 더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정권의 사활을 거는 모습까지 보이는 배경은 무엇일까.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장거리 로켓 ‘은하 3호’의 발사에 기여한 과학자와 간부 등 관계자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연회를 열어 격려하고 있다. ⓒ 연합 뉴스
“미국-핵보유국 간 담판” 오판 가능성

북한의 발표를 말 그대로 살펴보면,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 정권의 최고 목표인 3대 세습 체제 유지를 위해 미국과의 신뢰성 있는 평화 공존을 원했고 지난해에 미국 백악관과 CIA 고위 관료들이 평양을 방문해 소통했기 때문에 적절한 때가 되면 북·미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특히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서로의 주권을 존중하면서 북·미 관계가 개선되기를 기대했는데, 미국이 오히려 북한의 주권적 권리를 무시하는 대북 제재 결의안을 주도해 통과시켰다는 데 격분한 듯하다. 북한의 논리는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지속하고 있으므로 약소국으로서 핵실험 등을 통해 자위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전략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도 이번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통과에 찬성했기 때문에 북한의 위기감이나 좌절감은 더욱 컸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서방 세계는 북한의 맹방인 중국까지 제재에 동참했기 때문에 북한이 소극적인 대응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북한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핵실험을 예고하는 ‘벼랑 끝 전술’을 들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지정학적인 이점을 최대한 악용할 수 있다는 점도 모험주의 행태의 또 다른 배경이다. 남한의 심장부인 서울에 인구 및 산업이 밀집한 데다, 거리가 가까워 전면전이 발발하면 1시간에 1만발 이상의 장사정 포탄을 퍼부을 수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큰 위협적 요소이다. 북한이 한반도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5백기 이상 보유하고 있고, 핵무기까지 개발하고 있으므로 남한과의 공멸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는 2만8천명의 주한 미군이 있고, 역시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에 있는 일본에도 그 이상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지켜야 할 산업 시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전면전이 벌어져도 인적 손실이 대부분일 것이고, 북한 정권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뿐, 북한 주민의 안위는 크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벼랑 끝 전술 채택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여건이라면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의 주도권은 항상 북한이 쥘 수밖에 없는 국면이 계속된다.

또한 김정은 정권은 나름대로 국제 정치를 계산하면서 대외 전략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2009년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불량 국가’와도 대화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악용해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했던 바 있다. 이번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국무장관뿐 아니라 국방장관에까지 ‘대화파’를 임명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을 악용해, 핵실험을 감행해도 수개월의 대립 국면을 거치면 결국 협상이 재개될 것이라고 계산하는 듯하다. 더 심각한 것은, 한 번의 핵실험을 더해 핵무기 소형화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미국과 핵보유국끼리 담판하겠다는 전략적 오판을 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북한이 실용위성이라고 선전하는 ‘광명성 3호 2호기’를 발사한 지 한 달을 맞이했다. ⓒ 연합 뉴스
“한·미·중 3국 공동 합의안이 중요”

지난 1년 동안 김정은 체제 구축이 어느 정도 안정 단계에 이르렀다는 자체 판단으로, 이제 시선을 바깥쪽으로 돌리겠다는 신호탄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고 핵무기 실전 능력을 갖추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면,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처음부터 곤경에 빠지게 된다. 국제 사회의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 분위기가 도출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미·중 관계와 중·일 관계도 우호적으로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남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남북 대화의 재개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북한의 강경 도발이 먹혀들 경우, 남한을 배제한 채 북한이 미국과 직접 상대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한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된다면 한반도 평화를 담보로 한 북한의 위협은 상시화되고, 국지 도발을 벌이면서 남한의 보복을 핵무기 사용 가능성으로 억제하는 ‘벼랑 끝 전술’을 펼칠 위험성도 있다. 이러한 안보 불안은 박근혜 정부 초기에 직면하게 될 경제 위기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즉 한국의 국가신인도가 추락하고 해외 자본이 철수하며 대미 의존이 커질 뿐 아니라, 국방 예산의 폭증으로 복지·교육 예산 삭감이 불가피해지면 우리 사회의 계층 간 분열마저 더 심화될 수 있다. 핵개발론이 등장하고 미국이 이를 막기 위해 움직이면 대북 정책뿐 아니라 한·미 동맹을 두고도 남남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 당선인은 단기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교력을 총동원해 북한의 핵실험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간 정책 공조를 강화하면서도, 역시 북한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 역시 북한의 핵 보유를 전혀 바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대화와 협상에 응하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와는 달리, 강온 양면책을 균형 있게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정책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그 예의 하나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받게 될 보상에 관한 명시적 방안과, 반대로 핵보유를 강행할 경우 중국도 참여하는 가혹한 제재안을 한·미·중 3국이 공동 합의로 마련해 북한에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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