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과 탁신, 대선 직전 만났다
  • 안성모·조해수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2.05 11: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 단독 확인 / 해외 도피 중인 전 태국 총리, 박지만 회장 단골 강남 술집서 은밀히 만나

18대 대선 직전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술집에 중년의 남성들이 들어섰다. 그중 한 명은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였다. 그는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후 해외 도피 중이지만, 2011년 8월 자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이 태국 총리에 취임하면서 다시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현재 두바이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탁신 전 총리가 서울에 나타난 것이다. 전직 총리라고는 하지만 거물급 인사가 강남의 술집에 나타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그와 함께한 인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탁신 전 총리는 일행 중 한 명과 아주 친밀한 듯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는 바로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이었다. 그의 뒤로 국내 한 대기업의 ㅇ회장이 있었다.

이들 일행이 만난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었다. 당시가 대선 직전이었다 하더라도, 박당선인은 당선이 유력한 여권 대선 후보였다. 따라서 동생 박회장의 일거수일투족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박회장은 자택 인근에 위치한 이 술집의 단골손님이었다. 박회장은 ㅇ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탁신 전 총리 일행과 합류했다. 박회장과 ㅇ회장은 오래전부터 아주 절친한 사이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만남은 별로 어색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한동안 술자리를 이어갔고, 박회장이 먼저 자리를 떠난 후 뒤이어 다른 일행들도 그 술집을 떠났다.

지난 제18대 대선 직전 박지만 EG 회장(왼쪽)과 탁신 전 태국 총리(오른쪽)가 강남의 한 술집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 뉴스뱅크이미지·연합뉴스
<시사저널>, 두 사람 회동 정보 1월 초 입수

박당선인의 동생인 박지만 회장과 탁신 전 태국 총리가 대선 직전 만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단독 확인되었다. <시사저널>은 대선 직후인 지난 1월 초, 사정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로부터 이와 같은 내용의 정보를 입수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두 사람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만났을까.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확인에 들어갔으나, 관계자들은 굳게 입을 닫았다. 대통령 당선인의 동생 그리고 외국 전직 총리, 모두 거물급이었던 탓에 취재 접근도 용이하지 않았다.

우선 이들이 만난 장소로 지목된 강남의 고급 술집을 찾았다.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인근에 위치한 T업소였다. 이곳은 박회장의 청담동 자택과 가까워, 박회장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박회장과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의 친분이 구설에 올랐을 때 두 사람의 회동 장소로 지목된 곳 역시 이곳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박지만 EG 회장 부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두 사람의 만남, 여러 경로 통해 확인

지난 1월17일, 기자는 T업소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하지만 평소 박회장의 단골 업소인 데다 저축은행 사태 당시 언론의 표적이 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박회장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더군다나 탁신 전 총리를 비롯한 다른 관계자들은 얼굴조차 모른다고 했다. 한 직원은 “탁신이 누군지도 모른다”라며 “점장에게 직접 물어봐라. 그런데 예전에 한번 (언론에) 덴 적이 있어서 (점장이) 좋아하지 않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날 저녁 늦게 T업소를 다시 방문했을 때 점장은 “박회장은 자주 온다. 탁신은 온 적이 없다. 만약 왔다면 우리 가게의 영광이다. 사진도 걸고, 자랑이라도 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가 당시 정황을 자세하게 설명하자 “만약 (박회장과 탁신 전 총리가) 왔다면, 내가 없을 때 온 것 같다”라고 확답을 피했다.

탁신 전 총리의 방한 사실은 정부 관계자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탁신 전 총리는 최근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2011년 태국에 50년 만의 대홍수가 닥친 이후, 태국 정부가 12조4천억원을 들여 통합 물 관리 사업을 추진하면서 탁신 전 총리의 방한도 잦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국제 입찰에 한국수자원공사(수공)를 비롯해 현대건설·삼성물산·GS건설·대림산업·대우건설·SK건설 등 굴지의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중국·일본 업체들과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36쪽 딸린 기사 참조).

