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새 8배 는 치매 50대에도 빨간불 커졌다
  • 조현주 객원기자 (jhonju@naver.com)
  • 승인 2013.02.1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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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에는 다섯 가구 중 한 곳에 치매 환자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남편은 아픔과 배고픔도 느끼지 못합니다. 날짜나 시간관념도 없어요. 말하는 법도 잊은 남편은 ‘응’ ‘아니’라는 대꾸 외에는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지난 1월29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용산구치매센터에서 만난 정 아무개 할머니(80)의 시선은 온통 남편 윤 아무개 할아버지(82)에게 향해 있었다. 정할머니는 “잠시 한눈을 팔아도 피가 날 정도로 다쳐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도 남편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뒤늦게 다친 사실을 알게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할아버지가 세 살 배기 아이처럼 되어버린 것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치매 때문이다.

윤할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2007년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말수가 크게 줄고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치매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병원으로부터 뇌경색에 따른 후유증으로 혈액성 치매를 얻게 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서울 용산구청 치매지원센터에서 주민들이 치매 치료 및 치매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해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65세 이상 치매 환자 56만명

남편의 치매 판정 이후로 할머니는 매일 ‘고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남편의 끼니를 챙기는 것에서부터 옷을 입히고 씻기는 일까지 할머니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 매달 20만~30만원 정도의 치료비와 약값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때가 많다. 정할머니는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는데 자식에게 기댈 생각은 없다. 대학생 손주 뒷바라지하느라 아직 힘들게 사는 자식에게 짐이 되기는 싫다. 앞으로 내가 남편보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정할머니와 윤할아버지 부부 이야기는 치매의 그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문제는 이러한 치매의 그늘이 한국 사회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의 증가로 치매 노인의 수가 매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노인 인구는 약 5백만명에서 5백80만명으로 17% 증가했고, 이 중 치매 노인의 수는 42만명에서 53만명으로 26.4%나 급증했다.

2013년 현재 국내 65세 이상 치매 노인 인구는 약 56만5천명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치매 노인의 수는 2020년에는 79만명에 이르고 2025년에는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전체 치매 인구의 증가 추이 또한 치매 노인 수 증가 폭과 유사하게 20년마다 거의 두 배씩 늘어나는 추세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50년에는 다섯 가구당 한 명씩 치매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치매 노인의 수가 50만명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치매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사회가 아닌 ‘가정’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치매 환자 보호 책임을 대부분 가족이 떠안고 있는 상황인 데다, 자녀들과 따로 사는 노인 부부가 늘어나면서 아내나 남편 등 배우자가 모든 병수발을 책임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노인 부부 중 한 사람이 생계 활동과 병간호를 병행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환자 다섯 명 가운데 두 명은 혼자 살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살고 있는 최 아무개 할아버지(82)의 경우가 그렇다. 최할아버지의 아내인 김 아무개 할머니(77)는 지난해 11월 치매 판정을 받았다. 최할아버지는 “사실 당장 걱정스러운 것은 밥벌이이다. 부부가 모두 일해야 먹고살 정도로 워낙 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내인 김할머니는 “병원에서 아직 치매가 많이 진전된 단계가 아니라고 들었다. 당분간은 노인 일자리 사업이라도 신청해 계속 일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심지어 혼자 사는 치매 노인의 수 또한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사회적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1월9일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양동원 교수팀이 발표한 ‘독거 치매 노인 현황과 주 부양자 조사 연구’에 따르면 국내 치매 노인 10명 가운데 4명은 보호자 없이 혼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9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전국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등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 2천3백88명(남성 7백89명, 여성 1천5백99명) 중 41.4%인 9백88명이 혼자 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조사 결과를 현재 치매 노인 환자 수에 대입해보면, 최소한 10만명 이상의 치매 노인이 정부나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살고 있는 셈이 된다.

치매가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하면서 정부도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8년 제1차 국가치매관리종합계획을 내놓은 데 이어 올해부터 제2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3~15년)을 시행한다. 치매를 국가적 질환으로 규정한 이 계획에는 무료 치매 검진 사업, 보건소 등록 치매 환자 치료 관리비 지원, 치매 거점 병원 지정, 노인장기요양보험 수혜 확대 등이 담겼다. 또 지난해 2월에는 치매관리법이 발효되어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법에 의해 치매가 관리되는 국가가 되었다. 지난해 11월 국립중앙치매센터가 문을 열게 된 것도 그 일환이다.

정부의 치매 관리 대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 장기 요양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2011년까지 모두 11조원을 투입했다. 2011년을 기준으로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은 치매 환자의 수는 14만9천명이었다. 장기요양보험 가운데 치매 환자만을 위해 특화된 서비스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다수 치매 환자 가족들은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요양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런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는 환자는 2011년 전체 환자 50만명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치매 환자의 상당수가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까다로운 판정 기준 탓이다. 판정 기준은 대소변 못 가리기, 폭언, 환청 등 20여 개나 된다. 장기요양보험의 대상자가 되려면 적어도 1~3등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 또 요양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1, 2등급을 받아야 한다. 치매 환자의 상당수는 이러한 등급 판정을 통과하기 어렵다. 정신적 기능 장애로 실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신체상 문제는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홀로 사는 치매 노인이 늘어나는 등 치매 환자가 방치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서울 용산구청 치매지원센터에서 치매 환자와 보호자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장기요양보험 기준, 너무 까다롭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장기요양보험 판정 방식의 전면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동영 서울시치매센터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 체계가 신체적 문제에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노인 치매 환자 수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치매 환자의 증상이나 문제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 체계의 확립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앞으로 2017년까지 전체 노인의 7% 수준인 50만명이 장기요양보험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대상자를 늘리고 판정 기준을 개선할 방침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5년까지 20만3천명의 치매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동영 센터장은 “앞으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등급 판정을 받은 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서비스의 확충과 질적 개선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 서울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지방으로 가면 등급을 받고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자체가 부족한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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