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 불려도 참 기분 좋더라”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2.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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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술탄과 황제> 내고 호평받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

국회를 잘 돌아가게 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에 앉았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방송에 비친 그의 모습은 심각한 표정 일색이었다. 야권으로부터는 입법안을 직권상정했다고 ‘날치기’라는 오명을 덮어쓰기 일쑤였고, 자신이 속한 여당으로부터는 ‘여론 눈치 보느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국회의장을 지내며 행복한 정치 인생을 보냈노라고 자평하는 그가 지지난해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또 다른 행복을 맛보고 있다. 고군분투하듯 쓴 소설 <술탄과 황제>가 펴내자마자 그를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4년 전 에세이집 <길 위에서 띄운 희망 편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때 보여준 필력이 살아 있었다. 비난받던 정치인이 사랑받는 작가로 변신하기까지 과정이 궁금했다. 2월15일 오전 서울 마포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역사 읽어주는 남자’를 만났다.

과 인터뷰하는 김a형오 전 국회의장. ⓒ 시사저널 박은숙
추천 도서 목록에 오르고 독자들의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술탄과 황제>는 어떤 소설인가?

사실 소설은 아니고 소설적인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팩션(fact + fiction)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서양에서는 1453년을 취급하기 꺼린다. 서양이 동양에 깨지고, 기독교가 이슬람에 깨지고, 문명이 야만에 깨진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453년이 정말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문명의 충돌’ ‘화해와 공존’ 이런 것들도 있지만, 다수의 학자는 중세가 끝나고 근세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또한 이 시기는 르네상스가 활짝 꽃피기 시작하면서 대항해 시대가 전개된 시기이기도 하다. 비잔틴의 많은 문명과 문화들이 서구로 들어갔다. 특히 성경, 희랍어로 된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존 칼빈·마틴 루터가 나오고, 곧 종교 개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세계사적인 흐름을 바꾼 때가 바로 1453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굴욕 때문인지 잘 다루어지지 않았다.

역사학자만큼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관심도 많았다. 사실 역사 쪽으로 전공을 해볼까도 했었는데 먼 길을 돌아서 다시 찾아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젊어서 기자 생활을 한 것이 도움이 되었나?

재수도 하고 대학원도 갔고 군대도 다녀오고, 그러다 보니 첫 시작이 정말 늦은 편이었다. 좀 늦었기 때문에 1년이라는 수습 기간을 안 하는 조건으로 <신동아>에 들어갔다. 1년 호봉을 인정받은 것이다. 당시는 유신 시절이어서 언론사 사정이 정말 안 좋았다. <신동아>에서 일하면서 3년 정도 다양한 분야를 종합 취재했다.

소설을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가?

전쟁 상황에서는 인간의 본능적인 모든 것이 다 나타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동원해서 승리해야 하거나 살아남아야 하니까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이냐를 말하고 싶었다. 그에 대한 답은 독자들의 몫이다. 또,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스물한 살이라는 어린 사람이 이끄는 ‘오스만투르크’라는 야만 민족이 배를 끌고 산으로 가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배가 산으로 간 사실이 새 역사를 쓰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새로운 발상의 전환에 전율이 느껴졌다. 그 전율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인생 2막 혹은 3막을 작가로 지낼 계획이 있나?

내가 글 쓰는 과정을 지켜본 아내가 “당신은 이 책을 피로 썼다”고 표현하더라. 나는 전문적인 작가도 아니고 재주가 둔해서 단어 하나를 쓰기 위해 며칠을 고민해서 쓰고 몇 번을 고쳐 쓰고 그런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꼬박 앉아서 집필했다. 집에서는 3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사무실에 와서 중간 중간 5~10분 정도 새우잠을 자고 그랬다. 그러니 체력이 떨어져 내 평생에 처음으로 6개월 동안 매일 2시간씩 운동을 했을 정도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사실 쓰고 싶은 분야가 있다. 호평을 받고 하니까 의욕은 생기는데, 건강이 허락하면 하겠지만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정말 정치 활동을 그만 할 것인가?

정치인으로서 할 건 다 해봤다. 불출마 선언은 ‘깨끗이 떠나겠다’는 뜻이었다. 차기 정부에서 부를 일도 없겠지만 불러줘도 안 갈 것이다. 한쪽에서는 아직은 이르다는 말도 있는데, 나와 보니까 이 생활이 더 즐겁다. 스스로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행운아라 생각한다.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예롭게 정치 현장을 떠나는 풍토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더는 내가 기웃거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 후배들에게 훈수는 둬야 하지 않을까?

훈수 두고 뺨 맞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훈수 말고 관전평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언론에서 하도 많이 불러서 ‘내가 요즘 훈수 두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훈수는 하고 싶지 않고, 바둑이 끝나고 나면 복기하듯이 미래를 위해서 평가하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작가 김형오’ 중 더 듣고 싶은 호칭 하나를 고른다면?

소설가의 영역까지 감히 접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소설가라면 자질, 천재성, 엄청난 노력, 수업이 필요한 것 아닌가. 다만 작가라고 불러주면 기분은 좋더라. 그래도 내 인생에서의 정점은 국회의장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국회를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쓴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그래서 ‘전 국회의장’이라는 칭호가 좋다. 국회가 굉장히 힘든 시기였을 때 온 힘을 다해서 지켜냈다고 생각한다. 양쪽에서 욕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외로웠지만 나는 의미 있는 처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것은 국회의장에게, 잘된 것은 당의 입장으로 돌리고 그랬다. 국회의장 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목소리 내기가 힘들었다. 보수 언론도 “김형오가 딴생각을 한다” “대권을 노린다” “여론 눈치 본다”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애쓰며 국회의장 일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고 생각한다.

이어령 전 장관이 추천사에 호평을 남겼는데, 평소 잘 아는 사이인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친분이 있지 않다. 활동 무대도 달랐고 나이 차이도 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나이가 많은데도 정정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의 문화계에서는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에게 호평을 받으니까 단어 하나, 글자 하나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어 접속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는 그가 답사한 터키 등의 유적지 사진들과 함께 상세한 사진 설명이 정성스럽게 달려 있다. 그의 책상에는 참고 도서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그의 ‘역사 탐구’가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1장은 역사 소설, 2장은 패자의 일기와 승자의 비망록을 교차시키며 각각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본 팩션, 3장은 여행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독특한 구성인데, 이런 구성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가?

이 책을 쓰면서 스티븐 런치맨의 <The fall of constantinople 1435>라는 책을 많이 참고했다. 정말 좋은 내용임에도 전반부가 너무 딱딱하고 어려워 국내에서 인기가 없더라. 참 안타까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가독성 있는 책을 쓸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고, 그 고민이 이런 구성을 낳았다. 전쟁의 주 무대였던 성벽이 삼중 성벽인데 이 삼중 성벽에 착안해서 삼중 구조를 만들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삼중 구조.

또 하나, QR코드를 책 속에 집어넣었다. 책 말미에 내가 직접 찍은 사진에 캡션까지 달아서 정리한 것을 QR코드 방식으로 부록을 만든 것이다. 이 QR코드는 또 하나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을 만들면서 ‘베스트 원(best one)’을 지향했고, 스타일만큼은 ‘온리 원(only one)’이 되자고 생각했다. 세계 무대에 한번 내보겠다는 심정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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