이명박 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번 방한 기간 중에도 탁신 전 총리는 수공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 기업의 태국 물 관리 사업 진출과 관련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인 민주당의 한 의원은 “수공의 관계자로부터 (물 관리 사업 수주를 위해) 최근 탁신이 수공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그때 브리핑도 이루어졌다고 한다”라고 귀띔해주었다. 물론 정부측의 공식 입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라는 것이다. 탁신 전 총리가 태국 대법원에서 부정부패 및 권력 남용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해외 도피 중인 인물이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다가 태국 물 관리 사업 수주에 뛰어든 경쟁 상대들로부터 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탁신 전 총리의 방한 사실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었다.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로부터 박회장과 탁신 전 총리가 만났다는 증언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탁신 전 총리의 방한은 주로 이건수 회장의 초청으로 이루어진다. 이회장은 탁신 전 총리가 한국에 머무를 때 그림자 수행을 한다. 정부 관계자와의 미팅은 물론 세세한 일정까지 모두 챙기고 있다. 이회장을 통하지 않고는 탁신 전 총리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태국 시장 진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이번에 박회장과의 회동 역시 이회장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도 “박회장과 탁신 전 총리가 만난 것은 사실이다”라고 확인해주었다. 이 인사는 “박회장이 친구로부터 ‘술 마시고 있는데, 탁신 전 총리가 보자고 한다’라는 연락을 받았고, 동석한 자리에 이건수 회장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 친구가 ㅇ회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던 박지만 회장측도 <시사저널>의 취재가 계속되자 탁신 전 총리와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지난 1월30일 기자가 박회장이 탁신 전 총리와 만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박회장의 최측근 인사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자리에서였다. 박회장의 일정을 관리하는 등 사실상 대리인 역할을 해 온 이 인사는 “박회장이 저녁 식사 후  한잔하고 있는데 ㅇ회장으로부터 어디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박회장과 ㅇ회장은 아주 친한 사이이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ㅇ회장이 가도 되냐고 해서 오라고 한 것인데, 일행 중 탁신 전 총리와 이건수 회장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박회장은 앞선 모임에 탁신 전 총리가 온다고 해서 부담이 된다고 나가지도 않았다”라며 미리 약속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건수 회장 역시 기자의 확인에 대해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하자 “밥 먹다가 만난 적 있는데 그게 중요하냐”라고 되물었다. 미국에 체류 중인 이회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술집에서 만났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의 만남에 대해 “절대 의도적이거나 그렇지는 않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시사저널>이 박회장과 탁신 전 총리의 만남에 주목한 이유는, 두 인사가 갖는 위상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박회장은 늘 언론의 관심 대상이었다(33쪽 상자 기사 참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로서 그는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대선 전후 정국에서는 부인 서향희 변호사의 행보도 야권과 언론의 관심이 되고 있다.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친인척이 권력형 사고를 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탓이다.

“만난 건 사실이지만 의도적 만남 아니었다”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9월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후 2008년 봄 부인과 함께 영국으로 도피했다. 이후 지금껏 입국하지 못하고 전 세계를 떠돌며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태국에서는 여전히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레드셔츠’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현 태국 총리인 잉락 친나왓 뒤에 오빠인 탁신 전 총리가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그의 영향력은 태국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탁신 전 총리는 태국의 물 관리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이다 보니 이런저런 의혹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박회장이 EG의 해외 진출을 위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러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탁신 전 총리를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박회장의 누나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내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관측했다. 그는 또 “ㄱ그룹사가 준비하는 물 사업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 그룹의 ㄴ회장과 박회장은 아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회장측은 이러한 의혹 제기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기자와 만난 박회장의 최측근 인사는 당시 박회장이 탁신 전 총리와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 “사업에 관한 것은 전혀 없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만약 EG의 해외 진출이 필요하다면 회사 차원에서 하면 된다. 관련 부서가 따로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회장과 이건수 회장과의 친분에 대해서도 “특별한 것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박회장의 일정 중에서 이회장과 관련한 일정은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회장이 이회장을 다섯 번 정도 만났다고 하는데, 따로 만난 적은 없었고, 여러 사람이 함께 만날 때 악수 정도는 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회장도 “(탁신 전 총리는) 아시아의 리더이다. 우연히 볼 수는 있지만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박회장과 (의도적으로) 왜 만나나. 그게 중요하지 않다”라며 사업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기자는 당시 회동 자리에 동석했던 ㅇ회장에게도 연락을 취했으나, ㅇ회장이 해외에 나가 있는 탓에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회장측이나 이회장측 모두 회동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하지만 특별한 의도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우연한 만남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냥 우연한 만남으로 치부하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에 여전히 석연찮은 점이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역대 정권마다 반복되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감시의 눈초리가 이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선 이후 오해받을까 봐 사람들도 안 만난다” 
박지만 회장측의 고민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가족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형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우도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가족 문제이다. 여동생 박근령 한국재난구호 총재 부부와 남동생 박지만 EG 회장 부부가 그동안 이런저런 구설에 올라 ‘관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돌았다. 특히 박회장 가족에 대한 박당선인의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박회장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나돌고 있다.

최근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된 청와대 경호실장 후보로 박회장의 동기생 그룹인 육사 37기 출신들이 떠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박회장은 1977년 육사에 들어가 1986년 대위로 전역했다. 후보로 거론된 이들은 박회장과 특별한 친분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지만, ‘박지만 동기생’이라는 것만으로도 주목받는 분위기이다.

박지만 회장은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연관되어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그런 박회장이 최근 들어서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삼가고 있다고 한다. 대선 이후 오해를 받을까 봐 사람들을 안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박회장의 최측근은 “박회장은 사업이나 돈에 대해 큰 욕심이 없다. 다만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에도 여기저기서 박회장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정을 상당히 줄이고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안 만난다”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