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떼고 순항하다 ‘기우뚱’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2.0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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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조직적 부품 밀수출 혐의로 검찰 조사

지난 2011년 사명 변경 이후 순항해오던 한국GM이 암초에 부딪혔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내부 사고 탓이다. 수원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윤영준)는 지난 1월25일 한국GM 군산공장의 자동차 부품을 빼돌려 해외로 밀수출하려 한 혐의로 김 아무개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현재 한국GM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사건에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구속된 김씨 역시 검찰에서 “보관하고 있는 범퍼는 모두 한국GM 직원에게 넘겨받았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한국GM의 협력업체 직원 신분이었다. 최근 군산공장에서 빼돌린 쉐보레 크루즈의 범퍼를 대거 매입했다. 이후 GM 상표가 찍힌 포장지를 씌워 보관하고 있다가 검찰에 적발되었다. 김씨는 중국으로 밀수출하기 위해 GM 라벨까지 위조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수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첩보를 입수한 후 경기도의 한 창고를 급습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으로 보내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크루즈 자동차의 범퍼를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GM은 지난 2009년 라세티의 핵심 기술이 유출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전직 연구원 두 명이 러시아 자동차회사의 한국 법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차체 설계도와 기술표준 문서 등을 대거 빼돌렸기 때문이다. 기술 일부는 이미 러시아 본사의 신차 제작에도 사용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GM은 러시아 회사와 4년째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GM이 지난해 사명 변경을 앞두고 7인승 RV차량인 ‘올란도’를 조립 생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내부 악재로 골머리

지난 2011년에는 개발 중인 차세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의 실내 디자인이 유출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위장막이 씌워진 차량 외부뿐 아니라 내부 디자인까지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GM측은 “내부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악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부 관리 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올 정도이다. 최근 발생한 자동차 범퍼 밀수출 미수 사건 역시 내부 직원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문제가 되고 있는 군산공장은 최근 크루즈의 후속 모델인 J400(프로젝트명)의 생산 공장 리스트에서 제외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군산공장은 현재 한국GM의 주력 차종인 크루즈와 올란도를 생산하고 있다. 크루즈 후속 모델의 생산을 중단하면 가동률이 하락하고, 결국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회사 안팎에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군산시나 군산상의도 최근 부평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군산시 관계자는 “한국GM이 어려울 때마다 시 차원에서 차량 구매 운동을 벌여 짐을 덜어주었다. 군산공장에 대한 차별은 지역민들의 기대를 외면하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군산공장의 부품 유출 사건이 회사 내부 직원의 비리로 확대될 경우 한국GM의 경영진도 비난의 화살을 피할수 없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한국GM 직원들이 사명 변경과 함께 쉐보레 브랜드의 성공을 기원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주목되는 것은 검찰 수사의 칼날이 어디까지 뻗칠 것인가이다. 검찰이나 한국GM은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심지어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 박균택 수원지검 2차장검사는 지난 1월31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 수사 초기이다.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국GM측도 “검찰로부터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 군산공장으로부터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한국GM의 내부 직원과 유통업자, 밀수출업자가 낀 조직적인 범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수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부품이 유출된 수법이나 규모를 감안할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검찰에서는 한국GM 직원들이 김씨에게 조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김씨에게 부품을 넘긴 군산공장 직원을 포함해 조만간 한국GM 직원들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설 예정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군산공장에서 외부로 유출된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관행적인 비리가 드러날 수도 있다.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균택 수원지검 2차장검사도 “여전히 수사가 진행 중이다”라고 말해 수사 확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국GM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었다는 점도 회사측을 부담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GM은 지난 2011년에 ‘대우’ 꼬리표를 떼고 회사명을 ‘한국GM’으로 교체했다. 국내에서 생산·판매하는 차량 브랜드도 ‘쉐보레(Chevrolet)’로 통일했다. 이후 10여 종의 신차를 출시하면서 매출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에는 내수 판매 실적이 2002년 회사 출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11월 내수 판매 실적은 전년 동기에 비해 27.5%나 상승했다. 12월 판매량도 14% 가까이 증가했다. 업계 3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르노삼성을 멀찍이 제친 것이다. 격차 역시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세르지오 호사 한국GM 사장은 올해 두 자릿수 점유율 달성 계획을 밝혔다. 그는 지난 1월25일 제주 휘닉스아일랜드에서 열린 대리점 워크숍에서 “지난해 내수 시장 점유율은 9.5%로, 아쉽게 10%대 진입에 실패했다. 최근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에는 두 자릿수 점유율을 달성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 악재가 모처럼 형성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까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GM 측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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