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5060 심층인터뷰] ① 보수는 ‘안정적 변화’를 갈망한다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2.0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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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관 중도는 ‘합리성’, 진보는 ‘변화’를 핵심 가치로 꼽아

총 60명의 면접 대상자에게 “자신의 정치 성향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확고한 주관을 바탕으로 막힘없이 대답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나?”라고 되묻거나, 오랫동안 생각을 거듭하는 응답자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기준 역시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말해달라”라며, 가능한 한 열린 형태의 대답을 주문했다.

결과는 각종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나는 세대별 이념 분포와 유사한 구도를 보였다. 하지만 60명이라는 적은 표본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 만큼, 단편적인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각 응답자들이 자신의 성향에 대해 설명하며 언급한 근거들이다. <시사저널>은 60명이 든 ‘이유’들 중, 각자가 지향하는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 개념어들을 추출해보았다. 이런 개념어가 같은 성향의 응답자 사이에서 언급된 횟수 등을 고려하며 분석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흐름’이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각 성향의 지지자들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를 골라낼 수 있었다(오른쪽 이미지 참조).

스스로를 중도라고 생각하는 응답자의 핵심 가치는 ‘합리성’이었다. 합리적인 판단의 가치를 신뢰한다는 언급을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편향 또는 치우침 없는 마음가짐, 중용의 가치,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을 강조하는 면모 등이 함께 보였는데, 이런 가치 또한 ‘합리성’과 비슷한 가치군(郡)을 형성하는 것들이었다. “합리적인 주장은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든다”(조광민·33·서울 강남구), “진보와 보수를 반으로 갈라 나누어 생각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한다”(홍지민·26·경기 김포), “나는 합리적인 중도를 지향한다”(최병렬·57·부산), “여야 할 것 없이 잘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지지한다”(김상호·62·서울 동작구)와 같은 발언들이 대표적이다.

‘합리성’이라는 가치 이외에도, ‘우리 사회의 진보 및 보수 세력 모두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또 하나의 축을 형성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염증 또한 중도라는 정치적 성향을 택하도록 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나는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그 어디도 좋아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나쁘고, 민주당은 이상한 느낌이다”(윤미선·27·서울 용산구), “서로 싸우는 정치권의 모습에 싫증이 나서 나 스스로는 중립적이 되려고 한다”(문옥숙·55·부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지난해 12월14일, 중국 어선 나포 중 해경 1명이 사망하자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중국 대사관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 ⓒ EPA 연합
중도는 ‘균형’ 강조, 진보는 ‘인간성’ 중시

이와 달리, 진보 성향의 응답자에게는 ‘변화’가 핵심 가치였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언급하며 이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거나, 사회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세력으로 진보를 지목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진취적인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는 사회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김경애·55·대구), “빨리빨리 변하는 시대에 보수는 정말 아닌 것 같다. 항상 지키고 고수하는 자세보다는 시기를 잘 타서 변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김상범·31·서울 성동구).

사람, 약자 보호, 포용, 공동체 등의 ‘인간성’ 또한 주요 코드 중 하나였다. “자본주의 사회가 너무 돈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이것을 사람 위주로 바꾸자는 휴머니즘 지향이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로 분류된다”(구교운·29·서울 강동구), “서로 더불어 살며 생활을 돌아봐주고 품어 안고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보수는 부자만 챙긴다”(박순애·59·전북 전주),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진보 쪽인 것 같아 진보를 좋아한다”(양승희·26·인천) 등의 말이 대표적이었다. ‘변화’의 지향점을 인간 중심의 사회로 생각하는 것 또한 진보 성향 응답자들의 생각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흐름이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분석 결과는 흔히 중도나 진보를 생각할 때 떠올릴 만한 가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도 혹은 진보를 대표하는 나름의 상징어들이 각 성향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도 및 진보 성향 지지자들의 경우, 세대별로는 이렇다 할 가치 지향의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흥미로운 결과는 보수에서 나왔다. 보수 성향 응답자들로부터 반복적으로 언급된 핵심 가치는 ‘안정’이었다. 특히 진보(‘변화’) 및 중도(‘합리성’)의 경우보다 가치의 선호도 및 중요도가 매우 높았다. ‘안정’이라는 단어를 직접 거론한 경우도 많았지만, 해당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발화 전체의 맥락이 이를 지향하는 흐름이었다. 보수 성향 응답자들에게는 ‘안정’이라는 가치가 ‘핵심 중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안정’을 언급한 보수 지지자 중 ‘변화’의 가치를 동시에 언급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는 점이었다. ‘변화’는 진보 지지자들의 핵심 가치였다. 그런데 보수 성향 역시 ‘변화’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 것이다. ‘보수는 변화를 바라지 않는 세력’이라는 통념과는 다른 결과이다.

문제는 속도였다. ‘급진적이지 않은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세대를 가리지 않고 표출되었다. “(사회가) 내 속도의 관점에서 천천히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런 원칙을 적용하려는 것이 보수라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확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급진적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천천히 바꾸는 게 좋다”(김 아무개씨·25·서울 강서구), “나이가 들고 가정을 꾸리고 하다 보면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변화를 추구하게 되기 마련이다”(장승덕·59·서울 송파구), “나라 망치려고 정치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어느 정도는 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점차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 보수가 더 맞다고 본다”(김숙희·55·부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현실형 보수’ ‘가치형 보수’ 차이도 눈길

일부 ‘청년 보수’와 ‘중·장년 보수’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도 흥미로웠다. 보수 성향의 5060세대는 ‘안정’이라는 가치 이외에 ‘이념’ ‘국가 안보’ ‘전통 수호’ 등을 지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가치 중심으로 사고하는 특성이 두드러졌다. 반면 보수 성향의 2030세대 중에는 현실적인 이유를 언급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직업’ ‘기득권’ ‘지역’ 등이었다. “아무래도 사업을 하다 보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살아오는 동안 ‘좋은 학교’ ‘좋은 회사’ 등 이른바 기득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보수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등의 견해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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